세 번째 시집『파랑의 파랑』을 출간한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번 시집 출간은 서류작성 등 여러 가지 일로 약간의 혼란을 겪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출판한다는 것, 평론가들이 시해설을 쓴다는 것, 그리고 시인이 시를 쓴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실감했다. 사실 시집 출간은 나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은 주지 못한다.
중학교 시절, 그때 시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 시를 쓰지 않고도 명량했던 시절, 그 파릇파릇한 파랑을 계속 연결되고 있었을까? 울산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까? 아니면 미국으로 언니를 따라가서 더 많은 공부를 했을까? 목표했던 꿈을 펼치며 언니와 오순도순 잘 살았을까? 만일 그랬다면 불행하게도 시의 깊이도 몰랐을 것이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오래 보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시와 함께 숨 쉬는 것에 익숙해졌다. 함께 밥을 먹고 함께 화장실에 가고 함께 샤워를 하고 함께 독서를 하고 함께 그림자놀이를 하고 함께 소소한 여행도 한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기쁘게 맞이해서 지는 태양을 떠나보내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서로의 손과 발이 되어 서로를 위한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가족을 사랑하고 나무와 식물에 감사한다. 주름지고 물 빠진 나의 육신을 여기저기로 끌고 다니는 그림자들도 사랑한다.
오늘도 옆사람과 대왕암공원에 갔다. 대왕암 출렁다리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대왕암공원은 울산 동구 등대로, 에 위치한 아름다운 해변공원이다. 대왕암과 등대는 그곳의 큰 보물이다. 대왕암공원은 내가 서울에서 울산으로 직장을 옮긴 후 처음으로 갔던 곳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민어회와 멍게를 맛본 곳이기도 하다. 하이힐을 신고 계단을 오르면서 옆사람과 가위바이보게임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실 그때는 대왕암공원 입구 양쪽에 상점이 꽤 많았었다. 횟집에서 일하던 그 친절했던 아주머님은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기대했던 만큼 대왕암 출렁다리는 길고 안전했다. 건너는 동안 기분이 좋았다. 왼쪽으로 보이는 풍경 속에는 현대중공업이 출렁출렁, 발밑에는 파도가 철썩철썩, 발밑의 풍경이 심하게 흔들려서 멀미를 하는 아이도 있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편하도록 출렁다리 양쪽 폭이 조금만 더 넓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출렁다리에서 내려서 곧바로 슬도로 향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대왕왕공원에 가면 반듯이 슬도도 간다. 파도 소리가 슬도의 그림자 같다는 이유도 있지만 슬도 가는 길은 바다향이 나고 흙길이라 발이 편하다. 그 길 위에서 우리는 다양한 그림자를 만나는 것을 놓치지 않는다.
오늘은 놀랍게도 커다란 앵무새를 만났다. 노애개안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앵무새 한 마리가 공중으로 휙 날아간다. “저리 비켜”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초록과 노랑이 섞인 앵무새의 깃털이 참 아름다웠다. ‘어머나! 앵무새가 여기에 어떻게 왔지? 혹시 성끝 마을 어느 집의 앵무새가 탈출했을까? 바다 위를 날아다니던 앵무새는 빠르게 내려오더니 어떤 남자의 손목에 탁 앉는 것이다. 순간 나는 그 남자의 그림자를 밟으며 다가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물었다.
“이 앵무새가 아저씨의 앵무새입니까?”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렇다고 말했다. 앵무새와 남자가 언덕 너머로 점점 멀어지자 옆사람은 내 왼손을 꼭 잡으며 조용히 물었다. 왜 그 남자에게 쫓아가서 그런 질문을 했냐고. 그러면서 크게 웃는 것이었다. “여보, 왜 내가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나도 모르게 순식간 앵무새가 걱정되었어요. 흐흑 오늘 또 나는 바보, 주책바가지?” 슬도에 도착해서도 옆사람은 자꾸 웃었다. 에코튜브에 입을 갖다 대고 “이상한 질문? 이상한 질문?” 하면서 키드득거렸다. 나도 에코튜브에 입을 대고 키드득거렸다. ‘이상한 질문? 이상한 질문?’을 되풀이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