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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여행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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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두람이 Feb 11. 2023

여행의 힘 11

봉길대왕암해변

  


쌓인 아픔을 다 털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어젯밤에도 마당 있는 집이 꿈에 나타나는 것을 보면.


전에 살았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는데 아파트 5층 입구가 죄다 마당이라서 의아했다. 이태리 소파가 진열되어 있는 흙마당을 지나 마루를 지나 안방에 들어갔다. 이상하게도 안방 벽에는 똑같은 거울이 사방으로 줄지어 붙어 있었다. 엄마가 염색을 할 때마다 마루 벽에 걸어놓았던 그 거울 닮은 것들이. 남편은 이 많은 거울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그리고 옷을 걸 수 있도록 거울과 거울 사이에 못이 박혀있었다. 체육대회에 가려면 운동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좀처럼 원피스가 벗어지지 않았다. 원피스가 머리에 끼어서 낑낑대다가 꿈에서 깨어났다. 집의 반이 울산이고 집의 반이 고향집이라니. 과거와 현재가 뒤섞여 있다니. 이상한 꿈이었다.       


남편은 이미 잠에서 깨어나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눈을 비비는 나에게 깎아놓은 사과를 먹으라고 검지로 식탁 위를 가리켰다. “여보, 또 꿈을 꾸었어요. 엄마는 보이지 않고 어릴 적 살던 집 마당이 나온 이상한 꿈을요.”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소파 옆 아레카야자를 어루만졌다. 그리고는 오늘 일요일인데 어디로 가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서로 몸이 좋지 않으니까 멀리는 피하자고 했다. 남편은 양남을 지나 양북 봉길리에 머물다가 경주 불국사로 가서 우리가 좋아한 화덕피자를 먹자고 말했다.        


남편도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어머님과 형제를 떠나보낸 후 그 마음이 어떨지 내가 경험해 봐서 다 안다. 나 역시 마음의 병을 완전히 고치지 못하고 있다. 치료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이면 다시 제자리다. 우리는 복잡한 곳을 피한다. 가급적 시끄러운 곳은 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집에서 양남 주상절리까지 가려면 30분이 소요되고 경주 문무대왕릉 해변까지 가려면 40분이 소요된다. 만약 택시를 타고 간다면 택시비가 꽤 나오는 거리다. 운전을 하지 않고 버스를 타지 못하는 나로서는 오늘도 기회다. 이 기회를 잡지 않으면 멀리,라는 곳은 점점 멀어질 테고 그 멀리 갈 기회는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른다.


40분 후 봉길대왕암해변에 도착했다. 해수욕장 앞에는 신라 문무왕의 수중왕릉인 문무대왕릉이 있다. 문무대왕릉은 고려시대 김부식이 지은『삼국사기』에서 알 수 있다. 자신이 죽으면 동해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 깊은 뜻은 자신은 죽어서도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아내겠다는 것. 신문왕은 문무왕의 유언에 따라 큰 바윗돌에 장사 지냈고, 그 바윗돌이 바로 문무대왕릉이다.   


봉길대왕암해변의 모래와 몽돌을 세심히 바라보기는 처음이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차 안에서 멀리 문무대왕릉을 바라보곤 했었다. 모래를 밟고 몽돌을 밟고 파도 소리를 들으니 귀가  밝아졌다. 해변을 따라 오른쪽으로 문무대왕릉이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 걸었다. 울산 대왕암공원 앞바다와 마찬가지로 바다색이 이국적이다. 이처럼 바닷물이 깨끗하고 하늘이 푸른 곳이 또 어디에 있을까. 아주 가끔은 멀리 지중해로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가까운 곳에 이런 좋은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바다 위 갈매기 군무는 현란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꽹과리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깜짝 놀라서 주변을 빙 둘러보니 이곳저곳에서 꽹과리를 치는 무속인이 보였다.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다. 남편은 바닷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지금 바로 불국사로 가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오른쪽으로 더 멀리 가보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문무대왕릉이 가까워질수록 갈매기 군무는 활발했다.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던지는 사람들, 몽돌 위에 음식을 놓아두고 떠난 사람들. 인간이 유혹하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갈매기들은 더 멀리 더 높이 날아올랐다가 내려앉기를 반복했다.   


근래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쓰레기는 쌓이고 기후변화로 지구 곳곳도 무섭게 흔들리고 있다. 갈수록 서민이 살기 힘든 세상 탓일까. 어딘가에 의존하고 어딘가에 소원을 빌고 싶다는 것은 당연한 것일 테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이 영험한 해변에 무엇인가를 뿌리는 행위는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다.    


파도가 휘몰아치는 장면을 계속 바라보았다.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그리고 어젯밤 꿈에 나타난 마당과 이곳 바다가 오버랩되었다. 이제는 명절과 대보름날에 엄마를 만날 수 없어도 어릴 적 뛰어놀던 그 마당보다 수천 배 넓은 바닷가가 나의 가까이라서 얼마나 다행인가. 어제의 아픔을 파도와 의논할 수 있어서 얼마나 뿌듯한가. 멀리 문무대왕릉을 바라보며 다짐을 한다. 그 어떤 파편이 날아와도 좌절하지 않으리. 그 파편 하나하나가 갖고 있는 이유와 질문에 좀 더 신중하리.

ㅡ2023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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