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초는 봄이라기보다는 겨울을 놓아줄 수 없다는 듯 바람이 매섭다. 우리 집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산이 새하얗다. "세상에나! 얼마 만에 보는 눈이야." 문득「3월에 내린 눈」이라는 나의 시가 생각난다. 그때 쓴 시는 꽤 힘든 세상, 내 마음에도 폭설이 내리고 있을 때였다.
그에게 전화를 받고부터 내 서쪽은 온통 눈밭이에요 남천 그라비올라 일월금 사이에도 눈이 내리고 있어요 내 혀가 하얗게 변해서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할 때라고 생각되었는지 세 아이의 귀가 연기처럼 펄럭거려요 나는 김종삼의 북치는 소년을 읽다가 기다란 의자를 바라보아요 적진에서 돌아와 결국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그의 소식이 자꾸 슬퍼져요 그가 주고 간 와인 잔에 눈을 소복이 받아요 어스름 섞인 눈송이가 밤을 늘리고 서쪽을 늘리고 다시 사과나무 꽃이 된다는 사실이 더 슬퍼서 마시고 또 마셔요 창밖 발자국 소리가 사과 깎는 소리 같아요 저 멀리 봉분들이 짐승처럼 울고 있나요 생강꽃 핀 언덕길, 당나귀를 타고 가는 누군가가 보이나요 그에게 손과 발이 되어주지 못한 오늘이 싫어져서 나를 놓아버리고 싶은 밤, 그의 얼굴이 내 방 창가에서 진눈깨비처럼 날리고 있네요
─詩「3월에 내린 눈」 전문
기후온난화 탓인지 울산 도심에서는 눈을 보기가 쉽지 않다. 우리 집 뒷산은 가끔 남편과 함께 드론을 날리는 곳이기도 하다. 엄마와 손자도 함께 간 곳이기도 하다. 걸어가기는 무리고 승용차로 올라가면 금세다. 반갑고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도착한 뒷산. 설경은 기대 이상이었다. 더 놀란 것은 눈을 사랑한 사람이 너무 많았다. 오르막에까지 승용차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었다.
언제부터 만들었을까. 언덕 아래에는 눈사람이 즐비했다. 와! 와! 나는 감탄을 쏟아내며 눈사람들 사이에서 어슬렁거렸다. 그러다가 병아리 크기로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만들다 보니 눈사람이 여섯 개가 되었다. 오솔길에서는 손바닥도 찍어보고 하트도 그려보았다. 눈을 움켜쥐고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했다. 오리나무 열매 위로 두둥실 엄마 얼굴이 지나갔다. 다행히 젊었을 때 엄마 모습이었다. 가족과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니까 나는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만든 눈사람들 그리고 내가 만든 눈사람들과 놀다가 아쉬운 듯 산을 내려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TV 채널을 이리저리 돌렸다. '드론과 인류'란 제목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인간이 만든 드론이 전쟁의 도구로 전락한 상황을 다룬 다큐다. 전쟁 피해 현장의 직접 취재를 통해 샤헤드 드론의 공포를 이겨내고 있는 우크라이나 여군들을 만난 현장도 다뤘다. 그리고 어느 여군의 가족들이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대화가 인상적이었다. 전쟁 중인데도 따뜻한 가족애가 느껴졌다. 그리고 한 남자아이가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 큰 충격이었다. 엄마가 요리를 해주면서 집에 함께 있는 것보다 총을 들고 드론을 막아내는 군인 엄마가 더 좋다는 말이었다. 얼마나 밤낮이 공포였으면 저렇게 대답할 수 있을까. 그만큼 아이에게는 무기로 사용되고 있는 드론이 끔찍하다는 것일 테다.
폭격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불안과 공포에 떨고만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는 어른들의 노력과 경험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서늘함이 내 마음을 후벼 팠다. 언제 다시 드론의 공격이 시작될지 모르는 그곳의 현실이 안타까웠다.
옛날에도 그랬고, 현재도 여전히 세계는 전쟁 중이다. 강한 나라가 약자의 나라를 넘보는 것은 변하지 않고 있다. 경제적 전쟁도 마찬가지다. 부와 권력을 쥔 자와 그렇지 못한 약자의 식탁도 공평하지 않는 세상으로 치닫고 있다. 민주주의와 법도 흔들리고 있다.
만일 한반도에도 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 잘못도 없는 민간인을 폭격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항할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전쟁 영상과 이런저런 나의 잡다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사실 나는 드론에 관심이 많았다. 마법 같은 일을 해내는 것이라고만 알았다. 산불이 났을 때는 소방드론. 사람이 갈 수 없는 높은 산이나 벼랑으로 날아가서 생태계의 정보를 알아내는 촬영드론. 가벼운 물건을 실어 나르는 택배드론. 실종자를 찾아낼 수 있는 열화상드론. 농촌사람의 건강을 위해서 공중에서 농약을 뿌리는 농업방재드론 등. 인간의 정서와 편리함에 존재하는 것으로 알았다. 그리고 인간이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섬까지 날아가서 섬의 섬세함까지 담아 목적지로 되돌아오는 것이 신비하고 신기했다. 드론이 어떤 방식으로 사진을 찍느냐에 따라 인간의 뇌는 더 활성화된다고 믿었다. 드론과 인간의 관계는 끝없이 도전하고 발전하는 산과 바다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세계와 경제는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애초에 좋은 의도로 만든 드론까지 사악한 인간들의 욕심으로 선한 인간을 살생하는 무기로 전락했다. 무섭고 슬픈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