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善良)이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착하고 어질다.’라고 나와 있다.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일까? 주변의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람으로 각인되었을까? 문득, 사과 하나를 골라 깎다가 사과의 계절을 생각한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매달기까지 얼마나 많은 굴곡진 바람을 마셨을까. 사과의 삶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날은 벼랑이었을 것이다. 겨울을 견딘 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비로소 성장한 사과를 하나씩 내보내는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주름이 생기고 나이가 들어가고 철이 들면 한 번쯤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지금껏 우리가 만났던 인연은 무수히 많다. 부모를 비롯해 형제자매 그 주변으로 연결되는 무수한 끈이 그것이다.
나에게도 무수히 스쳐간 인연이 있었다. 그중에서는 아직까지 시의 끈을 잡고 편히 소통하는 인연도 있다. 그리고 어느 날 먼지처럼 사라져서 주소도 모르는 인연도 있다. 몸이 아프다고 게으름을 피워도 소식을 끊지 않고 문학의 길로 인도한 선배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겸허해진다. 현재의 마음을 다 열어 보일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나쁜 일은 서둘러 잊어버리자, 튼튼한 나무가 되는 과정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내가 힘들 때마다 꽃의 마음을 건네는 선배님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사과가 빨갛게 익어갈 무렵이면 곁을 떠난 친구가 보고 싶어진다. 사람이 살다 보면 어떤 사정도 생겼을 것이고 슬픈 이유로 칩거에 드는 사람도 있다. 그 침묵을 기다려주는 것도 중요하다. 한때 나도 학교 친구에게 목을 맬 때가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 친구를 무척 사랑했었던 것 같다. 어떤 이유로 침묵하고 싶은지 왜 문학을 접으려고 하는지, ‘왜’라는 질문을 수시로 쏟아부었다. 수시로 전화를 해서 그 이유를 밝히라고 귀찮게 했었다. 집착은 도를 넘어 홀로 강둑을 걷게 했고 홀로 강둑이 되어 섭섭함과 배신감에 한없이 울기도 했었다. 그때의 나의 울음은 그것이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 사랑이라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때의 아픔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만큼 그를 사랑했으므로.
어떤 사람은 선량한 면모를 다 갖추었는데도 불편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선량함에서 약간 벗어났는데도 불구하고 함께 있으면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가 좋다. 전자의 경우는 사는 방식이나 수준이 나와 많이 달라서 그런지 소통하는 과정에서 어긋나는 경우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말투다. 알게 모르게 정확하지 않는 말투로 인해 기분이 상할 때는 앞이 보이지 않는다.
부드럽지 못한 말투로 정확하지 않는 말투로 상대에게 충고하는 사람도 문제지만 충고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도 문제가 되는 세상이다. 항상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면서 뒷골목에서는 상대를 선량하다고 칭찬을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상대방의 삶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도 못한 상태에서의 충고는 상대를 더 아프게 한다. 물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열등감도 있겠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다. 상대가 상대를 바라보는 마음가짐이 문제고, 자신처럼 바꿔주길 바라는 욕심이 상대를 짓누르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상대를 빠르게 판단하지 않는다. 수십 번 생각 끝에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명확한 선을 긋는다. 나는 그런 선배가 좋고 그런 동료가 좋고 그런 후배가 좋다. 말의 품격을 갖춘 사람이 좋다. 물론 나에게도 문제가 많다. 이 바쁜 세상에 서로에게 상처받을 여유가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람에게 미련을 두게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상대방에게도 크나큰 슬픔이다. 타고난 성격과 오래된 습관은 고치기 힘들다. 그 사람은 그 사람에 맞는 사람이 분명 있으므로 잠시 동안만이라도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것도 좋다.
우리는 동의할 수 없는 말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피해를 입은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다. 울적할 때 본능적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 기분을 풀고 고독함을 채우려고 한다. 우리는 성급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급한 행동을 보일 때도 다반사다. 그러다가 더 깊은 상처의 수렁으로 빠진다. 그것은 성격이 급한 탓도 있지만 오랫동안 일에 지칠 경우에 더 그런 것 같다. 그러므로 틈틈 자신에 맞는 여유를 찾아 즐겨야 한다. 영화, 공연, 봉사, 여행 등 사람들이 북적대는 도시를 둘러보면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해야 한다.
잘 생긴 사과는 아니지만 오늘 아침 깎은 사과가 참 맛있다. 내가 좋아한 사람이 보낸 사과라서 더 맛있다. 부지런히 햇볕을 빨아들이고 부지런히 비바람에 항거하고 부지런히 벌레와 맞선 결과가 아닐까. 겉은 화려하지 않으나 시련을 견딘 아삭아삭한 맛, 이것이 선량한 사과가 아닐까. 선량한 땅이 그리워지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