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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먼지마마 Aug 01. 2024

도토리묵 누가 먹었을까?

지금은 대서다.

매일 폭염특보가 발효 중이다.

이렇게 매일 폭염이 뜨다니. 덥고 습하고 덥고 덥다.


삼 남매가 이번주 금요일 어제부로 모두 방학에 들어갔다.

가장 큰 고민은 삼 남매의 점심.

막내는 다음 주부터 할머니집에서 점심을 먹겠노라 선언했다.

내심 기쁨과 함께 이건 무슨 소리지?

계란에 장국을 먹더라고 누군가 손수 차려주는 갓 차려진 음식이 최고다.

여든 넘은 시어머님이 어느 날 아이들 계란말이를 해 준 것을 본 적이 있다.

계란말이를 한 입 크기로 잘라 그 위에 케첩을 하나하나 짜주었다.

그 모양이 어찌나 앙증맞고 귀엽던지.

최선을 다해 뽄을 부린 계란말이를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먼지에게 물었다.

할머니 음식은 어떠냐고. 그리고 엄마 음식은 어떠냐고.


할머니 음식은 먹기가 좋아요. 먹기에 적당해요.

할머니 장국은 입맛 없을 때 먹기 좋은 음식이에요.

할머니 음식은 항상 맛있는데 항상 비슷한 음식이에요.

할머니는 뭔가 옛날부터 음식을 만들어서 맛은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맛있는 건 할머니 음식이에요.


엄마 음식도 맛있는데 할머니 음식이 더 맛있고, 메뉴는 엄마가 더 다양해요.

엄마는 음식은 맛있고 다양한데, 몸에 좋은 음식을 달라고 한다.

팩폭에 쓰러질 지경이지만 현실을 인정하고 힘을 내야지.


가장 큰 고민은 아이들의 점심.

이번주 첫째가 오전에는 방과 후 교실을 가고 점심 먹고 온다더니 안 갔다.

방학인데 하루도 빠짐없이 전교생이 학교를 간대서 안타까웠다,

그러나, 공부도 하고 점심도 해결된다니 기뻤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화요일 아침이 되니 아이는 일어나지 않았다.

학교 가자니 뭔 소리냐며.

전교생이 한다면서?

의아함과 실망감이 밀려들었다.

점심 어떻게 하지?

운동을 한다고 닭가슴살과 양상추, 발사막드레싱, 밥 조금만 있으면 되는 아이다.

둘째는 한식 파다.

햄야채 볶음밥을 해서 도시락통에 싸두었다.

도토리묵과 오이소박이, 복숭아는 잘라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저녁에 퇴근해서 큰애 저녁을 차려주었다.

도토리묵을 누가 조금 먹은 것 같았다.

둘째가 먹었나 보다 했다.


큰애도 맛보라고 조금 떠주었더니 제법 먹는다.

그리고 엄마가 만든 거냐고 물었다.

왠지 어깨가 으쓱했다.

그래 엄마가 한 거야.(엄마도 이런 거 할 줄 알아.)

큰애가 도토리묵을 먹을 줄은 몰랐다. 조금이지만 말이다.


막내는 겨우 한 조각을 젓가락으로 먹다가 떨어뜨렸다.

새로 한 조각을 주려고 했는데 안 먹겠단다.

학교에선 도토리묵 안 나오냐고 물으니 나온단다.

그럼 어떻게 먹냐고 하니 젓가락으로 찔러서 숟가락으로 먹는다고 했다.

근데 어제는 왜 안 먹었냐고 하니 귀찮아서라고 했다.

또 떨어뜨릴까 봐 안 먹었다는 것이다.


내가 남은 도토리묵을 다 먹어치웠다.

큰애가 그 많은 걸 다 먹었냐고 했다.

밥 대신도 아니고 암튼 너무 많이 먹었나 싶어 부끄러웠다.


둘째가 제일 늦게 집에 왔다.

당연히 둘째가 먹었을 거라 생각하고 도토리묵을 먹었는지 물었는데 안 먹었단다.


도토리묵 누가 먹었을까?


어느 날 먼지 친구 엄마집에 갔는데 생애 처음으로 묵사발이란 걸 먹었다.

무척 새롭고 맛있었다.

냉면 육수를 사두었는데 한 번은 해 먹어 봐야지 벼르고 있다.


어릴 적 우리 엄마는 도토리묵무침에 김가루를 뿌려주었다.

엄마의 음식이 그리운 하루하루다.

새콤 달콤 고소 시원한 도토리묵으로 더운 하루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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