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모음] 초콜릿과 알사탕

Katie Kim

by Katie

찌는 듯한 무더운 여름날, 나는 동네 개인 신경정신과 진료실 의자에 위태롭게 앉아 있었다.

에어컨이 쌩쌩 돌아가고 있어 실내 공기는 서늘했지만, 내 등줄기에는 끈적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누군가 뇌를 힘껏 쥐어짜는 듯한 두통. 동시에 밀려오는 호흡곤란과 현기증에, 내 몸과 두 손은 제멋대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얀 가운에 깔끔한 셔츠를 입은 정신과 의사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처음 기절하신 게 8개월 전이라고 하셨죠? 8개월 가까이 불면증도 겪고 계시고...

어쩌다 그렇게 되신 건가요? 그 무렵에 큰 사고나,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 있었습니까?”


한참 입을 열지 못하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제... 제 집은 험프리스 부대랑 가까워요. 집 근처에서 종종 헬기나 정찰기가 돌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그날은 정찰기가 평소보다 너무 낮게 날아다녔어요. 그 정찰기의 하단을 그렇게 가까이 본 건 처음이었어요. 순간, 그것이 그대로 제 위로 떨어지는 줄 알았어요.”


타닥, 타닥. 의사가 내가 하는 말을 컴퓨터에 기록하느라 타자를 치는 소리가 예민해진 내 고막을 날카롭게 긁어댔다. 마치 누군가 서둘러 나에게 달려오는 듯한 소리 같아서 무서웠다.


신음소리가 새어 나오지 않게 이를 악물고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 손톱이 손등을 파고들어 빨갛게 변했지만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감으니 오히려 뇌리에 남아 있던 전투기의 잔상이 더욱 선명하게 떠올랐다.

8개월 전 그 겨울,

긴 삼각형 모양을 한 정찰기의 후면이 눈앞에 펼쳐지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하늘을 찢는 듯한 굉음과 함께, 검회색 비행 물체가 머리 위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미군 부대 옆에 살기에 헬기나 전투기가 날아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낮게 날아오는 것을 본 적은 없었다. 내 집 앞에서 어두운색 전투기의 아래쪽이 바로 내려올 것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UFO 같은 비행 물체가 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것만 같은 공포였다.


순간, 기억이 발작처럼 되살아났다. 대기실에서 급히 안정제를 삼켰지만, 약효는 아직 돌지 못한 모양이었다. 의자 손잡이를 쥔 내 손은 여전히 제멋대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하아...”

“괜찮으세요? 숨을 크게 들이마시세요.”


나는 의사 말대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진정하려고 노력했다. 간호사가 뛰어들어와 나에게 물과 약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약을 입에 털어 넣고, 의자 손잡이를 부여잡은 채 정신을 차리려 필사적으로 버텼다. 간호사는 곁에서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차례 폭풍이 지나가고 겨우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틀렸다가 풀린 듯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나의 손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지만 호흡은 가라앉았고 내 머릿속에서 쏟아져 나오던 공포와 두려움은 의식 너머로 사라져갔다.


간호사는 다시 나에게 물을 권하고 상태를 잠시 살펴보다 진찰실을 나갔다. 의사는 나에게 상담을 중지했으면 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여기도 또다시 도망친다면 이 공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괘..괜찮습니다. 계속 하시죠.”


의사가 무표정한 얼굴로 잠시 나의 상태를 살펴보다, 다시 질문을 시작했다.


“혹시, 군과 관련된 일을 하시나요?”

“아니요, 프리랜서 비즈니스 영어 강사입니다. 기업에서 직원 영어 교육을 위해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의사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그는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이내 건조한 표정으로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그 전에 이와 관련해서 충격을 받았거나, 사고를 당하신 적이 있으신가요?“


나는 의사의 말에 잠시 생각하느라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스치듯 떠올랐다. 아버지는 어린 시절, 먹을 것을 구해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오던 할아버지를 참 많이도 원망했다고 했다. 어느 날 전쟁이 끝나고 먹을 것 하나 없던 척박한 고향 땅에서, 할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려 땅콩 농사를 지으러 나갔다가 미군 트럭에 치여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아주 어릴 때 일어난 일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만난 적이 없다. 납골당에서 빛바랜 낡은 사진과 유골함을 본 게 전부였다. 그러니 70년 전의 트럭 사고가, 지금 내가 느끼는 비행기 소리에 대한 공포의 원인일 리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글쎄요... ”

“8개월 전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셨나요?”

“여행...”


평택에서 서울까지 가는 길이 제법 기니 여행이라면 여행이겠구나 생각했다.

2024년 12월 3일, 여의도 광장에서 장갑차가 들어오던 그날. 친구를 만나러 서울에 갔다가 친구와 함께 저녁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다. 10시 40분경, 뉴스에서 들려오는 계엄령을 듣고 그 술집에 있던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대통령은 한국이 심각한 상황이라며 계엄을 선포했다. 평화롭게 술을 마시던 사람들은 모두 어이없어했다.

나도 역시 그 방송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그 대통령이 "...처단한다."라는 말을 하는 순간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의사도 처단 대상이라는 이야기였는데, 그 '처단'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 무서웠다. 그때 미국에서 치과의사를 했던 친구가 술잔을 거칠게 내려놓더니 욕설을 뱉었다. 다른 자리에서도 여기저기에서 욕설이 들려왔다.


"저 미친 새끼!“

"케…켈리.“


사람들이 웅성거리면서 각자의 친구나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켈리도 한참을 핸드폰을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갈 곳이 있다면서 갑자기 서둘러 자리를 떠나려고 했다.


"어…어디 가!“

“국회로 가야지!”

“켈리, 계엄령이면 군인들도 나올 거야. 무장했을 거야. 총을 쏠지도 몰라.”

"혜인아, 그럼 이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그녀는 오랫동안 뉴욕에서 살던 친구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 코로나로 자신이 운영하던 치과도 문을 닫고,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미국에 염증을 느껴 한국으로 돌아온 친구다. 해외에 오래 살았던 그녀가 나보다 지금 한국의 상황에 더 분노를 느끼고 있는 게 묘하게 느껴졌다.


"넌 집에 가도 돼. 미안, 우리 나중에 다시 보자.“


친구가 뛰어나갔다. 나는 그 친구의 뒷모습을 보면서 순간 불길한 마음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가 총이라도 맞는 끔찍한 순간이 떠올랐다.


"켈리!“


친구를 불러 세우는데 사람들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의 핸드폰에도 알람이 뜨기 시작했다. 나는 또 다른 친구가 보내는 문자와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여의도 쪽으로 군 장갑차 이동 중이야! 너 오늘 여의도 쪽에 간다고 했지? 빨리 피해!‘


친구가 장갑차가 이동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 링크를 소셜 미디어로 보내주었다. 순간 나는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켈리가 장갑차에 깔리는 장면이 떠올랐다.


"안 돼!! 켈리!!“


나는 마치 비명을 지르듯 그 자리에서 소리를 질렀다.


“괜찮으십니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여전히 병원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뭔가 떠오르셨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의사에게 그 기억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라도 저 의사가 이 일에 대해 나와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떡하지? 내 공포를 거슬려하거나, '과민반응'이라며 비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란 꼭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실제로 전쟁을 겪지 않은 사람이 영화나 이야기만 듣고도 마치 자신이 겪은 사람처럼 느끼고 PTSD를 겪는 분들도 계십니다.“


왠지 의사가 내 생각을 읽고, 의도적으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놀라 그 의사의 침착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전쟁을 실제로 겪지 않아도요?“

"정찰기를 보는 순간, 환자분의 교감신경은 마치 참호 속에 웅크린 군인처럼 곤두서는 겁니다. 정신은 아니라고 해도, 몸은 이미 전쟁터 한가운데에 있는 셈이죠. 그런 군인들은 평생 그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혜인 씨의 경우는 일시적인 것일 수도 있지만 당분간 좀 더 지켜보도록 하죠.“


그러곤 그는 손가락을 움직여 뭔가를 한참 기록하더니 나에게 조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최근에 이런 증상을 호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일단 처방해 드리는 약을 드시고 좀 더 안정을 취하도록 해보시죠.“


나는 그 말을 듣고 그가 그 사건 이후 다른 이들도 비슷한 증세를 겪고 있다고 넌지시 이야기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나는 처방전을 받아 들고 다음 상담을 예약한 뒤, 터덜터덜 병원을 나섰다.

다행히 아까 먹은 약 기운이 도는 건지, 미친 듯이 떨리고 숨이 안 쉬어지던 증세는 조금 가라앉았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택시를 잡아탔다.


전쟁을 겪은 군인들과 같은 PTSD…

내게 전쟁이란 부모님이나 할머니에게서 듣던 옛날이야기에 불과했다. 기껏해야 다큐멘터리나 영화 속 화면으로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어째서 내 몸은 포화 속에 고립된 군인처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떨고 있는 것인가.

택시에 서둘러 올라탄 나는 짧게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한쪽 구석에 앉았다. 앱으로 목적지를 입력했기에, 기사에게 따로 말을 걸 필요도 없었다. 나는 조용히 차 안에 몸을 맡긴 채 집에 도착하길 기다렸다.


지이잉― 지이잉―


그때, 주머니 속 휴대폰 진동 소리에 몸이 움찔했다. 액정에는 친구의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나야, 켈리. 너 괜찮아? 병원 상담 끝났어?“

"응, 지금 택시 타고 집에 가는 중이야.“

"그래, 잘했어. 그러게, 내가 진작부터 가보라고 했잖아.“


친구는 지난 겨울 그날 밤 이후, 내가 점점 무너져 가는 걸 곁에서 지켜보았다. 그녀는 여러 번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지만, 나는 말을 듣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도 우울증으로 고생했을 때 상담받고 약을 먹으면서 금방 나아졌다고 했다.


"요즘은 공황장애나 우울증은 감기 같은 거야. 거부감 가질 필요 없어.“

"응, 그래. 가길 잘한 것 같아. 고마워.“

"한국 사람들은 신경정신과 간다고 하면 나약하다느니 뭐니 하지만, 그건 무식해서 그래. 이건 마음의 문제라기보다, 뇌신경이 충격을 받아 잘못된 자극이 생기는 거야. 운동하다 근육 다치는 거랑 비슷한 거지.“

"그런 걸까?“

"그럼. 감기랑 다를 게 없어.“


그녀의 말을 듣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호흡이 점점 고르게 돌아왔고, 식은땀도 어느새 에어컨 바람에 식어 있었다. 친구가 의사의 처방을 묻자, 나는 대답을 망설였다. 택시 안에서, 기사에게 들릴까 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


"나중에 만나서 얘기할게. 아직 택시 안이야.“

"야, 너 오늘 시간 있어?“

"응? 왜? 오늘 수업 없어서, 그냥 집에 가서 쉬려고.“

"에이, 이럴 때일수록 바깥바람 좀 쐬어야지! 나 사실 지금 너희 집 앞이야. 내일 주말이니까, 나랑 1박 여행 가자! 내가 운전하고 여행코스도 싹 짜놓고 리조트도 예약해 놓았어. 넌 그냥 몸만 오면 돼!"

"뭐? 갑자기?“


그녀는 원래 이런 즉흥적인 사람이었다. 교회에서 만난 고등학교 선배였지만 성격은 나와 정반대였다.

졸업 후 미국으로 가면서 연락이 끊어졌다가, 몇 년 전 한국에 돌아온 켈리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리고 내 소개로 영어 강사 일을 시작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자유롭게 구사하는 덕분에,

학원가에서는 꽤 인기 있는 강사였다.


그때, 마침 택시가 내 집 앞에 도착했다. 택시 문을 열고 내리자, 집 앞에 차를 세워둔 그녀가 보였다.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손에는 휴대폰을 쥔 채 통화하고 있었다.


“오, 나이스 타이밍!”


그녀는 나를 보자 손을 흔들며 외쳤다. 그녀의 짧고 곱슬거리는 갈색 단발머리가 여름 햇살 아래서 명랑하게 찰랑였다.


“갑자기 여행이라니 무슨 소리야.”

“자, 일단 이거 받아. 페퍼민트 티야. 진정 효과가 있대.”


나는 얼떨결에 친구가 건네주는 종이컵을 받았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여름 더위였지만, 그녀가 건네준 따뜻한 차가 싫지 않았다.


“지금 연천까지 가려면 빨리 출발해야 해. 저녁에 도착하니까, 바로 호텔 가서 쉬고 거기서 저녁 먹고, 다음 날 아침에 상승전망대로 갈 거야.”

“연천? 거기 멀지 않아?”


나는 뜬금없는 여행에도 놀랐지만, 그 목적지가 ‘연천’이라는 것에 더욱 놀랐다. 그곳은 내 아버지의 고향이었다.


“멀긴, 한 4시간? 야, 미국에서 운전할 때 4시간은 그냥 앞 동네야!”

“아니… 이렇게 갑자기!”

“거기서 망원경으로 보면 북한군 초소까지 보인다는 거야. 사람들이 밟지 못하는 DMZ도 자세히 볼 수 있대. 내가 예약 다 해놨어. 갈 거지?"


DMZ…. 나는 친구가 왜 갑자기 그곳에 가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의사의 말처럼, 내가 느끼는 공포가 전쟁 속에 있는 군인의 공포와 같다면, 어쩌면 그곳에서 내 공포의 근원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나를 위해 친절히 문을 열고 앞자리에 앉혔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내비게이션에 연천 ‘백학 자유로 리조트’ 주소를 입력했다.


“너 그동안 불면증으로 잠도 못 잤잖아. 수면제 처방받은 거 있지? 그거 먹고 한숨 푹 자.”

“아, 아냐. 너 운전하는데 옆에서 자면 안 되지.”

”잔소리 말고 눈 감아. 환자 우대 서비스니까.“


친구는 내가 망설이자 억지로 내 손에 물병을 쥐여주었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약봉지에서 의사가 처방해 준 수면유도제를 꺼냈다. '조금 센 수면유도제'라는 의사의 말이 떠올랐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8개월간 나를 괴롭힌 악몽에서, 단 1시간이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약기운은 생각보다 빨리 돌았다. 친구의 차가 평택 시내를 빠져나가 자유로에 진입할 때쯤,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차의 웅웅거리는 진동 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전혀 다른 소리로 바뀌기 시작했다.


'덜컹, 덜컹.‘


그것은 매끄러운 아스팔트를 달리는 승용차가 아니었다. 거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묵직한 군용 트럭이 큰 바퀴를 굴리며 달리는 소리였다. 짐칸 위에는 짧은 곱슬머리를 깔끔하게 빗어 넘기고, 담배를 입에 물고 있는 미군들이 올라타 있었다. 트럭 뒤꽁무니를 쫓는 까까머리 소년들이 '쪼꼬레토! 쪼꼬레토!'라고 외치며 달리고 있었고, 군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낄낄 웃고 있었다.


아이들은 미군 부대 입구까지 트럭을 따라갔다. 트럭은 부대 정문 보초병의 수신호를 받고 잠시 멈춰 섰다. 기회였다. 아이들이 와르르 달려가 차체에 매달렸다. 달콤한 간식거리를 달라고 더욱 보채기 시작했다.

짐칸에 타고 있던 미군 중,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뭐라 알 수 없는 영어를 웅얼거리며 아이들을 향해 초콜릿과 사탕 따위를 흩뿌렸다.


그러자 아이들은 어미가 던져준 먹이를 낚아채는 아기 새들처럼, 허공으로 손을 뻗거나 바닥을 기며 그것들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대여섯 명 남짓한 아이들 머릿수에 비해 사탕의 개수는 턱없이 부족했다.

아이들은 더 달라고 손을 뻗으며 더욱 간절하게 외쳤다.


"쪼꼬레토! 캔디! 기브 미!“


하지만 미군 트럭은 무심했다. 육중한 바퀴는 곧 게이트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고, 굳게 닫힌 철문 뒤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유령처럼, 그 모든 풍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까까머리에 흙투성이 얼굴을 한 소년 하나가 불쑥 내 앞으로 다가와 말을 걸었다. 검댕이 묻은 손에는 은박지에 싸인 초콜릿과 사탕이 들려 있었다.


"야, 이거 봐! 나 쪼꼬레토 제일 큰 거 받았다! 빨리 튀자. 저 자식들이 뺏으려고 달려들 거야! 우리 저기 숨어서 나눠 먹자, 응?“


나는 어느새 그 소년에게 손목을 잡혀 있었다. 제대로 먹지 못해 깡마른 몸, 뙤약볕에 그을려 거무스름한 얼굴. 그 소년의 눈동자는 흥분과 기쁨으로 가득 차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쩐지 내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아… 나… 나는….“

"너도 초콜릿 먹고 싶지?“

"아니야, 난 괜찮아.“

"에이 괜찮긴. 자, 이건 좀 나눠 줄 수 있어. 하지만 이 알사탕은 안 돼.“

"왜?“

"내 여동생 줘야 해. 이거라도 안 가져가면 여동생이 또 울 거야. 그러니까 이건 나눠줄 수가 없어.“


소년이 내 입속으로 작은 초콜릿 조각을 손으로 쑥 넣어 주었다. 나는 '어' 하고 입을 벌린 채 그 초콜릿을 삼켰다.


"야, 잠깐 일어나 봐. 휴게소야. 나 화장실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친구가 나를 흔들어 깨우는 통에, 순식간에 꿈에서 깨어났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눈을 비볐다.

"어… 여… 여기 어디야? 얼마나 왔어?“

"두 시간 정도? 너 완전히 기절한 것처럼 자던데? 푹 잤어?“


창밖을 보니 '자유로 휴게소' 간판이 보였다. 두 시간을 달렸다는데 벌써 파주까지 왔다니, 조금 놀라웠다. 3년 전, 아버지와 함께 조부모님 묘를 파묘해 납골당으로 옮기러 연천에 갔을 때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졌다.


"으… 응.“


두 시간을 한 번도 깨지 않고 자다니. 집에서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였는데…. 역시 신경안정제에 수면유도제까지 털어넣은 덕분인 것 같았다. 그러나 방금 꾸었던 꿈은 기억 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나 꿈에 아버지 어린 시절이 나온 것 같아.“


나와 친구는 화장실에서 나와, 휴게소 편의점에서 마실 것과 출출함을 달랠 간식을 고르고 있었다.


"뭐? 정말?“

"응…. 3년 전에 할아버지, 할머니 묘 이장할 때, 아버지가 어린 시절 미군들에게 초콜릿 얻어먹었다고 이야기하셨거든. 근데 방금 꿈에 딱 그 장면이 나왔어.“

"야, 그거 신기하다. 근데 그거 우리 어머니도 자주 이야기하셨는데. 하하하.“

"정말?“


나는 옛 집안의 가난을 드러내는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웠지만, 그녀의 어머니도 겪으셨다는 말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응, 그 <국제시장>인가 그 영화 보시면서 펑펑 우시더라고. 딱 그 장면이었나 봐. 우리 둘째 외삼촌이, 미군들 오면 꼭 달려가서 초콜릿 얻어서 어린 동생들 나눠줬다고 하셨어. 혹시나 초콜릿 못 받아오면 우리 엄마가 하도 울어서, 외삼촌이 다른 애들이랑 싸워서라도 작은 알사탕 하나는 꼭 쥐여줬다고 하시더라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왠지 꿈속의 소년이 말한 여동생에게 줄 알사탕 이야기와 닮아 있었다. 우연일까?


친구는 계산대 위에 음료수와 과자를 올려놓다가, 매대 옆에 쌓여 있는 초콜릿 바들과 ‘옛날 알사탕’이라고 적힌 투명한 비닐 포장 속 둥글고 굵은 사탕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참나. 지금 한국을 보면 진짜 상상도 못 할 일이야. 안 그래? 요즘엔 혈당 스파이크의 주범이라고 해서, 줘도 안 먹잖아. 하하하.”


내가 피식 웃자, 친구도 따라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작은 초콜릿 바 하나와 알사탕 한 봉지를 집어 계산대 위에 툭 올려놓았다.


“그래도, 하나 살까? 네가 꿈까지 꿨는데 그래도 먹어줘야지. 그치?”


그녀가 장난꾸러기 같은 미소를 지으면서 낄낄 웃었다. 나는 얼른 카드를 점원에게 건넸다. 친구가 자신이 다 사겠다고 했지만 그건 너무 염치가 없는 거라서 내가 계산하겠다고 우겼다.


그러자, 친구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초콜릿과 사탕 봉지를 집어 들고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보니 왠지 나도 아이가 된 기분이 들어 절로 웃음이 났다.

편의점 점원이 ‘이 아줌마들 왜 저래?’라는 눈빛으로 우리를 힐끔거렸지만,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마주 보며 웃었다.


나와 친구는 그때부터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따라 부르기도 하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며 여행 기분을 만끽했다. 나는 속으로 친구의 갑작스러운 여행 제안을 받아들이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꿈속에서 소년의 마르고 까맣게 탄 얼굴 때문인지, 왠지 아련하고 코끝이 시큰한 기분이 들었다.

문득, 아버지가 지금까지도 단 음식을 입에 대지 않으시는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단순히 식성 때문이 아니라, 그 단맛을 느낄 때마다 혀 밑에서 함께 배어 나오는 씁쓸한 기억 때문이 아닐까?

자유로 휴게소에서 리조트까지는 한 시간 정도 걸렸다. 평택에서 오후 3시쯤 출발했는데, 백학 자유로 리조트에 도착해 체크인을 하고 객실에 들어서니 어느덧 저녁 7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골프 클럽이 있는 리조트라 창밖으로 푸른 골프 코스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여름이긴 하지만 사람이 많은 리조트는 아니라, 골프를 치러 온 사람들과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대부분인 조용한 곳이었다.


친구는 한국에 산 지 몇 년 되지도 않았으면서 참 이런 곳을 잘도 찾아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산 나보다 더 한국에 대해서 잘 아는 것 같았다.


“아, 맞다. 조금 있으면 선셋(sunset) 볼 수 있겠다! 내가 찾아봤는데 이쪽 골프장 뷰 발코니에서 해 지고 해 뜨는 거 보면 정말 멋있대.”

“넌 그런 걸 다 어떻게 찾아?”

“그냥 검색하는 거지. 뭐.”


우리는 말없이 맥주를 홀짝이며, 산등성이 너머로 붉게 저무는 해를 바라보았다.

그 평화로운 풍경을 보고 있자니, 아침 내내 공황 발작과 불면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내 모습이 아득히 먼 전생의 일처럼 낯설게 느껴졌다. 여름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저 노을이, 어쩌면 현실이 아니라 꿈속의 한 장면인 것만 같았다.


나는 하루 동안 지옥 같은 혼란과 천국 같은 평화를 모두 맛본 셈이었다.

내가 잠시 상념에 젖어 있는 사이, 친구는 말없이 붉게 물든 하늘을 응시하며 맥주를 삼키고 있었다.


“있잖아. 나 사실 오늘 돌아가신 엄마 기일이야.”

“뭐?”


친구가 벌써 맥주 한 캔을 다 비우고 두 번째 캔을 따면서 불쑥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의 어머니가 암으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는 것은 들었지만, 오늘이 기일일 줄이야.


“사실 DMZ가 보고 싶었던 것도, 엄마가 나 한국 가면 자기 둘째 오빠 찾아 달라고 부탁해서 와 본 거야.”

“뭐? 너희 어머니도 고향이 연천이야?”

“아냐, 엄마는 고향이 충청도야. 전쟁 거의 끝 무렵이었는데, 패배해서 도망치던 북한군이 엄마네 집에 쳐들어왔었나 봐. 근데 아들이 넷이나 있으니, 큰 아들을 인민군으로 끌고 가려고 했대. 그래서, 큰 외삼촌은 장가가야 한다고 도피시키고, 나머지 외삼촌들은 너무 어리니까… 결국 둘째 외삼촌이 자원해서 갔대.”

“세상에….”


그녀는 고등학교 선배였지만, 자신을 언니로 부르거나 연장자로 대하지 말라고 했다. 미국에선 나이가 몇 살이든지 그냥 다 친구라고, 우리는 서로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하며 친구가 된 터였다.


“그래서 북한군에 끌려가서 전투를 하게 됐는데, 연천에까지 끌려와서 전투에 참여했대. 나중에 그 상황을 전해준 외삼촌 친구 말로는, 북한으로 넘어가기 전에 둘이 빈틈을 봐서 도망치기로 했다나 봐.”


친구는 맥주 캔의 물기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북한군이 패색이 짙어지니까, 인질로 잡은 사람들까지 죄다 끌고 가려고 했나 봐. 감시가 허술해진 틈을 타서 둘이 도망치기로 한 거지.”

친구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 그래서 어떻게 되셨어? 도망치신 거야?”

“음, 둘째 외삼촌 친구는 기적적으로 그곳을 빠져나와서 도망쳐 왔대. 외삼촌도 바로 뒤에 따라오고 있는 줄 알았는데, 친구분 등 뒤에서 총소리가 타탕, 하고 들리더래.”


나는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러나 친구는 여전히 노을이 지고 있는 바깥 풍경에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래도 그분은 돌아보지 않고 계속 달리고 달려서, 북한군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뛰었대. 결국 자기 홀로 빠져나왔다고 하시더라고. 외삼촌이 죽은 걸 본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살아서 빠져나온 걸 본 것도 아니니까…. 생사를 알 수가 없었던 거지.”


나는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친구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녀는 딱히 슬프거나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붉어진 하늘을 바라보며 맥주를 넘기고 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둘째 오빠를 평생 기다렸다고 한다. 큰오빠가 미군 부대에서 얻어다 주는 간식 가운데,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사탕은 일부러 빼두어 오빠가 돌아올 때 주려고 챙겨두었다고 했다.

하지만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오빠가 북한군에서 도망쳐 나오지 못하고, 일부러 남은 거라며, 친구 어머니의 가족을 의심했다고 한다.


"결국 엄마 가족들은 마을 사람들의 차가운 눈총을 견딜 수 없었대. 둘째 오빠가 북으로 갔다는 이유만으로 '간첩 집안'이라고 수군거리는 의심을 버티기 힘들었던 거지.“


마침 그 집의 큰 아들이 미군 부대에서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온 가족이 도망치듯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고 한다. 친구의 어머니는 낯선 미국 땅에서도 평생 둘째 오빠를 기다렸다고 한다.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가장 따랐던 오빠를 그리워하며 남몰래 눈물짓곤 했다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녀의 얼굴 위로, 창밖의 어스름한 저녁 하늘 같은 짙은 그늘이 내려앉았다. 늘 밝기만 하던 친구에게서 처음 보는 낯선 표정이었다.

친구는 아직 뜯지 않은 알사탕 포장지를 만지작거리다가, 남은 맥주를 비우며 씁쓸하게 웃었다.


"사실, 그날 계엄 선포됐을 때 말이야. 미국에 있는 외삼촌이랑 식구들이 당장 돌아오라고 난리가 났었어."

미국에 사는 전남편까지 전화를 걸어와, 비행기 표를 구해 줄 테니 당장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성화를 부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엄마 마지막 유언 들어주기 전까진 절대 못 간다고. 내가 하도 고집을 피우는 바람에 우리 집안이 한바탕 뒤집어졌었어. 후후."


친구는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만약 내가 혼자 한국을 떠났는데 여기서 또 전쟁이 터진다면? 그 아비규환 속에 너만 남겨두고 나 혼자 안전한 곳에 있다는 죄책감... 나는 평생 그 고통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어."


친구의 덤덤한 고백에 목이 메어왔다. 나는 그저 짧게 "고마워."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의 말투가 어눌해지고, 한국어 발음이 점점 외국인처럼 느껴져 테이블을 보니, 그녀는 벌써 맥주를 세 캔째 비우고 있었다.


나는 친구에게 그만 마시라고 말렸다. 다 마신 맥주 캔을 치우고 비틀거리는 친구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 친구는 혀 꼬인 소리로 샤워는 내일 하겠다며, 화장도 안 지우고 그냥 자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나는 잠든 그녀의 곁에 앉아, 챙겨 온 클렌징 티슈로 그녀의 얼굴을 정성껏 지워주었다. 진한 화장을 하고 있을 땐 마냥 어려 보였는데, 화장을 걷어내니 그녀의 민낯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었다. 눈가의 주름, 거칠어진 피부….


우리는 그렇게 밤 10시도 안 돼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다시 꿈을 꾸었다.


포화 속을 달리는 두 명의 군인이 있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

한 명은 멈추지 않고 달렸다. 다른 한 명은 풀숲 쪽으로 사라졌다.

총성이 한 번 울렸다.

풀숲이 잠깐, 푹 꺼졌다.

나는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거기… 사람 있나요?”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리.

알람 소리에 눈을 뜨자, 내 손안에 무언가가 잡혀 있었다.

어제 친구와 편의점에서 샀던 초콜릿이었다.

나는 한동안 초콜릿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초콜릿을 조심스럽게 까서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친구가 그 사이 눈을 뜨고 초콜릿을 들고 있는 나를 보았다.


“웬 아침부터 초콜릿을 먹고 있어? 속 안 쓰려?”

“아니, 괜찮아.”

“너도 참 해장을 특이하게 하는구나?”


나는 친구의 말에 그저 빙긋이 웃어 보였다.

친구는 체력이 어찌나 좋은지 숙취도 전혀 없이 말짱했다. 그녀는 아침에 화장을 말끔히 지운 것을 보고 내게 고맙다고 말하더니, 샤워를 마치고 다시 정성껏 화장했다.


친구의 화장법이 다소 화려한 미국 교포 스타일이긴 했지만, 그녀에겐 과하지 않게 잘 어울렸다. 반면 나는 가볍게 선크림과 베이스만 바르고, 눈썹과 입술에만 생기를 주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상승전망대 예약 시간은 오후 1시. 리조트에서 차로 20~30분 거리라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조식을 챙겨 먹고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다 11시쯤 퇴실했다.


리조트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되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잠잠했던 심장이 다시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가자.”


친구는 내 떨림을 눈치채고 다정하게 나를 토닥여주었다. 그럴 땐 참지 말고 약을 먹는 게 좋다며 생수 한 통을 건넸다.

상승전망대로 가는 길은 꽤 한적했다. 조용한 시골 풍경에 마음이 진정되는가 싶더니,

이내, 부대 앞 게이트와 총을 든 군인이 보이자 다시 긴장이 몰려왔다.

친구는 백미러로 내색을 살피며 괜찮은지, 약은 먹었는지 물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운전석 쪽으로 앳된 얼굴의 군인이 다가왔다. 친구가 침착하게 방문 목적을 말하고 예약자 이름을 대자, 군인은 우리 두 사람의 신분증을 받아 갔다.

그렇게 10분쯤 기다렸을까. 전망대 쪽에서 연식이 오래된 아반떼 차 한 대가 내려왔다.

인솔 차량이었다. 우리는 그 차를 따라 비상등을 켜고 천천히 언덕을 올랐다.

경사가 꽤 가파른 길이었다. 차창 밖으로 간간이 군용 트럭들이 보였고, 이동 중인 한국 군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괜히 가슴이 답답해지고 현기증이 일기 시작했다. 숨이 가빴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아까 삼킨 신경안정제의 약효가 돌기를 기다리며 버텼다.


여러 대의 큰 군용트럭이 주차된, 군인들이 대기하고 있는 소초를 몇 군데 지나쳐서 오르고 또 오르고 나서야, 드디어 상승전망대에 도착했다.


나는 조금 긴장된 마음이 들어 조심조심 차에서 내렸다. 그러나 친구는 왠지 신나서 훌쩍 먼저 내려서 인솔하는 군인을 따라갔다. 친구는 벌써 한참 멀리 있어서 나에게 빨리 오라 손짓을 했다.

우리는 그 군인의 인도로, 드디어 전망대에 들어가게 되었다.


비록 당장 위험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나는 그곳에서 아직 전쟁의 긴장감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 동네 미군 부대 근처를 갈 때 느꼈던 그 긴장감하고도 비슷했지만, 이곳의 긴장은 훨씬 더 강하고, 묵직했다.

전망대 안쪽에 작은 연단이 있었고, 한 30~40명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좌석이 보였다.

인솔한 군인은 약간의 지형에 대한 설명을 한 후에 우리가 가장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쪽에서 망원경을 통해서 보시면, 북한의 초소까지 보실 수 있습니다.”


친구는 군인의 설명을 열심히 듣더니, 곧장 망원경에 눈을 갖다 댔다. 그녀는 망원경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북녘 풍경을 주의 깊게 살폈다.

과연 저 렌즈 넘어 DMZ, 그리고 북한 땅에는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한때 우리의 이웃이자 누군가의 고향이었던 그곳. 폭탄과 지뢰가 곳곳에 숨어있는 그 땅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잠시, 꿈속에서 보았던 소년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뛰어놀고, 여름엔 멱을 감으며 놀았던 저 임진강 너머의 땅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나는 조심스럽게, 떨리는 마음으로 망원경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댔다. 렌즈 속 풍경이 훅하고 눈앞으로 당겨졌다.


그때, 친구의 짧은 탄식이 들려왔다.


“참 푸르고, 아름답구나…. 저런 곳에 전쟁이 났었다니...”


친구의 말이 맞았다. 렌즈 너머에 있는 것은 그저 숲이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우거진 짙은 초록색 숲. 이름 모를 새들이 자유롭게 능선을 넘나들고, 순한 눈망울을 가진 사슴들이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만 같은 평화로운 풍경.

우리가 그리 두려워했던 땅. 수많은 고지전을 치르며 피 흘려 지키던 그 땅.


어딘가에 친구 외삼촌의 차가운 유해와, 돌아오지 못한 수많은 군인의 육신이 묻혀 있을지도 모르는 그 땅.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터지지 않은 수류탄과 지뢰가 숨죽이고 있는 땅이….

야속하게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바람에 버드나무 가지가 흔들리는 저 풍경은 한없이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그 푸르른 녹음이 너무나 눈부셔서, 차라리 눈이 아플 지경이었다.

어느새 내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맺혀있었다.


“만약….”


친구도 목이 메는지 목소리가 떨렸다.


“만약에 우리 외삼촌이 저 땅에 묻혀 계신다면, 아마도 저 나무들 어딘가 아래에 계시겠지?”


목이 매인 친구의 뺨 위로 투명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눈물을 보자, 꾹 참았던 내 눈에서도 뜨거운 것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을 닦는 그녀의 손안에는, 편의점에서 샀던 알사탕 한 봉지가 꽉 쥐어져 있었다.


“그래….”


나는 여전히 내가 겪지도 않은 전쟁의 기억 속에서 두려움을 느낀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도, 내 친구도 비극과 아름다움이 함께 남은 이 풍경을 아주 오랫동안 잊지 못하리라.

친구는 잠시 손에 들고 있던 알사탕 하나를 바라봤다. 투명한 비닐 포장지 속에서 사탕이 보석처럼 반짝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그 작은 알사탕을 전망대 난간 위에 살며시 올려두었다.


저 바람을 타고, 숲을 지나, 70년을 기다린 소년에게, 그리고 우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ChatGPT Image 2026년 2월 24일 오후 09_00_17.png 초콜렛과 알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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