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모음] 빈손

Katie Kim

by Katie

「빈손」


전쟁이 할퀴고 간 고향의 뜰,

어머니와 여섯 남매는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어미 새를 찾는 핏덩이들처럼

아이들은 배가 고파 울다가 지친다.


어머니는 주린 배를 쥐고 오늘은 오시려나,

내일은 오시려나 잠든 아이들 얼굴만 내려다본다.


대체 어떻게 살라고 이리도 모진 가난을 주셨는가.

정녕, 이것이 하늘의 뜻인가.


눈물 말라붙은 얼굴에 때국물이 얼룩져 갈 무렵,

저 멀리 터덜터덜,

아버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아, 그래.

아버지는 미제 과자 한 봉지,

간고등어 몇 마리,

어쩌면 돼지고기 한 덩이라도 들고 오셨겠지.

가장 팔팔한 둘째 아들이 맨발로 뛰어나가 아버지를 맞는다.


그러나—

그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야속하게도 텅 비어 있었다.


아이의 눈빛이 얼어붙었다. 뺨을 타고 굵은 눈물이 흘렀다.

그날의 빈손을, 아이는 노인이 되어서도 잊지 못했다.


아버지가 땅콩밭을 일구러 가던 길,

미군 트럭에 치여 떠나가던 그 순간에도

철없던 아들은 아버지의 빈손만 기억하고 있었다.


나이가 들어 배불리 먹고 살만하게 되어도

진수성찬 앞에서 그날의 빈손이 떠오른다.


그 기억을 멍에처럼 지고 살다 보니

어느새 아버지보다 더 늙어버린 아들이,

지금, 과일 하나 술 한 잔 올리며

유골함 앞에 망부석처럼 서 있다.


아버지… 이제 좀 드실라오.

ChatGPT Image 2026년 2월 26일 오후 04_18_56.png 아버지의 빈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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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직후의 시대.
피폐해진 한국에서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했던 아버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이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기억을 수십 년 동안 반복해 들려주셨습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오래도록 마음을 짓누르는 경험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 말을 시로 옮겨, 한 사람이 견뎌 온 시간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풀어보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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