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리히 증권에 내가 유일하게 요구한 것은 근무시간 중 타회사의 취업 인터뷰에 다녀오는 걸 허락해 달라는 거였다. 코스모스 졸업을 하는 상황이라 여름에 구직하기가 좀 어려울 것 같다고. 그들은 흔쾌히 이해한다고 했다. 내가 재학 중이라는 사실은 눈치채지 못하고 말이다. 뭐, 어차피 풀타임 오퍼를 줄 것도 아니면서 내 발목을 잡아놓을 권리는 없다.
류 차장님이 어제의 숙취로 반차를 내서 나는 권 이사님에게 다가갔다.
"이사님, 저 목요일 임페리얼 오일 서울 지사 2차 면접 잡혔어요. 오후 시간 잠깐 빠져도 괜찮죠?"
"응, 갔다 와. 꼭 붙어라. 라고스 영국 국제 중학교에서 꼴찌 했던 애가 임페리얼 오일 취직했어. 너 떨어지면 개망신이다.."
권 이사님은 어렸을 때 나이지리아에서 자랐다. 서아프리카 독재자의 자제들과 함께 다닌 영국식 사립학교 덕에 영어 발음이 유리그릇을 쪼갤 듯이 날카롭고 포쉬 (posh; ‘port out, starboard home’의 준말로 식민 시절 영국-인도 셔틀 함선의 해가 덜 들어 비교적 시원한 프리미엄 객실 위치를 암시하는 단어라는 일설이 있다. ‘Port’와 ‘starboard’는 뱃머리를 정면으로 봤을 때 각각 좌우 측면의 명칭이며 결론적으로 인도로 향할 때는 port 쪽 객실에서 자고 돌아올 때는 starboard 쪽에서 잔다는 뜻. 그냥 ‘상류층답게 고급지다’ 정도로 이해하면 충분)하다. 강화도 산적같이 생겼지만 영어로 전화라도 받으면 런던 첼시 (Chelsea) 부촌 어디선가 누군가의 입술사이 얌전히 물려있는 프랑스제 크리스토플 (Christofle) 은수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중3 때 서울로 전학 온 뒤 그가 가장 싫어했던 건 아프리카 말 좀 해보라는 애들을 달래는 일이었다고 했다. 나이지리아만 해도 영어 외에 하우사 (Hausa), 요루바 (Yoruba), 이그보 (Igbo)등 몇 백 개의 언어가 있다며 흥분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에게 아직도 소년 시절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모양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는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나이지리아 시민권자였다. 군대에 가기 싫어서 18세 때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고 한다. 만약에 북한의 선제공격에 서울이 불바다가 되면 권 이사님은 보따리를 든 채 부양가족을 끌고 나이지리아 대사관으로 달려가 헬기를 기다려야 할 것이다. 대사관 직원들이 그들을 반겨줄지는 솔직히 의문이다.
목요일이 됐다. 나는 임페리얼 오일 사무실에 도착했다. 석유로 떼돈 버는 회사치고는 사무실이 초라했다. 흥미로운 게 하나 있었다면 국내 유명 우황청심환 제조사 옆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는 것 정도. 인사 담당자가 인터뷰 절차를 설명해 줬다. 실무자 세 명과 간단한 면접을 본 후 영어로 진행되는 케이스 스터디 토의가 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토의실 안에서 임페리얼 오일의 간부들이 토론을 같이 듣고 있을 거라고.
실무 면접은 간단했다. 첫 번째는 면접관은 시니어 마케팅 담당자인 한국인 아재. 대체로 ‘부모님은 뭐 하시냐’가 초점이었다. 두 번째는 알리스터라는 서울 지사장이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스코티시 할배. 오랫동안 연금을 탄 전직 007 같아 보였다. 인터뷰 분위기는 경직되었고 그는 압축적으로, 그리고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스코티쉬 억양 때문에 주장인지 질문인지 헷갈리는 게 더러 있었다.
“Why do you want to join Imperial Oil?”
(왜 임페리얼 오일에 입사하고 싶나?)
“Aren’t we a bit too old fashioned for you?”
(자네에게 우리 회사는 너무 구시대적이지 않나?)
“So tell me. What’s your value add?”
(말해보게. 당신의 부가가치가 뭔지.)
“Realistically, what kind of career path do you think we will offer you?”
(현실적으로, 이 회사가 어떠한 진로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이 할배는 나의 지원을 격려하는 건지 막으려는 건지 어투가 무척 거슬리고 냉소적이었다. 이런 남자랑 결혼한 여자는 도대체 어떤 정신력의 소유자일까. 어쨌든 서로 뭔가 불만족스럽게 대화는 종료되었고 나는 숨을 돌렸다.
마지막 면접관은 30 대 후반으로 보이는 호주인 아써였다. 영화 <쥬라기 공원>의 남자 주인공 같은 이미지였다. 면도를 사나흘 건너뛴 남성적인 얼굴에 지적 매력이 가미된. 다만 체격이 좀 얇은 게 흠이었다. 그는 인도네시아 어느 섬에서 발견된 석유 광구 개발 프로젝트의 담당자였다. 추출한 석유를 한국 고객에 팔 주니어 세일즈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임페리얼 오일 서울 지사에는 뽑는 사람의 궁극적의 job description 이 이거라고. 사실 나는 런던아이 앞 템스강변에 위치한 임페리얼 오일 본사로 출퇴근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이 회사에 지원했다. 그런데 국내 시장 기름 팔이가 최종 목적지라는 건 뜻밖이었다. 표정관리가 힘들었다.
그룹 토의 차례였다. 조금 전 알게 된 이곳에서의 미래가 내키지 않았던 나로서는 이 모든 게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누군가가 원형 테이블에 앉은 다섯 명에게 종이를 나누어줬다. 반대편 벽에는 방금 면접 본 세 명의 간부들이 앉아있었다. 아써가 일어나더니 진행 방법을 설명해 줬다.
“As a group, you must decide how to commercialise a new oil well discovery on a fictional island. On the piece of paper are essential figures to aid your decision making process..”
(가상 섬에서 발견된 석유를 어떻게 상용화할지 그룹 토의하세요. 프린트물에는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 만한 수치들이 적혀있습니다..)
종이에 적혀 있는 수치들은 올해 석유 가격 변동 추이, 섬 한가운데 석유 발견지로부터 가장 가까운 항구까지의 거리, 시추 비용, 육지 운송 비용, 인접 해외 석유 수입국까지의 해상 운송비용 등이었다. 함정은 가상의 섬에 포장된 도로가 없어 항구까지 운송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으며 길마저 우회적이라는 것. 그리고 마지막 단서가 있었다. 발원지 근처에 석유를 아스팔트 재료인 비투멘 (bitumen)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단순 정유소가 하나 있다고.
토의가 시작됐다. 하지만 적막이 흘렀다. 타원형 테이블 건너편에서 각 잡고 있던 남자가 말문을 트며 긴장된 분위를 누그러뜨리는 듯했다.
“Is there a large price difference between diesel and gasoline”
(디젤과 가솔린 가격차이가 크나요?)
심사위원들은 의아해하는 기색이었다. 오히려 긴장감이 전보다 더 팽배해졌다. 중요한 단서를 짚어 그들이 당황한 걸까? 애매모호한 그의 질문은 바둑판 위 흑돌의 의미심장한 첫수를 연상케 했다. 하지만 그의 플레이 수준은 바둑이 아니라 오목이란 걸 금방 깨달았다. 디젤이건 뭐건 완전 쓸데없는 질문이었다. 처음부터 나대며 설치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지만 이러다가는 다 같이 원형 테이블을 붙잡고 침몰할 것 같아 내가 그룹 토의를 이끌기 시작했다.
우선 석유를 인근 수입국으로 수출하면 수익이 나는 구조인지 계산해 보자고 했다. 화이트보드에 덧셈을 끄적여 보았다. 석유가가 올해 최고치를 유지하지 않는 이상 어떠한 시나리오 하에서도 시추 사업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구조였다. 정보가 불충분한 것 같아 내가 아써에게 물었다.
“Is it a populous island? Is there a demand for oil on the island?”
(인구가 많은 섬인가요? 석유 수요가 있나요?)
“No, it’s basically an uninhabited jungle.”
아니요. 거의 정글 무인도라고 간주하면 됩니다.
다들 우물쭈물하기에 시추는 애초에 진행되지 말았어야 했다고 내가 먼저 결론을 유도해 냈다. 패널들이 좀 실망한 표정을 짓자 아써는 우리에게 케이스 스터디 디브리핑 썰을 풀기 시작했다.
“Ideally, the conclusion would have been to create newly paved roads using the bitumen. That would have lowered the transport time and cost to the nearest port.. and ultimately the newly discovered oil well would have been profitable through exports.”
(비투멘을 사용해 운반로를 신설하는 게 이상적인 결론이었을 겁니다. 석유 운반 비용과 시간 단축으로 수출이익도 창출할 수 있었을 겁니다.)
이건 이미 모범 답안이 정해진 케이스 스터디라고나 할까? 좀 사기당한 기분이었다. 이왕 정답도 못 맞힌 김에 내가 한 수 더 떴다.
아니, 왜 아스팔트 포장도로 하나 믿고 원유 수출에서 멈추냐고. 본사로부터 펀딩 당겨서 고부가가치 정유소 하나 차려서 마진 짭짤한 석유화학 제품 수출하는 게 더 돈 되지 않냐고? 저장소에 꿍쳐 두었다가 각각 제품 가격 동향 보면서 재고 조였다 풀었다 하는 게 스마트한 거 아니냐고? 그리고 사회 환원할 겸 원주민들 학교 하나쯤 세워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왜 하필이면 포장도로냐고. 열대지역이면 비도 자주 몰아쳐서 도로가 물에 잠길 수 있지 않냐고. 정글 밀어내지 말고 차리리 항구까지 파이프선 까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겠냐고?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코멘트를 내던졌다. 상대편의 고스톱 패를 하나씩 까보는 기분이었다. 알리스터는 졸다가 파란 눈을 똥그랗게 뜨고 나를 노려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That’s what we’re actually doing in Indonesia. And Arthur is in charge of this entire project.”
(인도네시아에서 이미 그렇게 하고 있네. 아써가 프로젝트 담장자이고.)
다음 주 월요일 임페리얼 오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인사 담당자가 축하해 줬다.
“손세진 씨에게 오퍼를 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저희 지사장님께서 잠깐 드릴 말이 있으시대요. 지금 전화 연결해 드릴게요..”
“Hi Saejin. Congratulations.”
(세진. 축하하네.)
“Hi Alistair, thank you for the opportunity.”
(안녕하세요 알리스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Actually, we weren’t really satisfied with any of the candidates this year..”
(사실은 말이지. 올해 지원자들 다 마음에 안 들었어..)
‘이거 뭐지..’
“.. but concluded you were the best of the bunch. Anyhow, why don’t you join us for lunch next Friday?”
(.. 그런데 자네가 그중 제일 낫다고 결론을 내렸네. 다음 주 금요일 점심 만찬에 참석하지 않겠나?
라고 할배는 말을 마치며 인사담당자를 다시 바꿨다.)
나는 다음 주 금요일 점심은 현재 인턴십때문에 좀 어려울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고 정중히 전화를 끊고는 계약서를 수령할 집주소를 이메일로 보냈다. 합격한 건 기뻤지만 석유 세일즈일을 하고 싶진 않았으니까.
다음 해 Financial Courier를 읽다가 임페리얼 오일이 인도네시아 시추 사업에서 철수한다는 기사를 보았다. 낮은 글로벌 유가 탓에 내부 채산성 심사에서 불합격됐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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