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으니 치료비도 늘어나더라고요
시간이 곧 돈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백수가 되니 사라진 수입이 고스란히 시간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달라진 것이라곤 그저 화폐의 단위뿐이다. 퇴사란 건 마치 은행에서 통화를 환전하듯 수입의 단위만 원에서 분으로 바꾸는 일에 불과했다. 반면 돈으로 시간을 살 수 없다는 말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났다. 퇴사하지 않았으면 얻었을 미래의 수입을 끌어다 현재의 시간을 마구 사들이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생활비라는 환전 수수료가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나는 돈 대신 시간을 버는 지금에 만족하는 중이다. 덕분에 노동으로 갉아먹은 체력에도 충분한 휴식을 주입하고 있다. 몸이 건강해지니 의욕도 조금씩 살아났다. 하루에 고작 15분 남짓이지만 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사놓기만 하고 읽지 않았던 책들에도 손을 뻗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건 백만 년쯤 미뤄뒀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했다는 점이다. 일을 할 때는 한 문장을 써내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는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글 쓰는 데 투자하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의 공백은 여전하다. 투자하는 만큼 꼬박꼬박 채워지는 몸의 체력과 달리, 마음의 체력은 아무리 시간을 쏟아부어도 채워질 기미가 없다. 이것저것 다양한 종목에 투자를 하고는 있지만 하나같이 수익률이 좋지 못하다. 출근 걱정 없이 게임으로 밤을 새워도 보고, 맛있는 것을 사 먹어보기도 하고, 차를 타고 바다로 훌쩍 떠나보기도 했는데 모두 효과가 없다. 제일 가관인 건, 이미 예약까지 끝마친 유럽여행을 취소할까 고민하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유럽여행이 이런 취급을 받는다는 게 충격적이다. 계획을 짜는 것만으로도 설렌다는 글을 썼던 며칠 전의 나는 어디로 간 거지?
소소한 재미만으로도 행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땐 용돈을 아껴 산 삼만 원짜리 게임 타이틀 하나에 두근댔고, 이만 원짜리 배달음식을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신이 났다. 몇 달 동안 모은 돈을 털어 떠나는 여행 전날에는 심장이 쿵쾅거려 잠도 오지 않더라. 비록 작은 것들이었지만 그 행복에는 유통기한도 없었다. 기다려야 하는 며칠이, 돈을 모으는 몇 달이 그 자체만으로 기대됐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나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 이제 오십만 원짜리 게임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시불을 외치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그저 설거지가 귀찮다는 이유로 배달음식을 주문한다. 여행 경비를 아낀다고 도미토리를 검색하던 나는 이제 비싼 호텔 조식을 예약해놓고도 늦잠을 잔다. 나이를 먹고 어느 정도 경제력이 생기니, 기다림으로 얻었던 소소한 일탈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시시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늘어난 통장 잔고의 문제일까, 아니면 지나온 세월의 문제일까? 어느 쪽이든, 내가 내린 결론은 나이를 먹을수록 마음을 채우는 데 드는 비용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에겐 얼마만큼의 비용을 들여야 하는 걸까? 시간으로 환산해 보면 딱 일 년 정도면 충분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일 년을 내리 쉬기에는 환전 수수료 부담도 있고, 이 나이에 커리어의 공백기를 일 년이나 갖는 것도 리스크가 있다.
그래서 금융치료라는 말이 나왔나 보다. 시간에는 24라는 한도가 존재하지만 돈은 그렇지 않으니까. 마음믈 다쳤다고 매번 퇴사할 수는 없으니 대신 상처만큼의 수입을 치료비로 쓰게 되는 게 아닐런지. 그렇다면 나는 일 년을 쉬어야 하니까... 월급을 대략 삼백만 원이라고 쳐도 삼천 육백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환전 수수료까지 더하면... 아무리 낮게 잡아도 사천만 원은 써야 완치가 가능하다는 거네.
사실 이 글은 어쩌면 내 이번 달의 과소비를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한 변명일지도 모르겠다. 이번 달 카드 명세서에 찍힌 칠백만 원이라는 금액에 대한 변론을 펼쳐보는 것이다. 예정됐던 큰 지출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신용카드를 만든 이래 가장 많은 금액이 금융치료비로 빠져나갔다. 특히 난데없이 위스키의 세계에 빠진 게 컸다. 유리병 안에 담긴 그 영롱한 빛깔에 홀려 그만 백만 원이 넘는 돈을 홀라당 갖다 바쳤다. 아무래도 잠깐 정신이 나갔던 게 아닐까? 하지만 가지런히 진열된 위스키 병들이 그렇게 예뻐보이는 걸 보면 또 마냥 효과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다. 게다가 맛은 어찌나 환상적이던지. 크리스털 잔에 따라 마시는 위스키 한 모금이 혀끝을 넘어 마음까지 따뜻하게 적셔줄 때가 있다. 역시, 금융치료의 맛은 참 달달하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