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씨 표류기
메이데이. 메이데이.
내 이름은 루사카. 성은 루고 이름은 사카다.
나는 지금 우주를 표류 중이다.
오늘로써 우주를 표류한 지 181일이 지났다.
나는 새로운 삶을 찾아 살던 곳을 떠나 우주로 나왔다. 내가 살던 곳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죽은 것처럼 살다 가느니, 차라리 객기라도 부려보고 죽자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6평짜리 원룸만 한 작은 우주선에 덜컥 몸을 실었다. 지난 몇 개월간 호기 하나로 잘 버텨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식량은 거의 다 떨어졌고 우주선의 연료도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땅히 착륙할 곳을 찾지 못했으니, 나는 아마도 굶어 죽을 것이다. 그리고는 영원의 허공을 부유하며 고독하게 썩어갈 것이다.
적어도 시도라도 해 봤으니 후회 없는 죽음일까? 그렇다고 치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그러기엔 남아있는 게 후회뿐이다. 우주를 항해하는 동안 많은 행성들을 보았다. 과연 우주에는 무궁무진한 가능성들로 가득했다. 그 중 몇몇 행성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끌어당기는 중력에 못이기는 척 착륙을 감행해 보기도 했다. 조금만 덜 망설였다면 무턱대고 살아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때 정말 그랬더라면 좋았을 텐데. 애석하게도 나는 여전히 우주에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LUSAKA-3은 소행성이었다. 아름다웠지만 살아가기에는 척박한 곳이었다.
LUSAKA-24 행성은 나를 반겨주었다. 환대가 지나치니 오히려 꺼림칙했다.
LUSAKA-26 행성은 경쟁이 치열했고 평균 수명도 높지 않아 보였다.
LUSAKA-44 행성에는 감정이 없었다. 본능으로 겨우 유지되고 있었다.
LUSAKA-51 행성은 나에게 너무 적대적이었다.
LUSAKA-57 행성에서 살아보기로 했지만 안타깝게도 정원에 들지 못했다.
LUSAKA-60 행성은 내가 떠나온 곳과 비슷했다. 아니, 다시 돌아온 건가?
그 결과로 지금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표류하는 신세가 됐다. 그러는 사이 우주선 내부는 어느새 고독과 미련으로 그득해졌다. 빗발치던 은하계 행성들의 러브콜 행렬도 어느덧 뚝 끊긴 지 오래다. 우주선 바깥에는 여전히 수천 수만 개의 전파 줄기로 가득한데, 은하계에 벌써 소문이 쫙 퍼진 걸까? 그 흔한 찔러보기식 교신 요청도 없다. 서늘한 고독의 온도에 온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제 컴컴한 6평 남짓의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죽어가는 자의 미련한 한숨 소리뿐이다.
주위에 떠 있는 수많은 행성들이 여전히 미련처럼 나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이제는 섣불리 객기를 소진할 여력이 없다. 고작 미련 따위에 남은 연료를 투자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나 크다. 내게 남은 기회는 단 한 번뿐이다. 이제 식량도 연로도 바닥이 났으니, 한 번 착륙하고 나면 다시는 우주로 올라올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정말 남은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 당장 죽어도 후회 없을 만한 한 번의 객기를 위해, 마치 죽은 것처럼 몸을 사려가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젠장! 살기 위해 다시 죽어야 하다니!
메이데이, 메이데이.
살려주세요. 살기 위해 죽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