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이되든 밥이되든

by 태리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올 때가 있다. 레퍼런스가 있는 일은 그나마 낫다.
이전 자료를 참고하고, 비슷한 형식을 따라 하면 된다.
하지만 생판 모르는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만들어야 하는 일은 다르다. 그건 정말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작 했다면 끝을 봐야 한다. 하겠다고 한 일은, 어떻게든 마무리해서 결과로 말해야 한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말이다.'


쌀을 끓이다 보면 죽이 될 수도, 밥이 될 수도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불을 올려서 끓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완벽한 밥을 만들 자신이 없어도, 끓이지 않으면 아무 맛도 모른다.


묵혀둔 업무는 언젠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 그 일이 언급될지 모른다.
쌀은 가만히 두면 썩어버린다.


또다른 문제는 시작만 해놓고 불을 끄는 경우다.


그러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하다가 방향을 잃고, 의욕이 식고,

결국 애매한 결과만 남는 것. 이건 실패라기보다, 미완의 상태에서 멈춘 것이다.

결과가 죽이라도 완성해본 사람은 배운다. 하지만 죽도 밥도 안 된 채로 남으면,

남는 건 ‘아, 그때 좀 더 해볼 걸’ 하는 후회뿐이다.


팀장님이 잊은 것 같아도 . 어쩌면 일부러 언급하지 않고 있는 걸 수도 있다.

바쁜 일정 속에 타이밍을 놓친 것일 수도 있고,혹은 “이번엔 네가 한 번 해봐라”라는 의미로 던져진 숙제일 수도 있다. 당장 급하지 않더라도, 그 일은 분명 이유가 있어서 지시하신 일이다.

미리 준비하기 위한 과제이거나, 혹은 팀원의 성장을 기대하며 맡긴 일일 수도 있다.

죽이되든 밥이되든 완성의 경험은 생각보다 크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본다는 건 단순히 보고서를 제출하는 게 아니다.
자료를 모으고, 논리를 세우고, 누군가를 설득하는 과정까지 그 모든 단계를 내 힘으로 밟아가는 경험이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업무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처음엔 두렵고 막막하지만, 완성하고 나면 다르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Bandura)는 이런 믿음을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이라고 불렀다.
‘나는 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자기효능감이 높을수록 사람은 더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 번 끝을 본 사람은 다음 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완성의 경험은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자신감의 근거가 된다.


팀장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과정을 지켜보는 게 팀원을 성장시키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과제는 굳이 시켜보기도 한다.
지금 당장은 급하지 않아도, 그 일을 통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보다 중요한 건 ‘끝까지 해봤느냐’다.
처음엔 다소 미숙하더라도, 스스로 길을 찾아가며 문제를 풀어내는 과정에서 진짜 배움이 생긴다.
팀장이 모든 걸 알려주는 순간, 팀원은 생각할 기회를 잃는다.
하지만 ‘스스로 완성해보는 경험’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오래간다.

팀원이 “내가 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있게 돕는 일도 리더의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이건 네가 충분히 해낼 수 있어.” 라고 자신감을 주고 싶을 것이다.

리더가 믿어주는 만큼, 팀원은 스스로를 믿기 시작한다. 불확실한 일이라도 주저하지 않고,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은 불을 올려야 한다. 그 경험이 쌓여야만,

언젠가 제대로 된 밥상 까지 차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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