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선생님, 저희 며느리가 몸이 좀 시원치 않거든요. 우리 손주 아픈 거 며느리 때문이죠? 그것만 아니었으면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었던 거 아닌가요? “
COVID-19 이전, 우리 중환자실은 환아의 조부모도 면회가 가능했다. 이 질문은 당시 한 환아의 조모에게서 들은 말이다.
나는 조모에게, 이는 누구의 잘못으로 인해 생긴 일이 아님을 설명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믿지 못했고, 의사 에게 동일한 설명을 들은 후에도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 질문은 정말 원인을 알고 싶었던 질문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의 잘못이라면 차라리 덜 아플 것 같아서 하는 질문이었을까?
신생아 중환자실의 간호사로서 일을 하다 보면, 이와 같은 일을 자주 겪는다.
시댁의 비난으로 산후 우울증이 더욱 심해진 환아의 엄마, 그런 아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
혹은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죄책감에 빠진 보호자들.
최근 면회시간마다 매일 우는 한 환아의 엄마가 있었다.
미안한 마음과 죄책감에 조리원에서도 매일 울고, 밥조차 먹지 못한다는 는 환아 아버지의 말을 듣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아기도 엄마의 마음을 다 느껴요. 엄마가 나 때문에 울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기도 같이 슬퍼할 거예요. “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고, 나는 다시 말했다.
“어머니, 우리는 지금 팀워크가 필요해요. 아기는 힘내서 잘 싸우고 있고, 의사 선생님들과 저희 간호사들도 아기가 나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거든요. 이 팀에서 엄마 아빠의 역할은 아이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보내주는 거예요. 그러려면 어머니부터 잘 드시고 기운을 차리셔야 해요. 누구보다 아기를 응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잖아요. “
오열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맞아요. 제가 씩씩해질게요. 아기가 더 힘낼 수 있도록 그만 울게요.”
나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고 토닥였다.
“좋아요 어머니. 내일 면회 오실 때는 조금 더 단단해진 모습으로 만나기로 해요. 전보다 조금만 울고, 식사도 충분히 하시고, 잘 주무시고 내일 면회 오시기로 약속. 아버님도 어머니 잘 챙겨주시고, 우리 팀 각자의 자리에서 힘내다가 내일 만나요. “
다음날, 면회시간에 만난 부모의 표정은 전날과 사뭇 달랐다.
나를 보자마자 환아의 엄마는 반가워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저 어제오늘 밥 다 먹었어요. 생각해 보니까 진짜 그렇더라고요. 우리는 한 팀이니까 저도 제 몫의 힘을 낼게요. 이제 그만 울 거예요.”
환아의 아빠는 내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고, 시간이 지나 그 아이는 두 차례의 수술을 마친 후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수 있었다.
WHO의 공식 통계수치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3~6%의 아기가 선천성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
물론, ‘왜 하필 우리 아이가 3~6% 안에 들어야 했느냐 “라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아직도 어렵긴 하다.
하지만, 이는 길을 걷다 소나기를 맞은 것과 같고 “왜 비를 피하지 못했느냐”라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슬픈 마음은 이해하지만, 당장 필요한 것은 비가 내린 원인을 찾는 것보다, 비 맞은 몸을 닦아주는 것과, 온기가 아닐까?
아이가 아픈 이유를 누군가의 잘못으로 돌리는 순간, 우리는 슬픔 위에 죄책감이라는 또 다른 고통을 얹게 된다.
아이가 아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누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