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버스 정류장에 하얀 눈꽃송이가 내려앉은 머리에 정갈한 비녀를 한 할머니가 냉이와 상추를 팔고 있었다. 냉이의 상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어제 가져온 냉이를 다 못 파셔서 오늘 다시 팔러 나오신 것 같았다. 냉이를 잘 다듬어 겨울에 봄을 느끼보리라 생각하며 냉이를 사기로 했다. 냉이를 담는 할머니의 두툼해지진 손마디 마디에서 고단함이 느껴졌다.
"할머니 냉이랑 상추 조금씩만 주세요"
"고마워. 오늘 개시 손님이니까 많이 줄게요.
냉이랑 상추 5천에가져가요"
"할머니 너무 많이 주셨어요."
"냉이가 좀 상태가 안 좋은데 사주니까 을메나 고마운지 몰라. 그래서 많이 주는 거야"
"네 잘 먹을게요. 감사해요."
할머니는 활짝 환하게 웃어주셨다. 할머니의 미소 때문인지 리듬감 있는 발걸음은 신랑이 좋아하는 순대와 편육집으로 향했다. 엄마 손을 잡고 이 집 순대를 먹으며 자랐다. 순대에 꽂아주는 이쑤시개가 참 정겨웠다.
좋아하는 초록이들 사러 발걸음을 옮겨보았다. 당근, 깻잎, 쪽파, 꽈리고추를 샀다. 배낭에 초록이들이 들어가니 제법 묵직해졌다. 단골 정육점에서 장조림고기와 목살, 앞다리살을 생선가게에서는 굴과 꼬막, 오징어를 사보았다. 장 본 식재료의 두터운 무게만큼 마음은 신이났다.
나는 이 시장에서 자랐다. 엄마는 장사하고 검정 비닐봉지를 장난감 삼아 놀며 자랐다. 엄마는 벽지와 장판을 팔았다. 공사하는 곳만 있으면 엄마는 머리에 벽지를 이고 무작정 들어갔다. 바쁜 엄마의 발걸음을 어린 나는 코를 흘리며 놓칠세라 작은 발걸음으로 요란하게 따라갔었다. 그렇게 어린 나는 시장 곳곳을 돌아다녔다. 시장 샛길에서 고무줄놀이를 하고 친구들과 얼음땡을 하며 엄마보다 시장의 품이 엄마 같았다. 시장에 냄새가 온기가 말소리가 참 좋다. 어린 시절 시장을 떠올리며 정겨운 요리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