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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딩이 만들어준 잡채밥

by 아름드리

방학이 되면 우리 집 고딩은 시차 적응이라도 하는 듯,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서야 일어납니다. 엄마는 아침 일찍 출근하느라 바빠서 겨우 저녁만 챙겨주죠. 그러다 보니 고딩 아들은 냉장고를 있는 재료로 고딩 스타일로 음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3살 때부터 엄마 손 꼭 잡고 어린이집 등원하던 꼬맹이였어요. 그때부터 엄마가 일하는 어린이집에서 교구 정리도 척척 도와주고, 동생들까지 잘 챙기며 ‘딸 같은 아들’로 자라났죠. 사춘기라는 뾰족한 통증도 이제 거의 지나간 듯합니다.


그런 아들은 늦은 점심으로 만들던 잡채밥이 꽤 맛있었는지, 퇴근하는 엄마에게도 잡채밥을 만들어주겠다고 나섰어요. 유튜브 선생님의 가르침에 충실한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잡채밥에 후추를 너무 많이 넣어서 혀가 얼얼했지만 저는 피곤함을 반찬삼아 참 맛있게 먹었답니다.


어느 날 아들은 ‘고딩 스타일 라면’을 만든다며 고추기름을 낸다고 나섰어요. 고춧가루에 파를 넣고 지글지글 볶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죠.

"이렇게 하면 불맛이 난데요."라고 말하며 자신만만한 표정.

첫 숟가락을 뜨는 순간, 혀끝에 맴도는 알싸한 매운맛과 함께 '라면이 아니라 거의 입이 화재 현장 수준이다'라는 생각이 스쳤죠. 하지만 아들은 뿌듯하게 웃으며 말했어요.

“엄마, 이게 진짜 불닭 같은 매운맛이에요.”

엄마는 속이 불타는 라면을 먹으며, 웃음을 참느라 더 힘들었답니다. 그래도 이런 유머와 정성이 담긴 한 끼, 정말 값지더라고요.


잡채밥이든, 불타는 라면이든, 아들이 해준 밥은 뭐든 감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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