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은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 토박이'입니다. 하지만 그에게 서울은 늘 그립고 애틋하면서도, 정작 속살 한번 만져보지 못한 무심한 고향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그는 서울 하늘 아래 살면서도 서울을 느낄 겨를이 없었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바쁜 나날을 보내며 장사하시는 어머니를 돕느라, 신랑의 서울은 늘 분주함만 있었습니다. 서울의 풍경은 일터로 가는 버스 창밖으로만 스쳐 지나가는 손에 잡히지 않는 무색무취의 잔상일 뿐이었습니다. 결국 취업을 위해 지방으로 내려가던 날, 신랑은 평생을 산 서울을 떠났습니다.
그런 신랑에게 이번 서울 나들이는 가이드가 있는 특별한 나들이였습니다. 가이드로 나선 건 이제 막 스무 살 넘은 우리 집 큰딸이었습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버스 노선을 꿰고 있는 딸아이는 우리의 '선생님'이 되었고, 우리는 유치원생처럼 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신랑에게 버스는 늘 지친 몸을 싣고 아르바이트로 향하던 고단한 공간이었는데, 딸과 함께 탄 오늘은 창밖 풍경 하나하나가 보석처럼 빛나는 관광버스가 되었습니다.
딸의 안내로 도착한 창경궁에는 벚꽃과 홍매화가 몽글몽글 피어있었습니다. 서울 살면서도 궁궐 한 번 구경 못 해봤다는 신랑은 어느덧 만개한 꽃 앞으로 먼저 뛰어가 연신 휴대폰 셔터를 눌러댔습니다.
"할머니가 매일 꽃 사진만 찍으시더니, 이제 아빠가 그러네."
딸아이의 농담에 신랑은 하하 웃으며 궁궐의 웅장함에 마음을 홀딱 뺏겨버렸습니다. 늘 일에만 매여 살던 무뚝뚝한 신랑의 얼굴 위로, 잃어버렸던 소년의 미소가 번졌습니다.
리듬감 있게 걸으며 꽃향기 가득한 어느 고즈넉한 전통 찻집에 도착했습니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평소 나누지 못했던 작은 이야기들을 도란도란 나누었습니다. 딸아이와 '손하트'를 만들어 사진을 찍는 순간, 깔깔거리며 사진을 찍는 내 모습이 마치 단짝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처럼 느껴졌습니다.
사실 나에게 서울은 늘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서울은 깍쟁이들이 사는 무서운 곳이라는 어른들의 엄포 속에, 나의 청춘은 늘 좁은 울타리 안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겁보'였습니다. 대학생 때 처음 기차를 타며 "신발을 벗고 타야 한다"는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에 속아 신발 끈을 풀려했던 순진하고 겁 많던 소녀였습니다. 도전보다 안주하는 삶에 익숙한 나에게 서울은 큰 공룡이 나타날 것만 같은 두려운 도시였습니다.
딸아이는 우리에게 서울의 풍경을 알려준 게 아니라, 서울을 '느끼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신랑의 바빴던 시간 속에 묻혀있던 서울, 나의 두려움 속에 숨겨져 있던 서울. 그 서울이 딸아이 덕분에 비로소 '느낄 수 있는 서울'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서울이 무섭거나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 부부의 얼어붙은 청춘을 녹여주고 기꺼이 우리의 든든한 '서울 보호자'가 되어준 딸의 손을 잡고, 우리는 이제야 진짜 서울을 마음껏 누리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