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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드리 Jul 05. 2023

햇빛을 많이 먹어서 뚱뚱해진 지붕

모두 시원하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윤이는 땀을 흘리며 할머니 손도 잡지 않고 뛰어서 어린이집에 들어왔다.


"와! 이제 시원하다"


"슨생님 윤이가 어찌나 빨리 뛰어가는지 내가 따라갈 수가 없어요. 밤새 더워서 잠을 못 자서 아침에 일찍 못 일어날 줄 알았는데 어린이집 문 열자마자 1등으로 간다고 얼메나 뛰었는지 몰라요"


"할머니 어린이집이 시원해서 일찍 오고 싶었나 봐요. 할머니도 땀 식히고 가세요"


"아니에요. 슨생님은 애덜 가르쳐야지요. 노인네 여기 있으면 힘들어요. 나는 낮에 노인정 가면 시원해요."


윤이는 오자마자 교실에 누웠다.


"에어컨 시원하다. 우리 집에도 에어컨 있었으면 좋겠어요. 선풍기만 있어서 너무 더워요. 낮에 더운 햇빛을 뚱보 지붕이 다 먹었나 봐요. 밤에도 뚱뚱한 지붕 때문에 우리 집은 계속 더워요. 밤에도 더워서 모두 화만 내요. 엄마가 돈 없어서 에어컨 못 산데요. 그래서 어린이집에서 자고 가고 싶어요. 시원하게. 저는 어른되서 꼭 에어컨 살 거예요"


"윤이가 에어컨 사주면 할머니랑 엄마가 정말 좋아할 거 같아. 예쁜 마음이네요."


7살인 윤이는 낮잠시간이 없지만 오후가 되면 놀이하다 꾸벅꾸벅 졸다 잠이 들기도 했다. 밤에 잠이 들지 못할 정도로 더워서 푹 자지 못한 것 같았다. 햇살반 친구들은 모두 맞벌이하는 부모님들이 많고 빌라 꼭대기층이나 오래된 주택 2층에 사는 친구들이 많았다. 여름이면 해가 길어지고 더워져서 일찍 등원하고 늦게 하원하는 친구가 많아서 점심 먹고 휴식시간을 가져보기로 했다. 낮잠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은 누워서  조금 쉬어보기로 했지만 모두들 시원한 교실에서  낮잠이 들었다. 나는 이불을 조용히 덮어주고 까치발로 걸어 다니며 수업 준비를 하곤 했다. 더운 햇살반 친구들의 소원이 이루어진 걸까? 어린이집에서 1박 2일 여름캠프를 준비했. 오전에 어린이집 마당에서 신나는 물놀이를 하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하고 저녁도 먹고 시원한 어린이집에서 수박파티를 하면서 이야기 나누기 시간을 가져보았다.


"선생님 오늘 하루 너무너무 재밌있었어요. 어린이집 다니면서 제일 좋은 날이에요. 저는 선생님 옆에서 잘 거예요"


"선생님도 잊지 못할 날이었어. 하루종일 너희들과 놀 수 있어서. 우리 같이 누워보자. 선생님이 동화책 읽어줄게"


"선생님 동화책 소리도 에어컨 소리도 좋아요.  어린이집 지붕은 햇빛이 맛이 없나 봐요. 지붕이 엄청 날씬해서 엄청 시원해요. "


조용한 자장가 소리와  선생님의 동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잠투정하는 아이 하나 없이 모두들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들었다. 친구들이 잠이 들고 나니 하루 종일 함께 놀아주었던 피곤이 밀려왔다. 혹여나 잠에 깨는 아이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선잠만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린이들만을 위한 무더위 쉼터가 있어서 더위로 빈부의 격차를 조금만 줄여준다면 이 아이들도 더운 여름을 조금은 좋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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