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가치
"질문카드 하나 뽑으세요!"
팀장님과 격주로 하는 1 on 1 시간에 팀장님께서 질문카드를 꺼내셨다.
주로 아이스브레이킹에 사용하는 것인데, 마음에 드는 그림을 선택하면 뒷면에 질문이 적혀있는 것이었다.
나는 해변에 발자국이 하나 남아있는 그림을 선택했다.
'과거로 돌아가기 vs 미래를 알기' 둘 중 내가 가지고 싶은 능력을 물어보는 질문이었다.
나는 미래를 아는 것을 택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는 가치관으로 살아왔기에, 그리고 어떤 과거든 배울 것은 있다고 믿기에 과거로 돌아가는 능력은 원하지 않았다. 오히려 미래를 안다면 내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최선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미래를 안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삶을 살까?
그 미래를 위해 현재의 나는 다른 선택을 하게 될까?
어릴 적, 공부를 하다 지루해지면 책상에 앉아 지우개를 허공에 던지곤 했다.
지우개를 던지는 순간 나는 안다. 내가 불과 1초 뒤에 다시 떨어지는 이 지우개를 잡을 것을. 자유낙하 운동을 하는 물체는 중력에 의해 다시 떨어진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잠시 그 지우개에서 눈을 떼는 순간 지우개는 나의 손바닥 안이 아닌 방바닥에 떨어지고 만다. 예측할 수 있는 미래를 시작할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양성을 지닌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우리가 현재 죽음의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개인적 의사와는 상관없이 타인에 의해 세상에 태어났고 예상치 못한 때에 숨이 멎는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처음과 끝이 아닌 그 사이, 즉 현재라는 것이다. 자유의지는 모든 생물체에 주어졌지만, 인간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사고 능력은 거대한 축복이다. 의식의 흐름 대로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일을 예측하고 조금 더 만족스러운 현재를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발전시키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일 당장 어떤 일이 닥칠지도 모르는데 과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가 싶은 억울함이 생기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미래를 안다면 우리가 결과를 바꿀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도 든다.
2010년쯤에는 지구 종말에 관한 이야기가 가장 큰 시사 거리였다.
예언론자가 표기했던 지구 종말의 날이 2010년 12월 31일이었고, 관련 영화들도 넘쳐나던 시기였다. 동네에 알던 친구는 어차피 지구가 멸망할 건데 자신은 공부하지 않고 지금 놀겠다고 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시간에 대해 논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우주의 이론이다.
1916년 아인슈타인은 일반상대성 이론이라는 새로운 중력이론을 통해 중력은 시공간으로 이루어진 4차원 곡률이라는 사실을 이론적으로 예측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만들어 낸 장 방정식의 내용으로 우주는 동시에 팽창하거나 수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깨닫게 되고, 이것은 허블의 관측 결과를 통해 우리가 사는 이 거대한 우주는 지금 이 시각에도 맹렬한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팽창하고 있는 우주가 시간이 역행한다면, 결국에는 한 점으로 모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주의 시작이 된 이 한 점을 우리는 ‘최초의 특이점’이라고 부른다. 그 한 점에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하여 ‘빅뱅 이론’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지점에서 우리의 우주는 시작되었다.
현재 우주의 나이는 138억 년이라고 한다. 아니, 현재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단순히 138억 년인 것이고 실제 나이는 알 수가 없다. 우리는 아직 138억 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달한 빛의 속도밖에 관측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에는 시공간과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인들이 사고로 우주 미아가 되면 자신이 어디에 존재하는지, 지금이 며칠인지도 알지 못한 채 죽는다고 한다.
태양계를 살펴보면 모든 행성이 시작점이 존재하지 않는 원의 형태를 돌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 년은 365일인데, 그렇다면 한 해의 첫 시작은 어디에서 하는 것일까? 행성계에 존재하는 모든 행성이 일렬을 맞추었을 때 “시작!”이라며 1월 1일이 탄생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행성계에는 처음과 끝이 존재하지 않고 우리가 1년=365일이라고 지정한 것도 처음부터 생긴 것은 아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람들이 정한 단위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무한의 공간 속에 사는 것이다. 그러니, 우주의 크기, 시작 점, 끝점, 속도, 어느 하나 확정된 것은 없다. 인간의 평균 수명은 100년 정도인데, 광대한 우주 앞에 서면 그 웅장함에 저절로 작아지게 된다. 그리고 수많은 행성 중 작은 하나의 행성인 지구에 사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면 더욱 초라해 보인다.
지구의 입장에서, 그리고 우주의 입장에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았을 때, 우리는 그저 시간의 한 조각 속에 잠시 살았다가는 스쳐 지나가는 작은 존재이다. 감명 깊게 읽었던 책 <창백한 푸른 점>의 저자 칼 세이건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의 거만함, 스스로의 중요성에 대한 과신,
우리가 우주에서 어떤 우월한 위치에 있다는 망상은
이 엷은 빛나는 점의 모습에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
우리 행성은 우주의 어둠에 크게 둘러싸인 외로운 티끌 하나에 불과하다.
앞에서 언급한 우주 이야기에서 단위에 대해 시사한 바가 있다.
단위는 참 재미있는 존재이다. 60분이 지나면 우리는 1시간이 흘렀음을 알지만, 만약 1시간=70분이라면 60분이 흘러도 난 우주의 관점에서 인생의 한 시간을 아직 살지 않은 것이 된다. 우주라고 하면 너무나 광활한 대지와 같이 느껴지니 일상 속 당연한 단위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보자면, 시간이라는 것 또한 무한대이다.
마치 숫자 1과 2 사이에 존재하는 실수의 개수는 ∞인 것과 동일하다. 또한, ‘시간’ 은 물리학에서 유일하게 밝혀낼 수 없었던, 방향성을 지니지 않은 존재이다. 시, 분, 초의 단위는 사람이 정한 것이고 내가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12월 15일 일요일 오전 9시 43분에, 워싱턴은 12월 14일 토요일 오후 8시 43분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들이 과거에, 그리고 우리가 미래에 존재한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영문법을 배울 때, 현재완료 진행형이라는 것에 대해 알게 된다. Have been + ~ing 너무나도 익숙하겠지만 이 문법이 의미하는 문장의 뜻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해온 나의 특정한 습관적 행동이나 일, 그리고 이것이 미래에도 행해질 것을 암시한다. 과거의 나의 경험과 행동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미래에 나 또한 예측할 수 있는, 즉, 과거가 곧 현재이고 현재가 곧 미래인 평행 선상의 구조를 이루게 된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당신이 미래를 안다면 지금 과연 지금 다른 선택을 할 것인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헤어져서 슬픔과 배신감에 잠겨 '차라리 이 사람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라고 생각하는가? 정녕 그때의 나의 경험과 감정과 모든 시간을 다 없애버리고 싶을 만큼 상실감이 큰가?
만약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YES 라면,
만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녀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다가, 그 자녀가 초등학생이 되었을 때 백혈병에 걸려 죽는다는 미래를 보더라도 당신은 그 결혼을 선택할 것인가?
정확히 테드창 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그때의 나의 경험, 배움은 어떤 힘듦과 슬픔을 가져오더라도 버릴 수 없는 것이 된다. 과거로 돌아가 선택을 바꾸는 것도, 미래를 보고 준비를 하는 것도,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현재에 충실하고 정의 내릴 수 없는 찰나를 내 곁에서 함께하는 존재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