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가치
“선생님은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 뭐예요?”
“음.. 저는 와인이요! 와인같이 시간이 지날수록 깊어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요. “
“여기 다 학생들인데..”
“아! 그럼 나무 같은 사람이요^^”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냐는 질문에 나는 보통 와인 같은 혹은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답한다.
둘 다 같은 뜻이다. 오래된 빈티지 와인일수록 그 깊은 풍미에 사람들은 비싼 돈을 주고도 맛을 보고, 사람 여럿이 둘러도 안기 힘든 크고 두꺼운 나무는 그곳의 명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술을 잘하지 못한다. 유전적으로 부모님도 술을 잘 못하셔서 주량이 센 편이 아니다. 소주 반 병 마시면 딱 기분 좋은 정도, 한 병이면 기억이 끊기기 직전이라 바로 자야 한다.
그래서 20-21살 때는 술자리를 최대한 피했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술 마시며 웃고 떠드는 시간이 낭비 같았다.
그러다 언젠가는 사회생활을 할 때 마시긴 해야 할 것 같았고, 미리 경험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내 주량과 주사와 취향 정도는 파악하고 사회에 나와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연구실 생활을 오래 했는데 여기저기서 1학년 겨울방학부터 4학년 1학기까지 했으니 거의 대학생활의 3년 정도를 여름 겨울 방학 반납하고 출퇴근하며 학기를 병행했다고 보면 된다.
운이 좋게도, 연구실 생활을 하다 보면 나는 항상 막내였고, 박사님들이 밥과 술을 많이 사주시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10살 가까이 차이가 나다 보니, 음식이나 술에 대해서도 나보다 잘 아시고, 대학생들처럼 소주 맥주 마시고 하는 분위기는 절대 아니었다. 그래서 조금 일찍 와인과 위스키에 입문을 했다.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니라 빈도다.
서은국 교수 <행복의 기원>
나는 이런 와인을 보며 사랑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 만난 연인은 더 이상 설레지 않을 수도 있고 처음의 떨림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안정감과 편안함과 깊이는 어떤 사람도 따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행복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어떤 음식이든 어떤 술이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맛있지 않겠는가.
“다정함은 지능이다”라는 말을 나는 정말 좋아한다.
본 적은 없지만 [사랑의 이해] 드라마에 나온 대사라고 한다.
2021년도에 대한민국인재상을 준비하면서 자기소개서를 쓸 때였다. 정말 많은 질문들이 있었는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한 가지는, “이룬 성과 중 남을 위해 한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그때 머리를 한 대 크게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살아왔고, 남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건 나의 스펙, 더 나은 내 모습만을 위한 것이었지, 내 주변, 내 이웃에게 베푼 것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 이후로, 나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남에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해 참으로도 많이 고민하며 살았던 것 같다.
얼마 전에 드디어 내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어렴풋이나마 그 형상을 찾았다. 나는 과거에, 현재, 그리고 앞으로 만날 사람들에게 “사랑이 많은 사람” 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러한 사랑은 꼭 이성 간의 사랑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대할 때, 낯선 이를 대할 때에 적대심으로 대하거나 경계하는 것이 아닌, 호의적이고 따뜻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나도 삶에 치여 살다 보면 이쁘게 말할 수 있는 한 마디도 툭 내뱉게 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다 보니 감정적이거나 갈등상황이 생기면 나는 많은 상황에서 말이 없어지곤 하는데, 그 이유는 말 한마디를 할 때 상대방이 내 말을 오해하지는 않을까. 말을 하고 싶지만 머릿속에서 논리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은 말을 그냥 뱉어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한 일이지 않을까.
이렇게 많은 생각에 사로잡혀 가만히 있곤 하고, 이런 나를 답답하게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넓은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이지만 그 안에서 “내 사람”으로 정의 내릴 수 있는 범주의 사람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그렇기에 내 사람이 되면 나는 무한의 사랑을 주곤 한다.
최근 요리를 하면서 느낀 게 있다. 당신이 누군가를 정말 아끼고 사랑하는지 확인하기 좋은 음식이 하나 있다.
대단한 음식일 것 같지만, 그건 바로 팬케이크다.
팬케이크는 쉽고 간단한 음식 같지만, 너무 불을 세게 올리면 금세 타버리고, 그렇다고 너무 낮은 불을 하면 시간이 한참 걸린다.
적당한 온도를 찾아, 적당한 시간 동안 한쪽면이 익기를 가만히 서서 기다리다, 적당한 타이밍에 뒤집고 반대쪽이 익기를 기다리는, 마치 그것이 사랑을 주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사랑하는 이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고찰을 하였다.
그럼에도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무례한 사람을 많이 마주한다. 상식 밖의 행동을 하거나 말을 쉽게 내뱉는 사람. 본인은 한마디 한 것이지만, 한숨 한번 쉰 것이지만 그것이 때로는 누군가의 삶에 큰 타격을 주곤 한다.
나도 때론 정말 화가 나지만 실제로 화를 내거나 욕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너무 무례해!”라고 생각한다. 무례한 사람에겐 어떤 말이 더 필요할까.
그저 나는 앞으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길 바라며, 혹여나 당신도 그런 사람을 마주쳤을 때 힘 들이지 말고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