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가치
대학 시절, 자취를 하던 때가 있었다.
본가는 경기도이긴 했는데 이게 참 통학하기에도 자취하기에도 애매한, 그런 위치여서 처음에는 통학을 하다가 결국 자취를 한 1년 정도 했었다.
심지어 내가 다닌 학교는 기숙사 수용 인원이 전교생 반에 반도 안되기 때문에 대부분이 자취를 한다고 보면 된다.
나름 혼자 사는 5평 남짓한 오피스텔에서 꽤나 잘해두고 살았다. 잠깐 사는 거 그냥 돈 투자 안 하고 대충 살아도 되지만, 나에게 집은 잠자는 곳 그 이상의 쉬는 공간이었기에 내 스타일대로 꾸미지 않으면 편히 쉬지 못할 것 같았다.
20살 때부터 나는 “나”라는 사람을 알기 위해 정말 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살아왔다.
• 내가 잘하는 일, 잘하지 못하는 일은 무엇인가
• 나는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 때 즐거운가
• 나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즐겁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즐겁지 않은가
• 내 인생에 돈이 얼마큼 중요한가, 정확히 얼마 정도 있으면 행복할까
이렇게 고민한 시간들 덕분에, 나는 내가 어떤 공간에 있을 때 편안하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면 행복한지를 조금은 선명하게 아는 편인 것 같다.
그렇게 알아낸 나는 크리스마스에 유독 진심이고, 철학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있으며, 쿠션을 많이 두고 자는 것을 좋아하고, 물리학을 사랑하며, 하찮고 바보같이 웃긴 것들을 애정한다. 책은 평생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이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절대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 퍼덕퍼덕 움직이는 세계가 있으니 죽어 있는 글자 따위는 눈에 담지 않는다. …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강유원 <책과 세계>
또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외로움을 굉장히 많이 타는 사람이었다.
물론, 피곤하고 바쁠 때, 특히 내 ‘일’을 해야 할 때는 혼자인 것이 좋다. 효율적인 측면에서도 혼자 있는 것이 집중도 잘 되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공부도 집에서 한다.
자취를 할 때 토요일 아침이면, 심심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 주말인데 만날 사람도 딱히 없고, 집에 가자니 할 일은 있고 그래도 주말은 즐기고 싶고.
처음엔 친구들을 많이 불러냈다. 혼자 무엇을 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 밥을 먹는 것도, 카페에 가는 것도, 영화를 보는 것도 혼자 하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선호했다.
이런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연애 중이라면, 정말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연인이라는 건 기간제 베프가 생기는 일이니까.
그러다 잠시 연애를 쉰 적이 있었는데, 혼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이것 참 큰일이었다.
20살이 넘은 나는 혼자 영화를 본 적도 없었다.
결국엔 인생은 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홀로 온전히 잘 서 있을 때 비로소 타인에게 따스한 마음을 내어줄 수 있고, 관계 안에서 잘 지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연습을 하기로 했다.
토요일 아침이면 나는 혼자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프로를 촬영 중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냈다. 조금 웃기긴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아침에 일어나 슬리퍼를 신고 동네 나들이를 나가면 기분이 사뭇 다르다.
동네를 걷다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좀 보다가 작은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시킨 후 음악을 들으며 광합성을 하다 집에 돌아오는 루틴이었는데 생각보다 좋았다.
그렇게 혼자 카페 가기, 혼자 밥 먹기를 연습하며 오롯이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익혀나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실의 경험을 해야만 나의 세상은 혼자도 잘 지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나의 경험과 순간을 함께 공유할 누군가를 찾았던 것 같다. 같은 장소에 가고 같은 영화를 보며 함께 자신의 생각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는 것.
그렇지만, 나를 누구보다도 잘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내가 유일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혼자 잘 지내는 법을 완벽히 익히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나는 퇴근 후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넷플릭스를 보는 혼자만의 시간을 꽤 소중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러니 오롯이 혼자가 되는 법은 평생에 걸쳐 우리가 해결해 나가야 할 숙제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