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음과 옅음

기다림의 가치

by 미지

당신은 아날로그 적인 것을 좋아하는가?


최근 몇 년간 Y2K와 같이 2000년대 초반의 것들이 다시 유행을 탔다. 나는 유행을 따라가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다. 나는 얼리어답터 성향이 아니기 때문에 트렌드 리더가 절대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유행이라는 것이 시작되면 나는 항상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는 축에 속하고, 내가 그 유행을 비로소 다 따라잡으면 유행은 끝나곤 한다. 참으로도 허무한 것이다.


이런 내가 남들보다 먼저 시작한 것이 있으니 그것은 필름카메라와 LP이다. 공학을 전공하고 예술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지만, 역시 전공이 아닌 모든 것은 재미로 다가오는 것이 정배다.


필름 카메라는 돈이 많이 드는 취미이다.


36장 필름 롤 하나에 2만 원은 기본이고 다 찍을 때까지 제대로 사진이 나왔는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황에서 현상을 맡기는 것도 돈이 든다. 요즘처럼 휴대폰 사진도 dslr 못지않게 찍히는 시대에 사진 한 장에 꽤나 비싸게 드는 셈이다.


한 롤을 다 찍기까지 그전 사진은 볼 수 없다. 사진을 잘 안 찍은 날이면 한 달 뒤에 보곤 한다. 현상을 맡기면 최소 며칠에서 일주일은 걸린다.


그렇지만 이런 시간도 기다릴만한 가치가 있는 사진이다. 아직까지 놓아줄 수 없는, 아니 요즘 같은 시대엔 더더욱 놓치고 싶지 않은 색감과 질감을 가진 사진이다.


똑같은 풍경을 보아도 그때의 기억을 남기고 싶을 때는 필름을 사용하곤 한다.


LP도 비슷한 이유이다.

원하는 노래를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에서 언제든지 찾아 들을 수 있지만, 비닐만의 매력이 있다.


그 노래가 나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만, 몇 바퀴를 빙빙 돌아 찾아가는 트랙이지만, 가는 길에서 들리는 타닥타닥 장작 타는 듯한 소리, 토닥토닥 차분히 공간을 메우는 가수의 목소리에 매료되곤 한다. 특히, 김광석 노래가 정말 듣기 좋다.


내가 음악과 사진에 진심인 것은 어찌 보면 그리 예정된 일이었지 모른다. 성인이 되고 최근 몇 년간 그림에도 관심이 크게 생겼었기 때문이다.

모네 <수련>

처음에 입문은 누구나 그렇듯 서양화였는데 모네의 <수련>을 보고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박물관 같은 곳을 좋아하지도 않고 미술에 깊은 조예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외국 여행을 가면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명화들을 보려고 미술관을 꼭 일정에 넣곤 했다. ​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에곤 실레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다 어느 날 한남동에서 친구와 시간을 보내다 우연히 갤러리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수묵화를 보고 마음이 확 뺏겨버렸다.

그때 다짐한 게, ‘나중에 성공하면 (내 직장과 집과 차가 생기면) 수묵화를 사서 집에 두어야지’였다.

수묵화에는 빛의 개념이 거의 없다. 사실성보다는 그림 속에 담긴 정신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수묵화 화가들은 “먹(墨)은 검은 것이 아니라 깊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수묵화의 미학은 ‘밝음과 어둠’이 아니라 ‘깊음과 옅음’에 있다는 뜻이다.


​여유롭게 꼭꼭 씹어야 제맛을 알 수 있는 음식이 있다. 찬찬히 살펴보며 생각의 깊이를 더해야 진의를 느낄 수 있는 그림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수묵화는 화면 속 가시적 형상 그 너머에 작가의 하고픈 말, 뜻이 담긴 작품들이다.


검은 먹 한 점에 정신과 의미가 실린다면,
그 점으로 자연과 인간의 본질을 그려내고자 노력해 왔다

수묵화가 김호석 화백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서예를 쓰기 전에 한참을 먹을 가는데 시간을 쓰곤 했다. 이는 단순하게 벼루에 먹을 가는 것이 아닌 마음을 갈고닦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세상이 어지럽고 빠르게 변화해 가는 시기지만, 이럴수록 선조들의 지혜를 잃지 않아야겠다. 기다림의 미학은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우리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데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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