짱구야, 아빠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건

부모의 가치

by 미지
​이거 완전 러키비키잖아
러키비키니시티삼각팬티~

올해 상반기에 나는 대학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무려 학부 9학기 째, 학과에서는 신입생환영회에 참석하면 화석으로 취급받는 학번이기에 친구들한테 이 말이 뭐냐고 물으니 요즘 유행하는 말이라고 했다.

가만 보니 내가 습관처럼 쓰는 “오히려 좋아” 랑 같은 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터무니없는 일이 일어나도 “오히려 좋아~”라고 하면 좀 기분이 나아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내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제일 많이 쓴 말 중 하나인 것 같다.

살다 보면, 내가 생각한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다. 20살의 나는 그런 것에 유연한 태도를 갖추지 못해 힘들어했지만, 그래도 이제는 그때보다 많이 성장하지 않았나 싶다.

올해 나는 예상에 없던 취준을 했다.


다들 생명공학을 전공한다고 하면 공대라서 멋있게 생각하고 요즘 뜨는 분야이니 취업도 쉽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수님께서는 강의시간에 우리가 학사 취업을 하는 것은 제약회사 영업직 밖에 불가능하다고 하셨는데,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그 말이 정말 맞았다.


예전에 아는 선배가 인적성에서 떨어졌다길래, “역시 선배는 인성이 쓰레기라 그런 듯 ㅋㅋ” 라며 놀렸었는데, 내가 그 입장이 돼 보니 진짜 지나가던 개가 짖는 소리이다. ​역시, 자기가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는 거 아니다.


면접을 보고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문득 내 신발을 보게 되었다. 오래 신어서 신발끈조차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건지 모를 아디다스 스탠스미스.


더러워지기도 했고 매번 버려야지 하면서도 그냥 편하게 다닐 때 툭 꺼내 신곤 하는 이 운동화를 계속 바라보다가 갑자기 신발끈을 다시 고쳐 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어디서부터 꼬여버린 건지 모르는 신발끈을 하나씩 풀면서 내 복잡한 생각과 삶이 투영되어 보였다.

나는 사실 교수가 꿈이었기에 대학원을 진학할 계획이었고, 취업은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었다. 내가 대학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아는 모든 사람은 내가 취준을 한다고 하자 의문을 품었다.

왜 대학원 안 갔어요?

다양한 이유를 말했다. 오히려 좋다며, 그냥 포장을 했다고나 할까. 이 자리에서 솔직하게 밝히자면, 그냥 부모님이 취업해 보라고 하셨다. 너무 별로인가?


어쩌면 나도 잠시 도피하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나는 사실 부모님의 말을 벗어나는 행동을 잘하지 못해 왔다.


이제야 경제적 독립을 하고 조금이나마 집안에서 나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나의 유년시절은 나의 의견은 단 하나도 없는 삶이었다.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겠냐 마는, 단호한 부모 밑에서 자라, 나는 겉보기엔 모범생에 좋은 자녀였지만, 그로 인한 상처도 많이 받았고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그렇기에 나라는 사람은 고민도 많고, 결핍도 많고, 생각이 많다. 편하게 살 수 있는 이 감사해야 할 삶을 안간힘을 주고 살아가느라 혼자 고생하는 사람이다.


평생 어쩔 수 없을 운명일 것 같다. 다만, 결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이러한 고민도 덜고 위로도 받기에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한다.


말을 섞는 것은 몸을 섞는 것보다 심각한 일이다. 나는 대화라는 말, 대화 행위에 긴장한다. 특히 삶의 지혜와 고통 같은 진한 말이 이전되기 때문에 특별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정희진 칼럼니스트


연애든 그냥 인간관계든 만남이 이루어지면 다양한 의견을 접하게 된다. 나는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삶의 철학적 관점을 이야기 나누고 그들의 의견을 듣는 행위를 즐긴다.


내가 어떤 사람을 보며 이름을 묻는다. 그 사람은 이름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라도 있는 양 가르쳐준다. 내가 이름을 듣고도 여전히 만족하지 못하고 궁금해하면 그는 자기가 의사이고 결혼했으며 아이가 둘이라고 말할 것이다

대부분 우리는 산을 보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난다. 대상, 자연, 인간과 관계를 맺을 때면 우리는 그들을 보고 듣는다고 착각하지만 그 관계는 애당초 추상적이고 지성적인 분류의 방식이다.

<여전히 우리는 삶을 사랑하는가> 에리히 프롬


아무래도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보통 20-30대 이기에, 많은 경우 대화의 주제는 연애, 결혼인 것 같다. 내 주변엔 비혼주의부터 딩크, 무조건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사람 등 다양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나도 오랫동안 고민해 본 문제였는데 나는 우선 결혼은 무조건 한다는 주의이긴 하다. 내가 현재 태어난 것은 비자발적으로 형성된 가족이기에 내가 스스로 선택한 가정을 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다만, 자녀 문제에 대해 나는 조금 회의적인 측면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자녀가 태어나면 가장 가까이에서 보고 자라는 어른의 형태가 나와 배우자 일 텐데, 나라는 사람은 아직 너무 부족한 것이 많아 자녀에게 모범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중산층의 많은 부모들이 자녀에게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짧은 인생을 살면서 느낀 건, 부모의 결핍과 우울을 자녀에게 물려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말 훌륭한 부모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친구 같은 부모’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애초에 부모와 친구는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나는 자녀가 볼 가장 가까운 어른의 형상이기에, 인생선배로서 아이가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걸어가는 모습을 한 발자국 뒤에서 바라봐주며, 뜨거운 햇살 아래 시원한 그늘이 되어주고, 아이가 울먹거리며 도움을 청할 때에 묵묵히 ‘여기는 어때?’라고 방향성을 제안해 주는, 그런 부모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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