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은 우연이고 인연은 노력이다
12월이 되면서 한 학기 종강을 했다. 대학원 입학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1학기가 끝났다니.
최근에 지인으로부터 대학원 진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았다. 내가 직접 부딪히며 깨달은 진심 어린 조언을 해줄 수 있기에 기뻤다. 대학원 입학 전에 나는 충분히 인턴 경험을 해봤기에 연구가 적성에 맞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대학원이라는 곳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대학원은 배움에 대한 갈증으로
진학하는 곳이 아니다.
대학원이라는 곳은 독립적인 연구자로 성장하기 위해 배우는 곳이지, 과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깊이 배우는 기관은 아니다.
독립적인 연구자라는 것은 누군가의 지도 없이 스스로 실험을 설계하고 실행해서 데이터를 도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고, 아직은 그걸 배우는 과정이기에 지도교수가 있는 것이다. 비로소 박사학위를 가지고 나서야 내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다. 그러니 석박사 과정 중에 대단한 연구를 할 것이라는 기대도, 조급함도 가지지 않는 것이 좋다.
나는 공학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최근에 기초과학에 대한 갈증을 좀 느꼈고 전공 분야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보았으나, 나에게 현재 주어진 상황 속에서 기초과학은 더 시간을 내서 스스로 공부해도 되는 분야라고 생각했다. 취미와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 것의 경계를 뚜렷하게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이러한 모든 사실을 깨닫는데 한 학기가 걸렸다. 나름 빠르게 파악했다고 생각이 든다.
최근 친한 박사님께 추천받아서 보게 된 미드인데, 미국인 에밀리가 파리라는 곳에 가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에 내 모습이 투영되어 공감이 많이 되었다.
나도 퇴사를 하고 대학원에 온다는 결단력과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워낙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성격인지라, 모든 경우의 수와 충분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다. 그래서 대학원에 오면 더 이상 큰 변수를 가진 고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매일매일 새로운 고민과 내적 갈등을 겪는 시기에 있는 것 같다.
빈 물컵에 물을 절반 따르면 컵 내부에서 많은 변동이 생긴다. 물이 튀기도 하고, 모양이 크게 바뀌기도 한다. 하지만 물이 이미 절반 따라진 컵에 나머지를 채우면 약간의 파동이 생길 뿐, 외형적으로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0-25년을 살면서 순간순간 겪은 희로애락은 앞으로 25-50의 25년과는 밀도 측면에서 많이 다를 것 같다. 그렇기에 아직은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많은 감정과 경험이 굵직하게 스쳐 지나가고 느끼는 점도 많은 것 같다. 특히나 올 한 해는 대학-회사-대학원이라는 위치적 변화와 그로 인해 만나게 된 수많은 사람들로 여느 때보다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끝없는 이야기가 채워진 1년이었다.
아직까지 연구자로서 의문을 품는 질문들은 남아있다. 연구의 목적이 무엇인가? 지금 당장에 내가 사회구성원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기초과학과 공학의 경계에서 나는 어떤 것을 하고 싶은가? 앞으로의 학위과정 중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그렇지만, 대학원에 온 것을 후회하냐고 물어본다면,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고민을 하며 살지만,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Meeting you was
the best part of my 2025
10-20대 때는 사람들을 만나거나 사회생활을 할 때 누굴 만나든 ‘괜찮은 사람이겠지?’라는 생각을 한 것 같다. 스쳐 지나간 모든 인연을 붙잡고 싶었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었다.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며 달라진 것은 그냥 다 어느 정도로 별로일 것이라는 예상으로 사람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사람에 대한 기대를 품고 싶지만, 실망이 클게 뻔하기에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우연히 괜찮은 사람을 발견하는 게 큰 행복인 것 같다. 특히, 붙잡으려 애쓰지 않았도 서로의 생각이 비슷하여 계속 인연이 유지되는 사람들이 곁에 남아있다는 게 너무나 큰 행운이라는 생각을 한다.
학부 때 사람은 무엇을 위해 사는지 궁금하여 선배들, 교수님들께 그 정답을 묻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모두가 하나같이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했다. 그렇다면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에 학부 수준에서는 더 이상 정답을 찾지 못하고 잠시 잊고 삶을 살았다. 지금에 와서야, 어느 정도의 경험치가 쌓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조금은 알 것 같다.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하게 산다.
지금 내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지속해서 그 방법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다. 행복은 별거 없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갈 수도 있고, 맛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갈 수도 있다. 취미생활을 할 수도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수도 있다. 그래서 본인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아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운이 좋게도 나는 회사생활을 하며 내가 어떤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찾을 수 있는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주어졌다. 운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과 함께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서 나만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붙잡으려 애써도 떠날 사람들은 어떻게든 떠나간다. 학부를 졸업하고도 편하게 연락하며 만나는 친구들은 양손가락에 꼽힐 정도이다. 퇴사를 할 때에도 모두와 만나고 지내고 싶었지만, 한 손에 꼽히는 사람들과 지속적인 만남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2025년에 남긴 이 몇 안 되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내게 가장 큰 행운이었다.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모든 게 가벼워지고, 선명해지고, 더 의미 있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그 사람들 덕분에 따뜻했고, 평온했고, 마음이 많이 행복했다.
당신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아는 사람인가?
아직 모른다면, 어느덧 2025년을 한 달도 채 안 남긴 시점에, 당신만의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최고의 연말을 보내는 것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