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You?
단조롭던 일상 중 이번 주는 조금 기대가 되었다. 오래전에 초대받은 한국과학창의재단 포럼에 패널로 참석하는 일이었다. 기숙사-연구실-헬스장을 반복하는 하루에 다른 분야 사람들을 만나 세상 사는 이야기를 듣는 것은 매번 설레는 일이다.
내 차례가 돌아오기 전, 하버드 입학처장을 하셨던 폴 윤 교수님이 강연을 해주셨는데 나도 객석에 앉아 듣고 있었다. 하버드 학생들이 졸업할 때 커리어센터에서는 이런 질문을 한다고 했다.
Why You?
한국대학입시, 각종 장학금, 취업준비, 대학원입시.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정해진 인원수 안에 들어야 하는 경쟁을 해온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자연스럽게 알 것이다. 신입사원 연수 때 최태원 회장님께 들은 말이 있다. “내가 이 회사를 선택한 것도 맞지만, 회사도 당신을 선택한 겁니다” 쌍방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단순히 나를 뽑아주세요 가 아니라 나여야만 하는 것이다.
왜 수많은 지원자 중에 하필 나여야 하는지. 그리고 나는 왜 하필 수많은 곳 중 이곳에 가야 하는지. 강연을 듣다 보니 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내 삶에 “왜?“를 외치는 일에 소홀했다.
“나는 왜 이 연구를 하고 있지?”, “나는 왜 교수가 되고 싶지?” 질문을 던지지 않으면 사는 게 편하다. 그냥 하라는 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냥 다들 이렇게 사니까, 남들 다 취업하니까, 이 나이에 결혼하니까.’ 그냥, 사는 거다.
연구실에서 하는 실험도 똑같다. 실험 지시서를 보면 굉장히 복잡하다. 어떤 시약을 넣어야 하며, 몇 분간 기다려야 하며, 무언가는 하면 안 되고, 이런 사항들이 있다. 크게 잘못되지 않고서야 하라는 대로 하면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다만, 왜 다른 것도 아닌 그 시약을 넣어야 하는지, 왜 더 오래 기다리면 안 되는지, 이런 질문을 하지 않으면 독립된 연구자로서 성장이 어렵다.
실험을 하다 보면 요리와 많은 점들이 닮아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재료를 넣는 순서, 칼집을 내는 방법, 숙성을 시키는 것. 다 이유가 있고 시간을 들이는 일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번 흑백요리사 2를 인상 깊게 봤다. 모두가 대단한 실력자였지만, 파이널 라운드에서 ‘나를 위한 요리’를 만들었을 때 최강록 셰프는 아마 소주를 내오며 본인이 우승할 것을 이미 확신했을 것이다.
마지막 요리의 초점은 단순히 맛이 아니었다. ‘왜, 이 요리가 나를 위한 요리인지‘ 였다. 겉보기엔 간단한 국물 요리 같았지만, 최강록 셰프가 여태껏 끊임없이 고민해 오던 생각들이 조려져서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각 재료를 넣은 건 이유가 있었고, 그는 왜 이 주제에 이 요리를 내오게 되었는지 충분한 서사를 가지고 있었다.
질문을 던질 때, 어떤 행위에 대한 목적의식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왜 나일 수밖에 없는지‘ 이다. 기업에 들어갈 때도 중요하지만, 왜 나를 곁에 두고 싶은지, 왜 나의 글을 읽어야 하는지, 왜 나를 필요로 하는지. 뭐, 이런 것들 말이다.
삶에 Why를 던진다는 건,
의식하며 사는 걸 말하는 것 같다.
과거에 ‘인생의 육하원칙’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어렸기 때문에 미완성이었고 이미 했던 말을 번복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결국 돌고 돌아 원점이다. 다만, 그때는 완벽히 정립하기 어려웠던 육하원칙을 이제는 정의할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How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이며,
Why 왜 나여야 하며,
What 어떤 것으로 채울 것이며,
Who 여정을 누구랑 함께 할 것이며,
Where 어떤 자리에 있고 싶으며,
When 언제 그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 가능한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니 ‘그 한 사람‘이 되려면 더욱 부단히 질문하고 나만의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끊임없이 그 질문의 벽에 부딪혀본 사람만이 자기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
Why you, 왜 당신이어야만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