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진 않아도 괜찮은 날들

자발적 고립

by 미지

올해가 되고 두 달간 시간을 내서 글을 적지 못했다.

대학원생도 수업을 듣는 학생이니, 방학이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대학원은 방학이 없다. 그저 수업을 듣는 달과, 듣지 않는 달로 나뉠 뿐이다. 나의 삶이 보통의 대학원생 삶이라고 단편 지을 수는 없지만, 대게 이런 하루를 보낸다.

알람은 여섯 시부터 울리기 시작한다. 전날의 숙취 혹은 피로에 애써 못 들은 척해보지만, 나는 나를 너무 잘 안다. 책상 위에서 시끄럽게 울리는 알람을 끄기 위해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삼십 분 간격으로 알람이 두어 개 더 설정되어 있다. 휴대폰을 침대로 가져와 머리맡에 두고 다시 잠을 청한다. 겨울이라 몸이 둔해진 건지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서 운동하는 건 요즘 체력이 안 따라준다.


학창 시절에도 하지 않던 '십 분만 더..'를 외치다 끝끝내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정말 급할 때는 엄마에게 미리 모닝콜을 청해둔다. 이 나이 먹고 금쪽이가 따로 없다. 비타민C, 오메가 3, ABC주스, 유산균을 먹고 가방을 메고 길을 나선다.

길을 나선다고 하기엔 기숙사에 살기 때문에 연구실까지 걸어서 십오 분 정도가 걸린다. 자취할 생각은 없냐고들 물어보지만,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연구실에 있기 때문에 기숙사면 충분하다. 우리 연구실은 자율 출퇴근인데, 대부분 오전 열 시쯤 출근을 한다. 나는 사람 없을 때 일하는 것을 선호하기에 아침 여덟 시반쯤 출근을 한다.


사층 문이 열리면 바로 보이는 복도와 양 옆으로 불이 꺼져있는 연구실과 오피스가 있다. 오피스 문을 열고 불을 켠 다음, 가장 안 쪽에 있는 내 자리에 외투와 가방을 벗어두고 노트북을 켠다.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매서운 겨울바람에 잠은 걸어오는 길에 달아나고 없다. 차가워진 두 볼과 손을 녹이기 위해, 사라지지 않는 피로가 눈을 짓누르는 와중에도 커피를 탈 텀블러를 챙긴다.

연구실에 새로 들어온 커피머신은 생긴 것은 우주비행이라도 할 것 마냥 생겼지만, 소리만 요란하고 나오는데 한참 걸린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아무도 없는 탕비실에서 잠시 스트레칭을 한다. 요즘 들어 관절에서 나는 소리가 더욱 커진 것 같다.


커피를 자리에 가져다 놓고 커피 향이 퍼지길 기다리며 연구실로 발길을 옮긴다. 연구실 불을 켜고, 식물에 물을 주고, 내 자리를 알코올 스프레이로 닦는다. 어제 적어둔 연구노트를 보며 오늘 할 실험을 스스로 되뇌어 보고, 몇 시부터 실험을 시작할지 하루 계획을 세운다.


'아홉 시 반부터 실험을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자리로 돌아와 커피와 에너지바를 하나 뜯는다. 아무도 없을 때 부스럭거리며 아침을 해결한다. 괜히 논문을 뒤적여 보지만, 아직 뇌는 잠에서 덜 깨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지도 않는 유튜브를 그냥 틀어본다.


이십 분 정도 지나면 사수이신 박사님이 출근하신다.

"미지 학생, 센트리 돌릴 거예요?"

"네, 저 양치하고 와서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오히려 방학기간에는 하루 종일 실험을 방해할 일정이 없으니, 더 실험이 빽빽하다. 게다가 이번 방학에는 학과에서 학부생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연구실이 더욱 북적북적했다.


이번 방학에는 밥을 먹자는 약속도 기약할 수 없었다. 당일 취소한 약속이 몇 개인지 모른다. 점심을 두시에 먹는 날도 있는가 하면, 오히려 아예 일찍 열한 시에 먹는 날도 있다. 실험을 하나 걸어두고, 기다리는 이십 분 사이에 책상에서 실험가운도 벗지 못한 채로 후다닥 때우곤 한다.


그렇게 이번 방학은 해가 뜰 때 출근하여 해가 지고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해서 살아왔다. 눈 감고 뜨면 연구실인 삶이었다. 실험이 일찍 끝나도, 오늘 배운 내용과 내일 할 실험에 대해 충분히 소화시킬 시간이 아직은 필요했다. 그러다 보니 매번 밤 열 시 넘어서 방에 들어왔다. 굉장히 단순한 삶이었다.

만나는 사람의 범주도 연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매일 비슷한 실험과 비슷한 일상이 단조롭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런 삶이 너무 만족스러웠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흘러간 매일은 아니었다.


체력이 따라주지 않아 꾸준히 하던 운동을 하지 못했다. 주말에 놀러 나가거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지도 못했다. 특별한 일 없이 술을 안 먹는 내가 인턴들과 퇴근 후 생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나 머리가 가벼웠던 적이 없었다.


난 항상 생각과 고민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두 달은 내가 하고 있는 이 실험 생각밖에 하지 않았다.

나의 삶의 모든 초점과 관심사가 연구에 맞춰져 일상이 흘러갔다. 지금 하고 있는 것에 대한 계획이 있으니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도 사라졌다.


대학원은 결혼생활과 비슷하다는 말이 있는데, 문득 이게 결혼 후 모든 것이 자녀중심으로 돌아가는 삶과 닮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숨 돌릴 틈 없이 바쁘지만 이 단조로운 삶이, 나는 26년 인생에서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


앞에서 내 삶이 모든 대학원생 삶이라고 단편 지을 수는 없지만, 대게 비슷하다고 언급했기에 대부분 나와 같이 생각할 줄 알았다. 최근에 대학원생들끼리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오히려 이 단순한 삶을 지루하다고 느끼고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극소수에 속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라기도 했고, 나는 연구생활이 적성에 맞는구나 싶었다.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듣고, "몰입"이라는 말을 해주었다. 내가 삶에 몰입해서 그렇다고.


'몰입', 서점에서 자기 계발 코너를 지나며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자주 본 단어였다. 일상에서 크게 써본 적 없는. 그렇다면 사람들은 인생에 몰입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책까지 읽는다는 말이겠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지금의 시간이 몰입이라면, 생각보다 쉽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들, 단순한 삶을 살아가면 된다.

장거리 운전을 하기 위해서는 차에 짐을 적게 싣는 것이 좋다. 기름 소모가 크기 때문이다. 삶도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덜어내는 것이 우리가 조금 더 수월히 멀리 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것이 인생에 몰입할 수 있는 방법이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