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알기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_1에서 이어집니다
남성의 경우에는 가족을 보살피게 위해 개인적인 성취를 포기하라는 요구를 받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사회는 남성에게 부양자라는 역할을 맡겼다. 이는 식탁 위에 음식을 올려놓기 위해 필요하다면 위험을 무릅써야 하고 지겨운 일도 해야 함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남성의 역할이 강조되는 전사 원형이 이타주의자 원형과 결합하면, 기꺼이 싸워서 이겨야 할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에는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야 한다. 금욕적인 전사의 경우는 실적을 올리는데만 매진하느라 자신의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한다.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하는 남성들을 보면, 회사와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한 아무도 자신이 어떤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생각에 가슴앓이를 하다 죽는 게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타성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여성상은 여성 본연의 고귀함을 드러내기보다는 여성이 지닌 온전한 인간성을 왜곡한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된 희생은 원망과 가식, 죄책감을 낳는다. 남성 역시 자신의 더 깊은 갈망과 관심사를 돌아볼 여지도 없이 부양자 역할만 강요받을 때 진정한 삶을 살지 못한 것이 대한 보상으로 무언가를 바라게 되고 남성 위주의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주위에서 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할 경우, 필연적으로 상대방에게 보상을 요구한다. 남편을 질책하는 매서운 아내,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부모, 또 사회적으로 무시당하는 일을 하다가 집에 와서는 가족들에게 왕처럼 명령을 내리는 남성의 모습에서 그 심리를 엿볼 수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올바른 희생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올바르게 베푸고 희생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야구에서 공을 던지고 받는 법을 배우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우리의 첫 번째 시도는 늘 매우 서툰 부분이 있다. 받는 법과 주는 법 모두를 알면 사랑의 본질인 주고받음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이때 에너지는 한 방향이 아닌 양방향으로 흐른다. 우리는 계속 같이 있기 위해서는 서로의 주는 방식과 어휘를 배워야 한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사회는 인간에게 역할을 강요하고 우리는 그렇게 오랜 세월을 살아간다. 서로의 주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면 서로를 오해하게 된다. 자신을 알지 못하면 자신을 열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으며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삶이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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