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알기
마법사는 순수주의자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름 짓는 힘을 사용한다. 순수주의자는 세상을 선하다고 이름 짓는다. 마법사는 문제를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해 새로운 인식으로 나아간다... 모든 사람이 본래 선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문제에 접근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일어난다. 마법사의 목표는 괴물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공동체를 회복시키기 위해 괴물에게 진정한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상호 의존적이며 우주의 축소판이다. 우리 모두의 자아 속에는 '자신을 미워하는 자'가 존재한다고 한다. 그 존재는 과대망상에 가까운 환상으로 우리를 유혹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믿음을 깎아내린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우리의 외부의 무시무시한 괴물이야말로, 우리 내면의 그림자를 끌어안아 주는 열쇠가 된다. 자기 안의 그림자와 똑바로 마주할 때 사랑하는 능력이 커진다. 그리고 마침내는 자신의 내면과 외부에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을 사랑한다는 것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이들의 나쁜 행위를 그냥 허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동화 [미녀와 야수]에서 야수를 구한 것은 야수의 기다림과 그녀의 사랑이 담긴 진정성이었고 [개구리 왕자]에서는 개구리 왕자가 공주의 솔직한 혐오감을 알고 난 후에 상황이 나아진다. 우리 문화에서는 사랑의 의미가 상대방이 무슨 행동을 하든 다 받아들이고 심지어 자신을 막 대해도 허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런 수동적인 태도는 은연중에 절망을 끌어들인다. 세상의 시각에 따라 여성답게, 혹은 남성답게 행동하면서 자신의 마음속 분노를 부정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관계를 파괴하는 결과를 낳는다. 때로는 화를 표현하는 것이 변화의 힘을 갖는다. 그것을 통해 진실하고 정직한 관계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마법사는 감정이나 낭만에 흔들리지 않는다. 마법사의 목표는 자신과 타인의 진정한 모습을 무엇인지 인식하는 것이다. 순간순간 진정성을 갖고 사는 것은 많은 용기와 연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사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리고 매 순간 솔직하게 마음을 여는 것은 매우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때 다른 사람들이 그 점을 이용해 우리를 조종하거나 통제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친밀함과 사랑, 그리고 때로는 마법의 순간들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사랑의 의미를 오해했었고 갈등의 상황을 싫어하므로 관계에 정직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나와 닮은 사람들만 사랑하고 회피하는 관계들을 형성해 갔다. 나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타인에 대한 이해도 없고 내가 바뀌지 않으면 상황도 바뀌지 않는다. 이 지혜를 얻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깨어 있어라'라는 말의 의미는 인식하고 있으라는 말이다. 나의 마음을,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타인의 아픔을 보고 공감하고 소통하라는 의미임을 이제라도 알았으니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그럼, 오늘도 좋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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