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우스의 노래 - 매들린 밀러
과거 내가 아킬레우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이미지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 영웅, 타고난 살육에의 재능이다. 딱히 긍정적인 이미지는 아니지 싶다. 약 18년 전(몇 년도에 개봉했는지 검색해 보면서 이렇게나 시간이 흘렀나 충격적이었다.) 개봉했던 볼프강 페터젠 감독의 영화 “트로이” 역시 아킬레우스의 전쟁 영웅의 모습이 주이며 거기에 아킬레우스와 브리세이스의 로맨스가 한 스푼 정도 추가되었다. 특히 브래드 피트가 아킬레우스 역을 맡아 그의 빛나는 외모에 보는 눈이 즐거웠지만 어쩐지 영화를 볼 당시 인간적인 아킬레우스의 매력은 느낄 수 없었다. 분명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인데 트로이아의 왕자 헥토르 역의 에릭 바나에게 빠져드는 기이한 상황이 발생했다. 그럴 만도 한게, 아내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이는 헥토르와 달리 밤이면 밤마다 이 여자 저 여자 밤 시종이 바뀌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이 뼛속까지 유교걸인 내 눈엔 아니꼬울 수밖에. 종국엔 헥토르의 시신을 전차에 매달고 끌고 다닌 그의 무자비한 모습만이 기억에 남았다. 영화 속의 그리스에 대한 충성심 따윈 없는, 자유분방한 성격을 가진 전장의 영웅 아킬레우스는 “아킬레우스의 노래”에서 어떻게 쓰였을까?
아킬레우스의 노래는 이런 점에서 굉장한 반전 소설이다. 이야기는 “파트로클로스”라는 인물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그는 메노이티오스의 아들로 어릴 적 실수로 한 소년을 죽이고 고국에서 쫓겨나 프티아에 팔려간다. 거기서 아킬레우스를 만나 함께 성장하며 이 둘은 우정을 넘어선 사랑의 관계로 발전한다. 그러던 중 트로이아의 왕자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의 아내 헬레네를 납치하자 메넬라오스는 형인 아가멤논과 함께 구혼자들의 맹세를 명분으로 그리스인들을 모아 전쟁을 일으킨다. 이때 전쟁에 참전하면 단명할 운명이었던 아킬레우스는 어머니 테티스의 꾀로 숨어 지내다 결국 운명에 이끌리듯 전쟁에 참여하게 된다. 파트로클로스 또한 구혼자의 맹세 때문에 함께 참전하여 십여 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을 아킬레우스와 함께한다. 길고 긴 전쟁 중 그리스인들 사이에 퍼진 역병이 신의 분노 때문이므로 아킬레우스는 신의 노여움을 풀려면 포로로 잡아들인 트로이아 사제의 딸을 아무 대가 없이 돌려보내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가멤논은 그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무시하며 아킬레우스의 전쟁 전리품인 브리세이스까지 가로채간다. 명예가 더럽혀진 것에 분노하며 아킬레우스는 참전을 거부하고 그로 인해 그리스인들은 전쟁에 패할 위기에 놓인다. 파트로클로스는 이를 두고 볼 수만은 없어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입고 대신 참전했다가 헥토르에 의해 전사한다. 연인의 죽음에 크게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결국 죽을 운명임에도 불구하고 헥토르를 죽임으로써 연인에 대한 복수를 하고 예언처럼 전쟁 중 전사하여 희대의 영웅으로 기록된다. 단명할 운명의 영웅과 무명의 장수 중 결국 단명을 선택할 만큼 아킬레우스는 명예를 중시했기에 아가멤논에 의해 명예가 더럽혀지자 어머니인 테티스의 만류에도, 그리스인들의 비명소리에도 불구하고 참전에 대한 결정을 끝내 번복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마음을 바꾼 것이 파트로클로스이다. 그리스에 대한 충성은 애초에 없을뿐더러 단명의 운명을 조금이나마 연장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헥토르를 멀리하던(헥토르가 죽으면 아킬레우스도 죽는다는 예언 때문에) 그가 필타토스(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분노하여 직접 헥토르를 찾아 나선다. 아킬레우스를 움직인 이 사랑은 어찌나 위대하고 견고한지. 대충 전쟁 영웅 아킬레우스 이야기겠거니 지레 짐작하고 읽기 시작한 책에서 나는 절절한 사랑을 보았다.
책은 오로지 파트로클로스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므로 언뜻 보면 아킬레우스에 대한 파트로클로스의 사랑이 파트로클로스에 대한 아킬레우스의 사랑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될 수 있다. 나 역시 그랬다. 아킬레우스에게 먼저 마음을 표현한 것도, 아킬레우스의 데이다메이아와의 외도(물론 원해서 한 건 아니라지만)를 눈감아 준 것도 파트로클로스이기에. 그래서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을 때 마음이 아팠다. 그깟 명예가 뭐라고 결국 연인을 사지로 몰았는지 아킬레우스가 미웠다. 앞서 이 책이 굉장한 반전 소설이라 한 두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놀랍게도 작가는 파트로클로스가 죽었음에도 계속해서 그를 화자로 앞세웠다. 혼령이 된 파트로클로스의 눈으로 본 아킬레우스는 절망 그 자체였다. 이미 혼이 남아있지 않은, 날이 더워 벌써 쿰쿰한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연인의 시체를 끌어안고 그는 밤낮으로 흐느꼈다. 헥토르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는 예언 때문에 십여 년을 끌어온 전쟁을 결국 연인에 대한 복수를 위해 끝내기로 마음먹는다. 심지어 명예를 그리도 중시하던 남자가 자신이 죽으면 유골을 자신의 시종(물론 파트로클로스의 태생은 왕자이지만)인 파트로클로스의 유골과 한 데 묻어달라 유언을 남겼다. 아킬레우스 사후에 등장하는 그의 아들 피로스가 아버지를 욕보일 수 없다며 이미 합쳐진 유골은 어쩔 수 없더라도 묘석에만큼은 둘의 이름을 같이 새기기 거부하는 것에서 시대상 아킬레우스의 유언이 얼마나 큰 결정이었으며, 파트로클로스를 얼마큼 애정 했는지 짐작해 볼 수 있다. 돌이켜보면 한평생을 테티스로부터 둘의 관계를 응원 받기는커녕, 테티스는 파트로클로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혐오했음에도 그를 옆에 두고 지켜준 것만으로도 내가 아킬레우스의 사랑의 크기를 오해한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해진다.
이 책은 결국 절절한 사랑 이야기이다. 신분의 위치도, 성별도, 운명도 그 모든 걸 뛰어넘은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 두 사람만의 사랑 이야기. 신화는 해석하기 나름이라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느낌이 다른데, 나는 매들린 밀러 버전의 아킬레우스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파트로클로스를 아킬레우스의 사촌 동생으로 등장시킨 영화 트로이의 설정보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 연인인 설정이 아킬레우스의 선택에 더 설득력 있었다. 단편적으로 보면 비극적 사랑 이야기이지만 매들린 밀러는 완전한 비극으로 마무리 짓지 않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테티스는 파트로클로스에게 관용을 베풀어 두 사람의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을 이루어준다. 살육과 고뇌의 고통은 모두 이승에 남겨둔 채 온전히 서로만을 바라볼 수 있기에 마음이 평온해지는 결말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사그라져가는 마지막 햇살에 눈을 반짝이며 앉아만 있다.
“내가 써두었다.” 그녀가 말했다.
처음에는 나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가 비석 위에 새긴 이름이 내 눈에 들어온다.
아킬레우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파트로클로스가 있다.
“가거라.” 그녀가 말한다.
“그 아이가 널 기다리고 있다.”
어둠 속에서 두 개의 그림자가 가망이 없는 묵직한 어스름을 뚫고 서로에게 다가간다.
그들의 손과 손이 만나자 빛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태양 밖으로 금 항아리 백 개가 퍼붓듯 쏟아진다.
애틋한 사랑 이야기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애초에 내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크나큰 한계라 여겼던 여성 혐오적 서사와 운명론이다. 아킬레우스의 태생은 그의 아버지가 테티스를 강간한 데서 시작된다. 테티스를 범하려다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보다 위대해질 것이라는 예언에 겁이 난 제우스는 테티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테티스를 인간 남성에게 보내버린다. 책에선 바닷가 모래 위에서 강간당하던 그녀의 모습이 스치듯 묘사되지만(테티스가 몸부림치는 와중에 그녀의 몸 아래에서 뭉개지는 까끌까끌한 모래의 느낌) 독자인 나는 그녀가 받았을 고통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예언은 틀리지 않았고 여성을 범하는 데엔 아무런 죄책감이 없다. 데이다메이아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킬레우스는 자신의 신변을 숨기기 위해 데이다메이아를 철저히 이용한다.(물론 아킬레우스는 어머니인 테티스의 뜻을 따른 것뿐이라지만.) 심지어 그녀는 아킬레우스의 아들을 임신하는데 출산 직후 아들(피로스)까지 테티스에게 빼앗긴다. 데이다메이아는 자신의 비참한 운명에 악다구니치지만 끝내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그렇기에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사랑을 절절하다 느낄지언정 아름답다고는 여길 수 없었다. 그들의 사랑은 지독히 이기적이다. 신화는 내게 재미와 기쁨을 주는 동시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고통도 준다. 새삼 이 신화를 창조해낸 시대의 여성들은 당연하다는 명목하에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을지 감히 현대의 나는 짐작만 해 볼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둘의 사랑을 응원했다. 사랑은 이기적으로 행동할수록 손아귀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와 같이 순식간에 놓쳐버리지만 때로는 누구보다 이기적이지 않다면 애초에 손에 쥐어볼 기회조차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 모두 항상 고결하고 옳은 선택만을 하진 않지만 사랑하기에 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기에 나는 그들에게 비난이 아닌 애처로움을 표한다. 이 글을 두 사람의 에로스가 여실히 느껴지는 구절로 마무리하겠다. 책을 읽지 않은 분들도 그들의 절절한 사랑을 함께 느껴보길 바라며 이만 마치겠다.
아킬레우스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네 머리칼은 여기가 늘 삐죽 솟아 있어.” 그는 내 귀 바로 뒷부분을 손으로 건드렸다.
“내가 그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얘기한 적 없지?” 그의 손가락이 닿았던 부분의 머리칼이 곤두섰다.
“응.” 내가 말했다.
“얘기했어야 하는 건데.” 그는 내 목이 브이자로 끝나는 지점으로 천천히 손을 내려서 맥을 부드럽게 쓸었다.
“여기는? 여기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얘기한 적 있어?”
“아니.” 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여기는? 여기는 당연히 내가 깜빡하지 않았겠지.” 그는 고양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깜빡하지 않았다고 얘기해줘.”
“깜빡하지 않았어.”
“여기도 있네.” 그의 손은 이제 끊임없이 꼼지락거렸다.
“여기에 대해서 얘기한 건 알아.” 나는 눈을 감았다.
“또 얘기해줘.”
파트로클로스 발 밑에 헥토르의 시신을 내려놓는 아킬레우스 - 조제프 브누아 쉬베 (사진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