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내 일을 사랑하고 싶다

근데 꼭 사랑해야 하나?

by 단비

“저는 제 일이 너무 좋아요. 제 일을 사랑해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 순간 그가 어찌나 얄미웠던지 나도 모르게 “거짓말 아니에요?”라고 반문해 버렸다. 그는 순수한 눈동자를 반짝이며 그런 거짓말을 왜 하겠냐며 되려 내게 지금 하는 일을 사랑하지 않냐고 되물었다. 그 순간, 어떤 순수함은 공격적이지 않아도 칼날처럼 날카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순수한 질문은 사랑하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나를 푹하고 찔렀다.


지금까지 줄기차게 말해왔듯이 나는 내 일과 직업을 사랑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은 못 견디게 싫은 날도 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그날 해야 하는 검사들을 쳐내고 쳐내고 또 쳐내고. 지루하면서도 때론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일을 사랑하기란 쉽지 않다. '아직 이 일을 충분히 해보지 않아서 그럴 거야.'라는 마음으로 부정해 오길 3년, '역시 안 맞는군.'이란 결론과 함께 무념무상으로 일하길 5년. 나는 사랑하지 않는 일을 8년간 견뎌왔다. 스무 살 적부터 선택해 온 길이 내게 행복을 주지 못 한다는 걸 완전히 인정하게 됐을 땐 꽤나 슬펐지만 예상보단 덤덤히 슬픔을 받아들였다. 꼭 사랑하는 일만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내가 사랑하지 않는 이 일을 하고 있는 지금, 나는 그 어떤 때보다 삶의 안정감을 느낀다. 지금의 나는 경제적으로 성장하는 내 미래 모습을 그려볼 수 있고, 내 집 마련에 대한 꿈에도 두어 걸음 다가갈 기회를 얻었다. 적성엔 안 맞아도 잘 해내는 내 모습은 이따금 나 스스로를 뿌듯하게 만든다. 일머리가 없어 같은 일을 하면서도 진땀을 빼며 고생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이 일을 버티고 해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고, 어쩌면 그건 적성이 잘 맞는 것만큼이나 축복일 수 있다고.


몇 년 전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쾌락과 행복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한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는 해외여행이나 사고 싶었던 물건에 돈을 탕진하며 얻는 기쁨은 행복이 아닌 일회성 쾌락에 가깝고 직장이나 여타 일상에서 얻는 잦고 작은 기쁨들이 행복이라 말했다. 당시엔 그의 말 중 "직장"이란 말에만 꽂혀, '역시 나는 행복하지 않아!'라며 지하 깊숙이 땅굴을 파고 들어갔었다. 이제는 직장이 아닌 "일상"이란 단어를 깊이 들여다보려 한다. 야간 근무와 주말 당직이 조금(꽤나) 짜증 나긴 하지만 보통은 워라밸이 충족되는 직업을 가진 덕분에 나는 퇴근 이후의 삶을 즐길 수 있다. 퇴근 휴 요리 해 먹고 책도 읽고 요가도 하고 감성이 촉촉하게 올라온 야밤에는 글도 쓰고. 이런 일상은 잦고 작은 기쁨들, 행복이 확실하다.


세상엔 사랑하는 일을 찾아 떠난 사람들의 모험담이 넘쳐난다. 아마도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의 이야기가 모험담이 될 수 없다는 생각에 떠벌리지 않아 더욱 그렇겠지. 그래서 별 볼 일 없는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상엔 완전히 행복하거나 완전히 불행한 일을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라, 가끔은 행복하고 가끔은 불행하기도 한 어중간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나와 같이 직업적인 고민들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에게 "너도? 나도!"라는 두 마디 말을 전하며 외롭지 않게 등을 두들겨 주고 싶었다. 언젠가 그런 우리가 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세모눈 대신 너털웃음을 지으며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저는 일을 사랑하진 않고요. 끔찍하진 않아서 그냥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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