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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정말 Aug 16. 2023

아빠와 양파

아빠는 뚱뚱하다

밥도 많이 먹지만 김치도 많이 먹는다 그 김치... 짤텐데  김치 먹고 짜면 밥을 더 먹고, 밥을 더 먹고 입이 싱거워지면 김치를 더 드시고 이렇게 몇 번 하다 보면 금세 밥 두 공기가 비워진다


맛이 있는 음식을 양껏 드시면 억울하지나 않지

김치, 이상한 생선 뼈따구 같은 걸로 밥을 먹어치우신다 매번 아따맛있네 하면서

진짜로 그게 맛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드시는 걸 조절을 못하기 때문에

성인병도 종합선물세트로 있다 늘 경계하라고 했던 당뇨도 기어이 추가상품으로 획득했다


당뇨에 고혈압, 고지혈증까지....

칠십이 다되어 가는 나이임에도

심장의 펌프질도 정상..

혈관도 어디 하나가 막혀도 막히지 않았을까 항상 걱정인데  심혈관도 짱짱하다 이것도 이후엔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어째서 아빠가 이렇게 정정하실까! 궁금해하던 찰나에

머리를 스쳐 지나간 건강음식하나

그것은 바로 양파였다


아빠 하면 양파를 머리에 바로 떠올릴 만큼 아빠와 양파 그 심오한 관계에 대한 에피소드가 여럿 있다.


ep. 1

중3 때 인가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저녁

아빠가 9시 뉴스를 보면서 사과를 덩어리째로

우걱우걱 서걱서걱 드시고 있었다

그 소리가....

달콤한 즙이 얼마나 많게 들리던지

출출한 김에 아빠 그거 한 입만 줘하고

그 사과를 건네받았다

손에 쥐어들자마자 코를 찌르는 알싸한 냄새가 나는 그것은 사과가 아닌 바로 양파였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양파를 왜...?

의문의 양파테러를 당할 뻔했지만 아빠는 그 양파가

사과만큼 달달하니 맛있다고 하신다

아니 이게 달다고..?

어쨌든 달달한 수박처럼 양파를 한입 가득 넣고 잡수시는 모습이

아직도 충격적이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ep. 2

어렸을 때 우리 집은 2층 목조주택.

삭기도 엄청 삭고 허름했던 집에서 가장 허름했던 곳은

아빠 방

안방, 아빠 방은 엄마의 정성스러운 청소에도

특이한 냄새가 났는데 사각형의 방 꼭짓점에 놓여 있는 양파가 그  냄새의 주범이었다

양파가 통으로 꼭짓점에 놓여있고

주무시는 곳 머리맡에는 양파껍질이 수북했다

양파가 해독작용도 해주고 피도 맑게 해 준다는 것까지는 오케이

방향제만큼 프로럴 하며 엘레강스한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는 차마 인정하기 힘들었다

어쨌거나 엄마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기 때문에

아빠의 방은 양파 그것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독립을 하고 십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집.

그 묘한 양파의 향연이 아직도 지속되는 걸 보면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음을 느꼈고

오랜만에 보게 된 그 말갛고 둥그스름한 그 양파가

정겹고 웃겼다 아빠가 돌아가시게 되면

양파를 썰때마다 지금 보다 훨씬 더 눈물이 나려나


ep. 3

나의 유년시절을 돌아보면 아빠와의 외식을 정말 손에 꼽을 수 있다 박봉이었던 공무원 월급에 딸 셋을 키워내려 하셨으니 얼마나 돈을 허투루 안 쓰시려고 알뜰살뜰 모았을까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아빠를 더 존경하게 됐다

무튼, 몇 안 되는 그 외식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외식은 대구찜이다

언니들이랑 어렸을 때 같이 먹었던 돼지갈비구이나 이런 걸 기대했는데

대구찜이라는 느낌이 불길한 메뉴는 정말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좀 평범하게 갔으면 했는데....

어쨌거나 아빠 손에 이끌려 가게 된 대구찜 집은

허름하고 간판도 없고 메뉴판도 없는 그런 곳이었다

몇 명 왔는지만 물어보던 그 주인의 모습은

우리를 귀찮아하네라고 당시에 내 눈엔 비쳤는데

지금 그녀를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아 여기 찐맛집이다 하고 그 아우라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엉망이었던 기분이 더 엉망진창으로 바뀐 건 대구찜이 나오고 나서부터였는데

그놈의 양파가 또 엄청나게 대구랑 범벅으로 해서 나온 게 아닌가!

양파라고 하면 일단 질색팔색을 할 때  

또 양파라니 얼마 안 되는 이 성스러운 외식에  

그냥 그대로 대구찜이니 뭐니 안 먹고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래도 옆 테이블에서 꽤나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이 사장님 음식 최고라고 하는 걸 보면

그래도 보통맛은 아니겠거니 하는 마음에 대구살을 집어서 먹었다


아직까지도 그 양파범벅 대구찜은 내가 먹었던 음식 탑쓰리에 든다

그 허름했던 음식점의 분위기

술 취한 아저씨들의 뒤섞인 목소리

대구살은 날 다 주고 또 대구뼈다귀랑 양파만 퍼먹던 아빠


고3 때 수험생인 내가 엄마 아빠랑 떨어져서 혼자 있고

기죽을 까봐 사준 음식이었다

본인이 제일 좋아하고 최고라고 생각한 양파를

내게 양껏 먹이고 싶어서 그러셨을까

에피소드를 쓰면서 옛 생각에 잠기니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아빠를 생각할 때면 재미난 에피소드들도 많지만

이렇게 눈물이 금세 뚝뚝 떨어질 정도로 가슴이 저릿하다 엄마보다 아빠를 생각할 때 이런 슬픈 감정이 더 짙은 이유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아빠 본인도 인지하지 못하는, 서글프고 고달픈 인생을 내가 대신

속으로 기리고 있어서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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