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조카와 나
동갑내기 조카에게 맞고도 아프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조카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첫눈에 반한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는데, 그 여학생 집안에서 반대가 심했다.
그 여학생 집에선 휴학까지 시키면서 외가댁으로 피신을 시켰고, 조카는 술을 마시고 그 여학생의 외할머니 댁까지 쫓아가서 화염병을 던졌다고 한다.
그 일로 방화에 살인미수라는 죄명으로 조카는 재판을 해야 했고, 우리 집에선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으고 빚까지 지면서 최고의 변호사를 선임했고, 심신 미약을 주장해서 겨우겨우 벌금형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온 가족이 거액을 들여 조카를 살리고 있을 때, 나는 보일러실과 붙어있는 반지하방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연탄가스를 마셨고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걸 마침 친구가 놀러 와서 발견했고 다행히 의식을 회복했지만, 그 이후 조금만 연탄가스 냄새가 나도 두통이 심하고 구토를 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그 소식을 듣고 지상에 있는 방을 얻으라고 엄마 몰래 100만 원을 만들어주셨는데, 엄마가 어떻게 아셨는지 그 이야기를 조카에게 했나 보다.
한밤중에 조카가 월담을 해서 내 자취방에 들이닥쳤고, 다짜고짜 내 돈 백만 원 내놓으라고 온갖 욕을 하고 행패를 부리기 시작했다.
뜻대로 백만 원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한 조카는 나를 폭행하기 시작했다.
조카의 발길질에 턱이 빠지고 얼굴엔 피멍이 들어서 눈도 뜰 수 없는 지경이 되어서야 조카의 폭행이 멈추었고, 백만 원은 지켰지만, 내 마음은 지킬 수 없는 상처를 또 고스란히 끌어안아야 했다.
시골집에 내려가서 이럴 수는 없다고 아무리 동갑이어도 나는 고모인데, 어떻게 조카가 그렇게 고모에게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느냐 항변을 했지만, 내게 돌아오는 건 더 큰 아픔과 슬픔뿐이었다.
' 맞을만했으니 때렸겠지 '
' 그러게 그 돈을 그냥 내주었으면 안 맞았을 거 아니냐 '
' 그 애가 요즘 지맘이 아니고 허깨비로 사는데 그깟 연탄가스 마셨다고 죽는 것도 아닌데 그 돈을 왜 받았냐 '
' 고모가 그깟 일도 이해 못 하냐 '
내게 돌아오는 말들은 말이 아닌 독침들이었다.
나 하나 죽는다고 눈도 꿈쩍 안 할 사람들에게 따지러 온 나 자신을 미련하다 탓하고, 조금이나마 내 마음을 다독여줄 거라 믿었던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서울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입술을 깨물고, 속울음을 삼켜야 했다.
나는 도대체 왜 낳으신 걸까.
나란 존재는 저들에게 무엇인가.
나는 그 사람들에게 무얼 바란 걸까.
엄마는 차라리 뒷산에 날 버렸을 때 다시 데려오지 말지.
그냥 아무것도 모른 채로 짐승의 먹이나 되게 두시지.
가족이 주는 상처는 어떤 것으로도 치료되지 않는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김질해야 했다.
몸도 마음도 추스를 수 없어서 6개월의 병가를 내고 휴식을 갖는 동안 나는 가누지 못하는 마음을 달래느라 술에 의지해 살았다.
취하면 자고, 깨면 마시고 그렇게 폐인처럼.
시간은 멈춤 없이 흘러가고 회사에 복귀를 했지만, 그 6개월이란 시간은 사회에서 너무 긴 시간이었고, 남들보다 두 배세배 노력하면서 공백을 메워야 했다.
다시 회사에 적응하느라 힘든 시간을 보냈고 선배님들의 배려로 직장생활은 순조롭게 제자리를 찾아갔는데, 이젠 또 매달 10일 월급날 오전이면 엄마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삼성역에서 전화를 하셨다.
" 비료값이 없어서 왔다 "
" 집전화를 신청했는데 보증금이 없다 "
" 일꾼들 품값을 줘야 한다 "
가장 큰 핑계는
" 니 조카 변호사비 주느라고 집에 돈이 없어서 왔다 "
난 그렇게 매달 월급에서 반을 엄마에게 상납했다.
엄마는 나에게서 돈만 받아가는 게 아니라,
나의 감정도 받아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내가 착하다고 효녀라고 말하지만,,,,,,,,
실상 나는 상처받는 게 싫어서 달라면 주는 쪽을 선택했던 것이고, 감정의 한쪽을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