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아직도 사람을 믿나?
*스포일러 있음. 에피소드 9을 보지 않은 분은 읽지 마시길..
아들녀석에게 구슬놀이에서의 지영과 새벽의 장면 이외에 다른 감동의 장면이 있었냐고 물었다. 그 녀석은 장면들을 떠올리려 했지만, 감동의 장면을 꼭 집어 말하지는 못했다. 아직 13살이 채 되지않은 이 녀석에겐 아저씨 아줌마들의 장면들은 어린 지영과 새벽의 장면 처럼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지는 않았던 듯하다.
오징어 게임이 이토록 세계적인 현상이 된 이유는 물론 거의 모든 에피소드마다 감동의 장면들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50대 후반인 나에게 감동의 장면은 많았다. 그중에서 둘을 더 꼽으라면 그중의 하나는 다음 장면이다.
마지막 에피소드 9 에서, 기훈이 오징어게임에서 상우를 쓰러뜨린 후, 승리의 꼭지 점으로 걸어가 그 바로 앞에 서는 장면. 진행자의 권총은 상우를 겨누고, 기훈이 꼭지점 원에 발을 디디면, 그 방아쇠는 당겨지고, 기훈은 456억이라는 거대한 상금을 받게 되는 그 장면. 그런데, 기훈은 멈춘다. 승리의 원을 바라보던 기훈은 고개를 든다. 그리곤 내뱉는다, '안해.' 그리고, 쓰러진 상우를 향해 돌아서며 말한다, '그만두겠어.' 기훈은 게임을 중단시키려한다. 게임에 임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원하면 게임을 중단할 수가 있으니까. 상우에게 다가가 손을 내민다. '가자. 집에 가자.' 거대한 상금 보다는 상우의 목숨이 기훈에게는 더 소중했던 것이다.
에피소드 9 시작 에서는, 기훈은 복수심에 가득 차있었다. 에피소드 8 마지막에서 상우가 새벽을 죽였으니까. 꼭 이겨 복수를 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 절심함때문이었는지, 기훈은 상우와의 싸움에서 이겼다. 상우를 쓰러뜨렸고, 기훈은 칼을 손에 쥐고 상우의 몸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칼을 내리쳤다. 복수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칼은 상우의 얼굴 옆 땅바닥에 꼿힌다. 기훈에겐 복수심이라는 혐오감이 살인을 실행할 만큼 강하지 못했다.
거대한 상금을 포기하고 상우의 목숨을 택하는 그 마음때문에, 기훈은 오랜시간동안 상금에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마지막에 기훈은 깜부였던 오일남을 만난다. 오일남이 바로 이 잔혹한 오징어게임의 주최자였던 것이다. 죽음을 바로 앞에 둔 오일남이 기훈에게 묻는다, '아직도 사람을 믿나?' 그러며, 창밖에 보이는 한겨울 거리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있는 부랑자를 두고 내기를 건다. 인간의 선함을 믿는지. 오징어게임이라는 서로 죽고 죽이는 잔혹한 게임을 거친 기훈. 그래도 그는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는다.
우리는 그럴 수가 있을까? 기훈처럼, 막대한 재물 대신에 다른 인간의 목숨을 택할 수가 있을까..
기훈처럼 인간의 목숨을 택할 사람들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처한 상황에 따라 답은 달라지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목숨보다 거대한 상금을 택해야만 비인간적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은 다른 답에 이를 것이다.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