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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우진 Oct 15. 2021

오징어 게임 (Squid Game), 감동의 장면 1

지영과 새벽

*스포일러 있음. 아직 구슬놀이 에피소드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마시길..


어제 아침 아들녀석을 학교에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내가 물었다. 감동적인 장면이 무엇이었냐고. 그 녀석의 답은 구슬놀이 에피소드에서 새벽과 지영의 장면이었다. 지영이 자신의 목숨을 새벽을 위해 희생하는 장면. 나도 그 장면이 감동의 장면 셋 중의 하나였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곤 내가 물었다. 그 장면을 보며 너 울었니? 녀석이 그랬다고 했다. 나도 울었어라고 말해주었다. 둘이서, 그 장면을 되새기며 학교를 갔다.


어느 누구도 정확히 어떤 게임인지 모른채 파트너를 정했다. 그저 다른 팀과 경쟁하는 게임이겠거니 했다. 그래서 좋아하거나 믿을만한 사람을 택했다. 다른 팀과 경쟁하여 같이 살아남으려고. 계산이 빠른 상우는 힘이 쎈 알리를 택한다. 자신의 좋은 머리와 알리의 강한 체력을 합하면 어떠한 게임에서도 다른 팀을 이길 수가 있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기훈은 혼자 남은 노인 오일남을 택한다. 그저 안쓰러워서. 누구에게도 택함을 받지 못하는 노인에 대한 측은지심에. 한 부부는 당연히 서로를 택하였다. 지영은 줄다리기 게임 에피소드에서 외로운 자신을 팀으로 인도한 새벽을 파트너로 택한다. 좋아서. 그리고 말한다. '어떻게 해서든 네가 이기게 해줄께.'


그런데, 생존게임은 다른 팀과의 게임이 아니었다. 바로 자신이 택한 파트너와 경쟁을 하여, 한 사람만 살아남는 잔인한 게임이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로 서로를 택한 바로 직후, 목숨을 두고 서로 경쟁을 해야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 것이다. 주어진 시간은 30분. 신뢰와 애정의 경중에 따라 사람들은 마지못해 구슬놀이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나 아니면 파트너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삶의 시간이 30분인 것이다.


지영은 새벽에게  30분의 시간을 게임 대신에 대화를 나누며 보내자고 제안한다.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 다른 사람들에게는 못했던 이야기들. 그렇게, 지영과 새벽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게임에 임하는 사람들에서 비켜나,  구석에 위치한 작은 계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지영은 그렇게 새벽에게 동생이 고아원에 있음을, 어머니는 북한에 남겨졌음을 알게된다. 상금으로 동생과 어머니를 모셔와 같이 사는 것이 꿈이라는  또한. 지영지독한 가정폭력에 부모를  잃었고,  와중에 살인자가 되었었다는 사실을 털어놓는다.


3분이 채 남지 않은 때, 지영은 새벽에게 구슬 게임을 제안한다. 게임 시작 전에, 서로의 이름을 알려준다. 그리고 지영은 구슬을 바닥에 떨어뜨리며 그 게임을 져 준다. '너 뭐하는 짓이야! 다시해!'라며 다그치는 새벽에게 지영은 말한다. '난 없어. 여기서 나갈 이유가. 넌 있지만, 난 없어.' 라고 말한다. 지영에게는 바깥세상에 기다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꿈도 없어진지 오래다. 지영은 눈물을 떨어뜨리는 새벽에게 '너는 꼭 살아서 나가. 엄마도 만나고, 동생도 찾고.'라고 말한다. 새벽은 출구로 향하고, 진행요원의 권총은 지영의 머리를 향한다. 눈물을 삼키며 걸어 나가는 새벽을 지영은 불러 세운다. 그리고 눈물과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고마워. 나랑 같이 해줘서.' 그것이 지영의 마지막 말이었다.


아마 이 장면에서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내 아들도, 그리고 나도. 드라마가 끝나고, 먹먹해진 내 머리에 떠오르는 상념이 하나 있었다. 나라면, 내가 저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인물과 가장 가까운 행동을 보일까. 파트너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질까? 만일 내가 상우라면, 다 진 상황에서 알리를 속여 살아남는 (그래서 알리를 죽음으로 모는) 상우의 행동처럼 할까? 아님, 여러 인물들처럼 게임에 진지하게 임해 이기려고 할까. 과연 지영처럼 파트너를 살리기 위해 나의 목숨을 내놓을 수가 있을까.. 자신이 없다.


분명한 상황은 하나 있다. 오후에 아들녀석을 학교에서 픽업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다시 오징어게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물었다. 만일 그 구슬게임에 너와 내가 파트너가 되어 참여하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들이 물었다. 그럼 아빠는 어떻게 할 건데? 응 그럼, 난 내가 희생할거야. 부모라면 누구나 할 대답이었다. 아들이 되물었다. 왜? 응 널 사랑하니까. 그리고 너에 비해 난 이미 오래 살았잖아. 넌 살날이 한참 남았고. 아들은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잠시 침묵이 흐른뒤, 아들녀석이 갑자기 학교에서 하는 오케스트라 이야길 꺼냈다. 집에 도착하면, 요즘 오케스트라에서 자기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곡을 보여줄 수 있다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녀석은 유투브에서 그 곡들을 찾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직접 연주해서 들려줄까?' '응? 응, 그럼 좋지~'


2년여 만에 바이올린을 꺼내어 튜닝을 하고 있는 아들 녀석


얼마만인가. 이 녀석이 집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지가. 그것도 내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자원해서. 학교에서는 학교에서 주는 바이올린으로 오케스트라 연주에 참여하고 있다. 집에 있는 바이올린은 케이스에서 한 2년 가량 잠을 자고 있었다. 그걸 꺼내 튜닝을 하고는, 두 곡을 연주해 주었다. 참 오랜만이다. 약간 녹슨 실력이지만, 오랜만에 이 녀석의 바이올린 연주를 들으니, 가슴이 따뜻해져왔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란 이런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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