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칵테일
책이 책장의 용량을 넘어선지 오래다. 그래서 정리하기로 했다. 2-3주 전부터 조금씩 헌책방에 내다 팔고 있다. 샬롯스빌 다운타운에는 헌책방이 4-5곳 있다. 그중에 한곳이 현금을 주고 헌책을 산다.
책은 파는게 아니다라고 생각해왔다. 대학때부터 책을 사는 취미가 생겼었다. 주로 시집과 소설책들이었다. 간혹 철학책, 문화비평책들도 끼어 있었다. 대학원에 입학할때 그책들 모두 국문학을 공부하던 형에게 주었다. 이젠 물리학만 공부하자란 심정도 있었다. 형이 소장하던 책들보다 훨씬 많은 분량의 책이었다. ㅋ
유학생활동안 책이 하나둘 쌓였다. 학위를 마치고 포스트 닥 시절을 시작할때, 다시 책들을 지인에게 주었다.
샬롯스빌에 내려온지 벌써 16년째다. 그동안 책은 쌓여갔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아이들 책들도 늘어났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들어가면 나와 접점이 되는 책들이 생기겠지하는 바램이 있었다. 그런데, 웬걸 그런 일이 생기기도 전에 아이들은 컴퓨터 속의 가상세계에 침잠했다. 성인이 되면 내가 소장한 책들을 읽으리란 바램을 버리기로 했다. 자신들이 구하고 싶으면 알아서 구하겠지. 결국엔 자식들도 타인이다. 자신들이 각자 인생을 알아서 일구어나간다.
책장앞에 서서, 무슨 책을 내다 팔까 생각을 하는데, 처음 손이 간 책들은 무라카미의 소설책들이었다. 포스트 닥 시절부터 쉽게 읽히는 영어 수준의 그 소설책들을 모두 사서 읽었었다. 가벼운 로멘틱 영화같은 소설들. 그런 영화를 보면, 볼때는 흥미롭다. 그러나 보고 나온 후엔, 얼마안있어 잊혀진다. 나에겐 무라카미의 소설은 그런 류였던 가보다. 그 책들을 보며, 책방 주인부부는 와~ 무라카미 전집이다~하며 좋아라 했었다.
오늘 두번째로 헌책방에 갔다. 이번엔 주로 모디아노 (Modiano)의 소설책들이었다. 매년, 노벨 문학상 발표가 나자마자, 수상자의 작품들을 섭렵하곤 했었다. 모디아노도 그 중에 한 사람이다. 유대계 프랑스 작가다. 무라카미 보다는 애잔한 감동이 좀 더 오래가는 작가다.
헌책을 판 돈을 청바지 뒷 주머니에 넣고, 근처 프랑스 바에 들렀다. Alley light 이란 곳이다. 이곳은 건물 밖에 간판이 없다.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알만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곳이다. 좁은 골목 안에 이 바만 있어서, 거리에서는 이런 곳이 있는지 모른체 지나치게 된다.
모디아노 책을 팔았으니, 'French 75'라는 칵테일을 시켰다. 무라카미 책을 팔았을때는, 아시안 퓨전 바에 갔었다. 칵테일은 Suntory Sour.
이렇게 꼭 소장하고 싶은 책들을 빼고는, 다 처분하려 한다. 처분할때마다, 칵테일 한잔 씩. 아마 한국 책이나, 한국관련 책들만 남지 않을까. 훗날, 아이들 중 하나가 지금 버리는 책들을 읽고, 나에게 그에 대해 말을 걸어오면, 난 칵테일 이야길 해주어야겠다.
그런 날이 올까?
* 술을 한잔 할때마다 느끼는 게 하나 있다. 난 술꾼이 아니라는 것. 일주일에 칵테일 한잔이 나의 최대치다.
** 너무 많이 먹었다. 그것도 5시 이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