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란 호칭
나의 박사과정 학생이었던 중국학생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Hi, Seunghun (하이 승헌)’으로 시작하는 이메일. (승헌이 나의 본명이다.) 그는 작년 (2021년) 가을에 학위를 마쳤었다. 그리고 뉴욕시의 외곽인 롱 아일랜드에 소재한 한 연구소에 포스트 닥터 자리를 구했었다. 그런데 미국 정부로부터 일을 할 수 있는 비자가 나오지 않아 여지껏 이 소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 그 비자가 드디어 나왔다는 소식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3-4일 후에 떠난다고. ’하이 승헌’으로 시작하며. 그의 나이는 20대 말이다. 그러니까, 한국으로 따지면 나보다 무려 30살이 적은 그가 반말을 하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박사논문 지도교수에게. ㅋㅋ
이 대학으로 부임한지 17년이 지났다. 그동안 여러명 학생들이 박사과정에 들어왔었다. 모두들 동양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한국, 중국, 스리랑카, 인도. 그리고 일본에서 온 포스트 닥터들도 몇 있었다.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오면, 내가 요청하는 것 중에 하나는 바로 나를 그냥 이름으로 불러달라는 것이다. 동양에서 온 학생들이어서인지, 처음엔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난 바로 그냥 이름, 승헌,으로 부르라고 요청한다. 이곳은 미국이다.
내가 미국에 처음 와서 받은 문화충격 중에 하나가 이 호칭문제였다. 교수들과 학생과의 관계였다. 1989년에 왔을때, 복도에서 교수님을 마주치면, 난 한국에서 그랬던 것 처럼,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했었다. 그러자, 그 중 한 교수님이 손을 내저으며, 나에게 그러지 말라고 부탁을 했었다. 내 영어가 짧은지를 아셨는지, 아주 천천히. 내가 듣던 양자역학을 가르치시던, 미소가 항상 얼굴에 담긴 마음씨 좋은 노교수님이셨다. 문화차이때문인지는 알겠지만, 여긴 미국이니 그러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었다. 고개를 굽히지 말고, 그냥 ‘하이’하라고. 그때 전공과목을 3개를 들었었는데, 다른 2과목은 들어가지도 않고 숙제만 해냈었다. 이미 한국에서 들었던 과목들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양자역학만은 빠지지 않고 들어가, 맨 앞줄에 앉아 경청을 했었다. 아니, 경청을 하려 노력했었다. 영어가 잘 들리지 않아 그 교수님이 칠판에 적는 수식을 노트에 적으며 그 수식들로 무슨 말을 하시는지를 대충 짐작을 하며 수업을 따라갔었다. 명강의여서, 1년을 꼬박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며 그 과목을 주로 공부하였던 기억이다.
다시 호칭 문제로 돌아오자. 그후 박사논문 지도교수를 정할 때 쯤에는 나도 미국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교수를 복도에서 만나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눈이 마주치면, 그저 하이 하고 지나갔다. 나의 지도교수는 나보다 3살이 많은 젊은 교수였다. 게다가 성격이 매우 좋은 덴마크 출신 교수였다. 당연히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하이 승헌.’ ‘하이 콜린.’ 30년이 더 지난 지금 그는 나의 친한 친구가 되었다. ㅋ
박사학위를 마치고, 미국 표준연구소에 일자리를 구해 갔을때, 그 건물엔 나이가 60대 말부터 20대 초반까지의 사람들이 같이 일을 하였다.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원들도 있었고, 고등학교만 졸업한 기술자들도 있었다. 물론, 모두가 서로를 그냥 이름으로 호칭하며 소통을 하였다. 내가 속했던 연구원 그룹의 총 리더는 60대 초반의 조상이 아일랜드 출신이었던 미국인이었는데, 내가 그를 부를때도 그저 그의 이름을 불렀었다. 그도 나의 이름을 불렀고. 나이와 학력을 불문하고 누구나 서로의 이름을 불렀다. 내가 도움이 많이 필요했던 기술자들의 연령분포 또한 넓었는데, 모두 이름을 부르며 소통을 하였었다. 그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과학연구를 극대화시키자는 공동목적을 위해 서로 도우며 일하는 과정에서 그러한 대등한 호칭이 시너지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최적이 아닐까.
이런 미국문화 속에서 오래 살아서 일까. 누가 날 교수님 혹은 선생님이라 부르면, 닭살이 오른다. 물론, 학부생들이 그러면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대학원생 혹은 그 이상이면 그러지말라고 부탁을 한다. 교수라는 직책이, 박사라는 학위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저 공부를 꾸준히 할 여건이 되고, 다행히 엉덩이가 무거워 의자에 오래 앉아있을 수 있으면 누구나 될 수 있다고 난 믿는다. 먼저 태어나서 먼저 전공공부를 하였으니, 전공지식은 더 많겠지만, 삶의 지혜가 더 많은 것은 아니다. 지혜의 면에서는 대등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높임의 호칭으로 불리면 어색하다.
이곳 미국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때는 서로가 이름으로 부른다. 예외가 있다. 한국사람들은 다르다. 한국출신 교수들과 학생들이 있는데, 이들 사이에서는 모두 성과 직책으로 부른다. 난 불편하다. 그래서, 한국출신 교수, 일반인, 학생들로 꾸려진 조그만 모임이 생겼을때, 내가 ‘이름’님으로 호칭을 통일하자고 제안을 하고 몇번 시도를 했으나, 지속되지 않았다. 다시 직책으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문화의 관성은 뿌리깊다. 그리고, 동양의 호칭 문화가 좋은 면도 있다. 군사부일체라는 격언처럼, 선생과 나이가 많은 분들에 대한 깍듯한 존경심은 좋은 문화다.
그러나, 난 한국사회에서도 선생님이란 호칭을 잘 쓰지 않는다. 나이가 드신 분들은 대부분 그냥 직책을 호칭으로 쓴다. 나에겐 선생님은 나의 인생의 길잡이가 되어주시는 분들을 위해 아끼는 호칭이다. 지금 난, 나이드신 분들 중에서 한 분에게만 선생님의 호칭을 쓴다. 옛날, 김대중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시기 전에, 극우언론들이 김 대통령의 추종자들을 비웃을때, 그들은 디제이를 선상님이라고 부른다고 조롱을 하였었다. 광신도들이라며. 왜 그들은 김대중대통령을 선상님이라고 불렀을까. 그건, 그분의 삶이 자신들의 인생의 깊은 영감(inspiration)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대통령이 되지 않으셨으면, 나도 김대중선생님으로 불렀을 것이다. 나의 선생님이란 의미가 너무 엄격한지도 모르겠다.
한 지인은 정반대의 방법을 쓴다. 연장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선생님이란 호칭을 쓴다. 학벌, 재산, 직업을 막론하고. 그러니까, 조선 말 신분타파를 위해 모든 사람들을 양반화하자는 생각과 비슷하다. 어쩌면 내 방식보다 더 급진적이다.
그 중국학생이 이곳을 떠나기 전에 점심식사나 같이 하자고 했다. 그런데, 나에게 감기가 도져서, 가능할지 모르겠다. 줌으로라도 만남을 가져야겠다. 그와의 관계는 평생 갈 것이다. 나의 바램은 친구처럼. 그도 나를 친구로 여기길 바랄 뿐이다. 그럴지는 내가 어찌 알겠는가. 확실한 건 하나, 언제나 우린 서로의 이름을 호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