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잘 사는 사회
* 표지사진: 책방 앞에서 (왼쪽부터) 작은 형, 나, 누나. 난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붕어빵이다. (1960대 중반 쯤에 찍은 사진)
난, 아주 어렸을 적 사진이 거의 없다. 돌 사진은 고사하고,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 따위도 없다. 1960년 중후반 때다. 사진기가 매우 귀했던 때다. 물론, 그 당시 우리집에 사진기가 있을리가 만무했다. 몇 년이 더 흐른 후, 아마 70년대 초반 한국이 급격한 산업화에 접어들었던 때와 맞추어, 우리 가족의 사진들이 하나 둘 등장한다.
그런데, 어제 영희 이모에 대한 글을 보고, 누나가 60년대(!) 중반의 옛날 사진 몇장을 보내왔다. 아주 오래전에 본 기억이 떠오르는 사진들이었다. 너무 오래되어 존재조차 잊었던 사진들.. 그 사진들이 불쑥 내 휴대폰에 나타났다.
표지사진 속 나의 나이는 대략 만으로 3-4살 정도이지 싶다. 누나는 초등학교 1-2학년 쯤 되지 않았을까. 사진 속 삼남매는 고무신을 신고 있다. 누나는 뾰족 고무신, 작은 형과 난 흰 고무신. 뙤약볕이 따가웠는지, 누나와 작은 형은 인상을 찌뿌리고 있다. 난, 천하태평이다. 볼은 젖살이 다 빠지지 않은 듯 붕어빵. ㅋㅋ
사실 난 이 사진을 찍은 기억이 없다. 너무 어렸기 때문이리라. 그 책방이 나의 고향집 앞 신작로가 번화가로 가는 도로와 만나는 코너에 위치했을 거라는 뿌연 기억뿐이다. 누나의 기억으로는, 책방이모가 우리에게 언제나 책방에 놀러와 책도 읽으라하며 우리들에게 참 잘해주었다고 했다. 이 사진을 찍은 날도 그런 어느 하루 오후였을 것이다. 우리를 책방으로 데리고 가서, 책 구경을 시킨 후에, 책방 앞에 서라고 하고, 사진을 찍어 주셨던 듯하다.
책방 이모가 이 사진을 찍어주시지 않았다면, 나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1970년대에서 멈추었으리라.
책방 이모가 찍어준 또 하나의 사진은, 고향집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중앙에 작은형이 서있고, 큰형이 날 보듬고 있다. 그 당시 큰형은 아마 고등학생이었을 것이다. 다른 세 아이들은 동네 또래 아이였는데, 누구였는지 기억을 한참 더듬어야 할 것 같다. 큰형은 젊었을 적, 나훈아를 좀 닮았었다. 내가 좀 더 컸을때, 잠깐 나를 남진같은 가수로 만들겠다고, 나에게 남진의 '저 푸른 초원위에'를 가르쳐주었었다. ㅋㅋ 그 영향 탓이었는지, 초등학교 5학년때, 반에서 앞 교단으로 나가, 반 전체와 담임 선생님을 상대로 그 노래를 몸 동작과 함께 불러제낀 기억이 있다. 복도 창문에는 다른 반/학년 학생들이 달라붙어 들었던 기억이다. 노래 끝에, 우뢰와 같은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는... 각색된 추억이... ㅋㅋ 그당시, 6학년이던 작은형은 전체 학생회 부회장이었는데, 별명이 짱구였다. 난, '짱구동생'으로 불려젔었다. 그 노래사건을 작은형이 창피해 했었는지, 자랑스러워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꾸중은 듣지 않았었다. 아마, 작은형 성격상, 그저 피식 웃었던 것 같다. ㅋㅋ
불행하게도 책방이모는 몇년전에 돌아가셨다. 말년에 치매에 걸리셔서, 요양원에 계셨는데, 어머니가 찾아갔을때, 어머니는 알아보셨다고 했다. 두분이서 서로 손을 붙잡고 우셨다고 어머니가 나에게 말해주셨었다.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인생 추억 사진을 남겨주신 책방이모에게 감사드린다. 나의 어린시절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이모들에게 둘러싸여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