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릴레오는 참회를 하지 않았었야하나?
내가 뽑은 장면 셋: 씬 13
씬 13은 가구가 별로 없는 큰방을 비추며 시작한다. 현관으로 통하는 작은 대기실에는 종교재판소에서 파견된 수도승 한사람이 감시자로 있다. 갈릴레오는 커다란 탁자위에 놓여있는 굽혀진 나무로 만든 레일 (rail) 위에 구슬을 굴리며 물리실험에 열중하고 있다. 수도승이 갈릴레오의 딸 버지니아에게 갈릴레오가 혹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느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버지니아는 부인을 한다. 갈릴레오가 쓰는 어떠한 글도 출판을 할 수 없도록, 수도승이 수거를 하여 교회에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 수도승이 문을 여니, 안드레아가 문밖에 서 있었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오가 베니스 지역의 파두아대학에 있을때 가정부의 아들이었다. 아주 어렸을때부터 갈릴레오 집을 드나들며 그에게 과학에 대한 공짜 개인교습을 받았었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오를 학자로서 거의 절대적으로 신봉하였다. 안드레아에게 갈릴레오는 우상에 가까웠으리라. 갈릴레오가 참회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안드레아는 갈릴레오가 진실을 지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씬 12에서, 갈릴레오가 교회의 압력에 굴복하여 지동설을 부정하였을때, 안드레아는 머리를 움켜쥐고 주저앉는다. 갈릴레오가 방에 들어오자, 괴로움에 바닥에 쓰러져 운다. 지인들의 부축에 겨우 일어나 방을 나가던 그는 갈릴레오에게 말한다, ‘영웅이 나오지 않는 땅은 불행해요. (Unhappy is the land that breeds no hero).’ 그러자 갈릴레오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아니, 불행한 건 영웅이 필요한 땅이야. (Unhappy is the land that needs a hero.)’ 그후, 안드레아는 갈릴레오의 참회를 가장 호되게 비판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안드레아가 실로 오랜만에 방문을 한 것이다.
안드레아는 밀란에서 수압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다. 안드레아는 그 당시 가난한 계층의 자식들이 새로운 과학에 기반을 둔 고등교육을 통해 중산층이 된 사람들을 대변한다. 네덜란드로 일을 하러 가는데, 네덜란드에 사는 지인이 갈릴레오의 건강이 어떠한지를 알아보라는 부탁을 받고 갈릴레오를 방문한 것이다. 두사람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다. 안드레아는 그 자리가 불편하다. 갈릴레오의 건강을 확인한 안드레아는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고 떠나려한다. 그런 그에게 갈릴레오는 말을 툭 던진다, ‘“담화록” 집필을 끝냈네. (I completed the “DIscorsi.)”’ 안드레아는 화들짝놀라며 되묻는다, ‘어떻게?’ 그러자 갈릴레오는 교회 몰래 밤에 썼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원고를 자네가 가지고 가고 싶다면, 수반되는 모든 위험을 자네가 감수해야 할걸세.’라고 말한다. 그 원고는 1638년에 네덜란드로 밀반입되어 발간된 책 <Discourses and Mathematical Demonstrations Relating to Two New Sciences> (줄여서, <두가지 새로운 과학 (Two New Sciences)>)이다.
안드레아는 그 원고를 자신의 외투 속에 감추며, 숨죽인 그러나 기쁨에 찬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는 “당신의 손은 더럽혀졌소!”라고 말했고, 당신은 “빈 손보다는 더럽혀진 손이 낫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갈릴레오가 5년 전에 지동설을 부정하고 참회를 했을때, 자신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갈릴레오를 비판한 것에 대해 부끄럽다고 말한다. 더나아가 갈릴레오 당신이 참회를 한 의도는 바로 과학연구를 계속하려했지요. 당신만이 쓸 수 있는 책을 쓰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 말입니다라고 말한다.
갈릴레오는 안드레아의 칭송을 거부한다. ‘그들(교회)이 이겼었네. 그리고 오직 한 사람만이 수해할 수 있는 과학 연구란 없네.’ ‘난 육체적 고통이 두려워 나의 주장을 취소한 것 뿐이야.’ ‘과학자로서 나는 그때 다시없는 기회를 가지고 있었네. 그때 천문학은 시장바닥에 나타났었네. 바로 그때, 만일 한 사람이 싸웠다면,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수도 있었네.’ 그리고 후회에 찬 말을 한다. ‘나는 나의 직업(과학)을 배신하였네. 내가 한 행위를 한 어느 누구도 과학자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가 없네.’
이 장면에서 갈릴레오가 안드레아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들은 아마 브레히트가 하고 싶었던 말일 것이다. 갈릴레오가 1633년에 교회의 압박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주장인 지동설을 부정한 것은 인류역사에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안드레아의 의견처럼, 갈릴레오가 나중에 쓴 뛰어난 물리학책 <두가지 새로운 과학> 때문에, 갈릴레오가 자기부정을 한 것이, 이후의 과학발전을 보았을 때, 현명한 결정이었을까. 아니면, 갈릴레오의 입을 빌린 브레히트의 의견처럼, 그 물리학책은 갈릴레오가 쓰지 않았어도, 다른 후학들이 썼을 것이고, 1633년 당시는 갈릴레오가 만든 고성능의 망원경으로 인해 일반 사람들도 지동설이 맞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갈릴레오가 교회와 용감하게 싸웠다면 이길 수도 있었을까. 그래서 교회의 세속적 영향력이 좀 더 급격하게 몰락하지 않았을까.
어느 주장이 더 타당할 것인지를 살펴보자. 먼저, 갈릴레오가 마지막으로 쓴 그 물리학책 <두가지 새로운 과학>은 물체의 운동에 관한 갈릴레오의 연구를 집대성한 책이었다. 무게가 다른 물체들이 높은 곳에서 떨어질때 어떻게 떨어지나, 시계 추가 좌우로 왔다갔다할때 시계추의 무게에 상관이 없이 똑같은 시간이 걸린다는 등의 물체 운동에 관한 책이다. 갈릴레오가 쓰지 않았다면 다른 과학자가 쓰지 못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 문제들은 그 당시를 즈음하여 유럽 여러곳에서 특히 영국에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다.
20세기 이전에 가장 뛰어난 과학연구업적은 1687년 아이작 뉴튼이 펴낸 그 유명한 책 <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이다. 이 책에서 뉴튼은 물체 운동의 일반적 법칙들과 중력에 대한 보편적 법칙을 제시하였다. 지상의 세계와 천상의 세계가 똑같이 중력이라는 보편적 법칙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입증하였던 것이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땅으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현상과 지구와 같은 행성들이 태양같은 별 주위를 도는 현상이 중력이라는 똑같은 보편적 법칙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의 구분의 완벽한 몰락을 의미했다. 그리고 지구는 우주의 미미한 허공에서 태양의 중력으로 떠 있는 행성에 불과함을 입증했다. 우연하게도, 뉴튼은 갈릴레오가 죽은 1642년에 태어났다. 갈릴레오가 마지막 책을 쓰지 않았다면, 뉴튼이 자신의 연구를 못했을까? 아니다. 갈릴레오의 마지막 책과는 상관이 없이, 뉴튼은 자신의 중력이론을 완성했다. 코페르니쿠스가 16세기 중반에 시작한 과학혁명의 완결이었다.
언제 로마교회는 갈릴레오재판에 대한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를 했나? 갈릴레오가 죽은지 180년이 지난 1822년에 와서야 주교회는 지동설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21세기인 2000년에 와서야 교황은 갈리레오 재판의 부당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다. 무려 400년 가량의 기나긴 세월이 걸린 것이다. 갈릴레오가 그때 자신이 망원경을 통해 입증한 과학적 진실인 지동설을 굽히지 않았다면 그렇게 기나긴 세월이 걸리지는 않았지 않았을까.
브레히트는 진실의 힘을 얼마나 믿었을까? 브레히트는 이 영화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마지막 씬에서 안드레아가 갈릴레오의 책을 소지한채 국경을 넘으려한다. 그때 일군의 어린아이들이 한 집에 사는 노파가 마녀라고 비난하는 노래를 부른다. 안드레아는 한 소년에게 그 노파가 진짜 마녀인지 아닌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라고 그 소년을 그 집 담장 위로 들어서 노파가 마녀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소년은 다시 그 노파는 마녀라고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에게 합류를 한다. 그러니까, 브레히트는 진실을 보고도 부인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는 슬픈 현실을 보여주며 이 영화를 마무리한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상식인으로서 진실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이것이 브레히트가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하는 메세지 중에 하나가 아닐까. 갈릴레오의 물리학책을 위험을 무릅쓰고 출판을 위해 밀반입하는 안드레아 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