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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쉬타인 (1931) 2

장면 2: 나랑 같이 놀래요?

by 요기남호


내가 선택한 장면 2: 강가에서 피조물은 어린 여자아이 마리아를 만난다


생명을 얻은 후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 피조물은 프랑켄쉬타인 박사를 비롯한 조수에게 버림과 학대를 받는다. 피조물은 조수와 왈드만 교수를 살해하고 폐가인 실험실을 도망친다. 여기저기를 헤메던 피조물은 강가에서 혼자 놀고 있던 어린 여자아이 마리아를 만난다. 마리아는 피조물을 보자마자 일어나 꽃을 들고 피조물에게 다가간다. 함박웃음를 띄며, '넌 누구니? 내 이름은 마리아야'라고 자신을 소개한다.그리고 같이 놀자고 피조물에게 청하며, 피조물의 손을 잡고 강가로 이끈다. 그리고는 피조물에게 코스모스 꽃 한송이를 준다. 그 꽃을 받아든 피조물은 꽃을 코끝에 가져가 냄새를 맡고 환하게 미소를 짖는다. 영화에서 피조물이 유일하게 웃는 장면이다. 그리고 피조물과 어린아이는 강가에 앉아 같이 논다. 마리아는 옆에 있던 꽃을 한움큼 뜯어 피조물에게 준다. 그리고는 꽃송이를 강에 던져 배처럼 둥둥 떠가게하는 놀이를 제안한다. 피조물은 마리아를 따라 자신이 가지고 있던 꽃송이들을 하나씩 강에 던진다. 그리고 기쁨에 찬 웃음을 짓는다. 꽃을 다 던진 후, 빈 손이 되어버린 자신의 손을 잠시 바라보던 피조물은 미소를 띈 채로 마리아를 들어 강에 던진다. 마리아가 '네가 날 해치고 있어! 하지마!'라고 외치지만 소용이 없다. 피조물은 말을 못 알아듣는다. 마리아를 해질 마음은 없었다. 마리아가 꽃처럼 물에 뜰줄 알았다. 마리아가 강에 던져진 후에 꽃과는 다르게 떠오르지 않고 가라앉자, 피조물은 놀라서 땅을 수차례 친후에 놀란 표정으로 황급히 그 장소에서 도망친다.


이 여자아이와의 놀이장면은 원작소설에는 없다. 소설에서는 프랑켄쉬타인 박사가 자신의 집에서 피조물을 만든 직후에 피조물의 흉칙한 외모에 도망을 친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후에 친구와 다시 집에 돌아오는데, 피조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 그 피조물은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때문에 자신을 두려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한 가난한 가족이 사는 작은 집에 딸린 버려진 구조물에 숨어 지낸다. 그러다가 그 가족을 좋아하게 되어, 그 사람들 몰래 장작도 모아주고, 눈이 오면 눈도 치워주며 은밀하게 도와준다. 그렇게 몇달을 그 가족의 일상을 엿들으며 말과 글을 독학으로 배운 피조물은 유창하게 대화를 할 수가 있게 된다. 그리고 그 가족에게 더욱 애착을 느낀 피조물은 어느날 그 가족과 친구를 맺고 싶어서 그 집에 들어간다. 그때는 앞을 보지 못하는 아버지만이 집에 있었다. 둘이서 좋은 분위기에서 담화를 나누었으나, 다른 가족들이 돌아오고 그들은 피조물을 매우 두려워한다. 장님의 아들은 피조물을 공격하고 그리고 피조물은 그 집에서 도망나온다. 그 다음날 그 가족은 피조물이 돌아올까봐 그 집을 떠난다. 그것을 발견한 피조물은 분개를 하고 인간에게 자신이 친구로서 받아들여지는 것을 포기한다.


영화에서의 여자아이 마리아와 소설에서의 장님의 행동은 유사하다. 마음이 순수한 여자아이는 피조물의 외모에 무서워하지 않았고, 장님은 외모를 볼 수가 없었다. 그들은 피조물을 따뜻하게 대했고, 피조물도 그들을 따뜻하게 대했다. 무지에 의해 의도치 않게 마리아를 익사하게 했지만. 인간이 그 피조물의 외모로 인한 선입견을 넘어설 수만 있다면, 인간과 그 피조물의 관계는 친구 사이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영화에서 마리아를 제외한 모든 마을사람들과 소설에서 장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 피조물은 처음부터 괴물이었다. 유일한 이유는 흉칙한 용모였다. 너무 흉칙하게 보인다는 이유. 그 이유하나로 말미암아 마을사람들에게 그 피조물은 괴물로 규정된 것이다. 그렇게 규정이 된 후, 피조물은 인간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특히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복수를 하러 그를 찾아 나선다. 피조물은 의식적으로 인간들에게 괴물처럼 행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만일, 대다수의 인간들이 피조물을 마리아와 장인처럼 잘 대해주었다면 피조물은 괴물이 안되지 않았을까? 그 피조물이 괴물이 된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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