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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켄슈타인 (1931) 3

누구의 잘못/책임인가?

by 요기남호

장면 3: 불타는 풍차구조물


헨리 프랑켄슈타인박사를 포함한 마을사람들은 그 괴물을 쫓는다. 그 와중에 괴물은 헨리와 일대일로 싸워 기절을 시킨후 그를 들처매고 풍차구조물의 맨 꼭대기로 올라간다. 마을사람들은 헨리의 비명을 듣고 풍차구조물에 몰려온다. 횃불을 들고. 횃불을 두려워하는 괴물은 흥분을 하고, 깨어난 헨리는 도망을 가려하나, 괴물에 들켜 싸우기 시작한다. 괴물은 헨리를 들어 밖으로 던지는데, 다행히 헨리는 풍차에 걸려 크게 다치지 않고 땅에 떨어진다. 풍차구조물에 괴물만 남아있자, 마을사람들은 횃불로 불을 지른다. 그렇게 괴물은 불에 타 죽는다. 영화는 헨리가 아버지의 저택에서 아늑한 침대에 누워서 회복을 하는 장면을 보여주며 막을 내린다. 그러니까, 영화는 할리우드식의 해피엔딩이다. 괴물이 실험실을 도망나온 후에 죽은 사람은 어린아이 마리아 뿐이다. 그리고 괴물은 그 살인을 범한 죄값을 치룬다. 불에 타 죽는 것으로. 나쁜 괴물은 죽고, 착한 우리는 행복하게 살게 된다는 해피엔딩.


과연, 누가 괴물일까. 마을사람들에게 괴물이라 규정된 피조물이 괴물인가, 아니면 흉칙한 외모를 보고 피조물을 괴물이라고 규정한 마을사람들이 괴물인가.


원작 소설에서의 엔딩은 매우 다르다. 해피엔딩이 아니다. 영화에서와는 다르게, 소설에서의 피조물은 똑똑하고 다른 사람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가 된다. 친구가 되고 싶었던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피조물은 자신을 만든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찾아 나선다. 빅터가 자신을 도와줄 책임이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 여정에서, 우연히 강에 빠진 여자어린아이를 보고 구해준다. 영화에서 무지에 의해 마리아를 강에 던진 것과는 반대상황이다. 그러나, 결과는 같다. 그 여자아이의 아버지는 피조물이 자신들을 해할 것이라고 오해를 하고, 총을 쏘아 피조물이 어깨를 다치게 한다. 피조물의 선행이 총알로 되돌아온 것이다. 그후, 피조물은 모든 인간에 대한 복수를 맹세한다.


소설에서 피조물이 빅터에게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다. 자신과 같은 여자 피조물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여자와 남미의 원시림으로 들어가 인간사회에서 사라지겠다고 약속한다. 자신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는 주장과 함께. 만일 빅터가 그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빅터 주위사람들을 다 죽일 것이라고 협박한다. 그래서 빅터는 그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 피조물을 만든다고 해도, 그 여자 피조물이 이 피조물을 싫어할 수도 있고, 또 좋아한다면 둘이서 자손들을 낳아서 인류사회를 오염시킬 수 있다는 염려때문에, 빅터는 여자 피조물을 만들지 않기로 결정한다. 그러자, 피조물은 빅터의 친구와 가족들을 하나 둘 살인한다. 빅터의 결혼식에 나타나, 신부인 엘리자베스까지. 빅터는 복수를 하러 피조물을 추격한다. 그 추격은 유럽본토를 거쳐 북극해를 통과하며 북극을 향한다. 빅터가 피조물에 가까운 곳까지 추격을 했을때, 불행하게도, 빅터는 극도의 피로에 쓰러져, 다시 피조물을 놓친다. 정신을 잃은 빅터를 지나가던 배의 선원들이 구조를 하는데, 곧 빅터는 죽는다. 빅터가 죽은 후, 피조물은 빅터의 시신에 와 통곡을 한다. 그동안의 자신의 살인행각이 피조물을 비참한 상태에 빠뜨린다. 그리고 그 배의 선장에게 피조물은 다시는 아무도 자신의 존재를 알수 없도록 자신의 목숨을 끊을 거라고 말하며 커다란 얼음조각위에 타고 서서히 사라진다. 그후, 피조물은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소설에서도 피조물은 결국 괴물이 되었다. 그로말미암아 여러명의 죄없는 인간들이 죽어갔다. 그 죽음들은 피할 수 있었을까. 만일, 빅터가 피조물의 청을 들어주어, 여자 피조물을 만들었다면 어떠하였을까. 피조물이 약속했듯이, 두 피조물이 남미 원시림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 수는 없었을까. 둘이서 자손을 낳는다 하더라도, 인류사회가 조화롭게 대응을 할 수는 없었을까.


피조물이 결국 괴물이 된 것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일차적인 책임은 그 피조물을 만든 프랑켄슈타인 박사에게 있지 않을까. 그런면에서 헤피엔딩인 영화보다는 빅터가 죽는 소설이 더 권선징악에 맞지 않을까. 과학연구결과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그 연구를 한 과학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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