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학에서 나치의학으로 1
다큐멘터리 <In the Shadow of the Reich: Nazi Medicine> (존 밀차치크 (John Michalczyk) 감독, 1997) 1
고전음악과 문학 그리고 철학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배출한 찬란한 독일문명에서, 어떻게 반문명적인 인종주의로 무장된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수가 있었을까.
혹자는 1차 세계대전 후의 독일의 매우 어려웠던 경제상황을 이유로 든다. 1차 세계대전이후 서방연합국들은, 특히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에게 무리한 전쟁배상을 요구하여, 독일경제가 극심하게 어려워졌고, 그로인해 정치적포퓰리즘이 지지를 얻었고, 그 결과로 1933년 인종주의로 무장된 히틀러가 정권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경제적인 이유가 전부였을까 아니면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었을까?
나치당에 속했던 사람들을 직업별로 분류를 해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교사라는 직업군에서는 나치당원의 비율이 20퍼센트였는데, 의사집단에서는 무려 45퍼센트가 나치당원이었다. 그 당시 의사중에 유대인들이 제법 많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비유대인 의사들의 나치당원 비율은 더욱 높았을 것이다. 왜, 다른 직업군에 비해, 의사라는 직업군에 나치당원의 비율이 매우 높았을까?
존 밀차치크 (John Michalczyk) 감독이 미국공영방송을 위해 1997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In the Shadow of the Reich: Nazi Medicine>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시도한다. 이 다큐는 독일 의학계가 어떻게 나치즘과 결합하여 비윤리적인 궤도를 한단계 한단계 거치며 결국 대량인종학살을 감행하게 되었는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악은 처음에는 무해한 듯 보이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연계에서의 적자생존이라는 진화론이 나온 후에, 그 진화론을 인간사회에 적용하는 과학자들이 19세기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중에 극단적인 인물은 독일의학교수였던 Robby Kossmann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모든 동물사회에서는 유전적으로 뛰어난 자질을 타고난 개개동물들의 자손들이 번성하기 위한 공간을 위해, 자질을 덜 타고난 개개동물들은 파멸되는데, 똑같은 일이 인간의 국가에서도 일어나, 좀더 완벽한 상태로 발전해야한다. 덜 뛰어난 사람들을 희생하고 더 뛰어난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이해에 부합한다.’
19세기 말에 만연된 사회진화론 (Social Darwinism)은 20세기 초 독일과 미국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의학을 중심으로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하였다. 독일에서 의사로 활동하던 프리츠 렌즈 (Fritz Lenz)는 인종적 차이 (racial inequality)라는 개념을 공식화하였다. 그의 견해는 현대 인류의 여러 다른 종족들이 전혀 다른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는 다원발생설 (polygenism)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이 견해가 인종우생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 인종우생학자들은 인류가 한 종(speices)이 아니고 여러 다른 종(species)이라고 보았다. 최상급 종이 유럽인이고, 최하급 종이 아프리카인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이 히틀러나 일본제국주의 인종주의에 과학적 토대를 제공하였다. 같은 종에 속하는 그러나 다른 인종의 인간을 죽이는 행위가, 종이 전혀 다른 열등한 종에 속하는 동물을 죽이는 행위가 되어 죄책감을 없애는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였던 것이다.
이 다원발생설 (polygenism)은 과학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현대유전학은 지구상의 모든 인간들은 똑같은 조상으로부터 나왔다는 단일기원설(monogenesis)이 과학적 사실임을 밝혔다. 20세기말의 현대의학은 모든 현대인은 유전자의 99.9%가 동일한 유전자를 가진 같은 종에 속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미 18세기에 진화론의 선구자인 찰스 다윈도 인류의 단일기원설, 즉 현대 인류는 모두 아프리카에서 기원하였다고 주장했었다. 다윈과 인종우생학자들 중에, 어느 주장이 과학적 사실에 가까운지는, 불행하게도 그들이 살던 19세기와 20세기 초에는 과학적으로 밝힐 수가 없었다. 이 질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20세기 후반에 발전된 유전자연구를 통해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전체 유전자를 보면, 인간들의 유전자의 천분의 일 정도 (0.1%)가 다른데, 그 다른 부분은 오랜 세월 동안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가면서 아주 조금씩 변하여 달라진 부분이다. 이것을 유전적 변이(generic mutation)라 한다. 이 다른 부분은 외피적인 인간의 특성을 결정한다. 예를 들면, 피부색, 머리카락색깔, 눈동자색깔 등을 결정한다. 이러한 변이는, 계절, 음식, 문화 등의 차이에 의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생한다. 이것을 유전자 표지(generic marker)라 한다. 여러 지역의 많은 사람들의 유전자 표지가 어떻게 변해 갔는지를 따라가면, 인류가 어디에서 출발했고, 어느 경로로 퍼져 나갔는지를 알 수가 있다.
대표적인 유전자 표지(generic marker)는 미토콘드리아의 DNA (mitochondrial DNA, 줄여서 mtDNA)다. mtDNA는 우리의 DNA에서 0.001%보다 적은 부분이다. 우리 몸속의 세포 속의 대부분의 유전자들은 양쪽 부모의 유전자가 합쳐져서 만들어진다. 이에 반해 mtDNA는 어머니에게서만 전달된다. 따라서, 이 mtDNA가 어떻게 변이되어 왔는지를 따라가면, 어머니계통으로 우리 조상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하였는지를 알 수가 있다. 이 작업을 1980년대에 알랜 윌슨(Allan Wilson)이 처음으로 하였다. 그와 그의 연구팀, 그리고 그 이후의 대다수 다른 유전학자들의 공통된 결론은, 모든 현대 인류의 조상은 같고, 그 조상은 대략 6만년 전 쯤에 아프리카에서 나온 소규모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후손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유라시아를 정복해갔고, 한 부류는 유럽으로, 다른 부류는 더욱 동쪽인 아시아, 그리고 시베리아를 거쳐 아메리카로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피부색이 다르고, 외형이 다르다 해도, 6만년 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모두의 출발점은 동일했다. 인종우생학자들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틀린 주장이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사이비 과학이었던 인종우생학은 이차대전을 통과하며 유럽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을 가져왔고 동양에서는 자신들을 동양의 유일한 서양인이라고 여겼던 일본제국의 731부대에서의 생체실험이라는 흉칙한 괴물이 되었다.
어떤 내면화 단계를 거치며 인종우생학은 유대인 대학살과 731부대의 생체실험으로 발전했을까. 환자에게 어떠한 해(harm)도 절대 끼쳐서는 안된다는 히포크라테스서약에 정반대되는 끔찍한 일을 나치 의사들과 731부대의 일제 의사들은 어떻게 죄의식도 없이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