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문화와 K-사상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이다.
4주 동안 한국에 체류하였다. 이번 방문 목적은 백낙청 선생님을 인터뷰하는 것이었다.
물리학자가 왜 인문학자이신 백낙청선생님께 인터뷰를 청하게 되었는지 궁금해 하실 분들이 있을게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한국학 학자들 몇 사람이 박정희 유신 독재 시절에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였던 지식인들 중에서 대표적인 여덟 분에 대한 글과 인터뷰를 모아서 영어로 책을 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책 가칭 제목은 <Intellectuals in Dark Times: The Task of Criticism in Authoritarian Korea> 이다. 백낙청 선생님도 그 여덟분 중에 한분이다.
몇달전, 그 한국학 학자들 중에 한사람이 나에게 백낙청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맡아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원래 그 인터뷰를 맡았던 한국학자가 있었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나에게 대타로 나서달라는 부탁이었다. 난, 바로 하겠다고 했다. 백낙청 선생님은 내가 워낙 존경해온 분이고, 그분의 책도 제법 읽어왔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막상 인터뷰에서 어떤 질문들을 할까를 생각하자마자, 아이고 왜 맡았지..하는 걱정이 생겼다. 어떤 분을 인터뷰하려면, 그분에 대한 삶과 사상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가. 그러기에는 나의 역량은 매우 미흡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름에 한국에 4주간 체류하기로 결정을 하였다. 창비건물이 소재한 서교동 근처에서 묵으며, 첫 몇주동안은 매일 창비에 출근을 하여, 백낙청 선생님의 삶과 사상에 대해 공부를 한 후에,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그렇게 대략 3주간을 나름 공부를 한 후, 백낙청 선생님과의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인터뷰 후, 나의 소감은 나의 역량이 매우 미흡하다는 것이다. 이미 지난 일이니, 앞으로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 인터뷰를 더 다듬을 수 밖에 없다. ㅠㅠ
(이하, 백낙청 선생님을 지칭할 때, 존칭을 빼고 성함만을 쓰기로 한다.)
이 에세이에서는, 인터뷰를 준비하며 든 하나의 단상을 적으려한다.
1-2주전,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3관왕을 차지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임윤찬은 한국 토종산이란 사실이다. 외국에서 피아노를 배운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배웠다. 유학을 간 적이 없다. 현재, 한국종합예술학교 학생이다. 18살의 토종 한국 피아니스트가 국제 3대 콩쿠르에서 무려 3관왕을 휩쓸었으니,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또 다시' 확인시킨 사건이다. 뭐, 근래에 들어, 이런 일이 한둘이 아니어서, 이젠 당연한 듯한 일이 되었지만, 기쁨은 덜하지 않다.
그 임윤찬 소식을 접하며, 난, 이휘소와 백낙청이란 두 이름을 떠올렸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휘소는 노벨물리학상 수상이 예정되어있었다고 할 수 있는 물리학자였다. 불행하게도 42세의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지만 않았으면 말이다.
이휘소와 백낙청은 거의 동년배다. 이휘소가 3년 반 손위다. 두분다, 나의 아버지 세대다. 두분의 공통점은 미국 유학을 갔다는 것이다. 이휘소는 대학교 3년 재학중이던 1955년 1월에 미국유학을 떠났다. 백낙청은 1954년 겨울,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초청으로 미국행을 하여 미국 가정에 3개월간 숙박을 하며 미국 고등학교에서 미국학생들과 같이 배우는 경험을 한 후, 그 다음해인 1955년에 17세의 나이에 UN에서 영어로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은 최근에 개설된 유튜브 백낙청tv에 이미 소개가 되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 연설에는 한국인으로서의 당당함과 오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넘쳐난다. 1955년이면, 한국전쟁 직후다. 그 당시 한반도 전체는 폐허였다. 그 폐허에서 온, 이 새파란 고등학생이 미국 학생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 앞에서 뛰어난 인문학적 내공을 당당하게 드러내며 연설을 한 것이다.
다 아시다싶이, 이휘소는 그후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었다. 노벨상을 탈 수 있었던 물리학자말이다.
백낙청은 그후, 브라운대학에서 학사 학위를 마치는데, 졸업식에서 전체 졸업생을 대표하여 연설을 한다. 그건 학업에 있어서 졸업생 전체 1등을 한 학생이 할 수 있는 연설이었다. 그리고 몇년 후에, 하버드대학에서 영문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임윤찬이 피아노분야에서 세계정상에 올랐다면, 이휘소와 백낙청은 각각 물리학과 영문학에서 세계정상에 올랐었다. 반세기전에 말이다. 임윤찬과 그 두분 사이엔 70여년의 세월의 간극이 있다. 그 세월동안 한국은 폐허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하였다. (물론, 아직 '온전한' 선진국은 아니다.)
이휘소는 학위 후, 미국에 남았다. 그는 한국인 물리학자들과는 그리 교류가 많지 않았다한다. 자신의 물리연구에 바빴을테니까. 아마, 유일한 한국인 제자는 Stony Brook University에서 가르칠 때 제자로 삼았던, 고인이 되신 강주상 교수일 것이다. 강주상 교수는 학위후 귀국하여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가르쳤다. 그리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이 김영기 박사다. (나도 그 연구실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김영기박사는 강주상 교수 연구실에서 석사를 하고, 미국 유학 후에, 지금은 시카고 대학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최근에 미국물리학회 회장으로 선출이 되어 더욱 유명해진 물리학자다.
백낙청은, 잘 알다싶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우연히도, 그 해에 4.19.혁명이 일어났다. 그 이후의 삶은 이미 역사가 되었다. 그 이후에 벌어진 한국의 역사적 변곡점마다, 거대담론과 실천적 대안을 지속적으로 내오고 계시다. 최근에는 근대의 이중과제론을 주창하고 계신다. 과학자인 나는, 백낙청의 근대의 이중과제론은 현재 지구적 문제인 환경과 생태위기의 극복을 위한 매우 시의적절한 사상이라고 본다.
4주 동안, 창비에 출근을 한 덕에, 과학자로서는 누리기 어려운 경험도 하였다. 창비에서 최근에 19세기말과 20세기 초에 한반도에서 태생된 '개벽 사상'들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물로 최근에 <개벽의 사상사: 최제우에서 김수영까지, 문명전환기의 한국사상>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것을 기념하여, 지난 주에 창비건물에 위치한 세교연구소에서 개벽사상사에 대한 심포지엄을 열었다. 나도 참관인으로 참여하여, 인문학자들의 발표를 듣는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 그 개벽사상 (동학, 천도교, 원불교 등등)과 근대의 이중과제론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온 사상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적응을 함과 동시에 근대화의 문제점들을 극복해야 하는 이중과제는 현재를 사는 우리와 150여년 전의 우리 조상들이 같이 겪었던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임윤찬이 이번에 상을 탄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1962년에 시작되었는데, 1958년 소련의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제1회에서 우승을 한 미국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콩쿠르다. 난, 한국에서 임윤찬콩쿠르를 만들어야한다고 본다. 물론, 다른 뛰어난 한국 피아니스트들이 있다. 쇼팽콩쿠르에서 우승을 한 조성진을 비롯하여 말이다. 그러나, 임윤찬의 획기성은 토종이라는데 있다. 임윤찬의 존재는 한국종합예술학교가 바로 세계적인 예술학교라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다. 이제, 한국 예술 학생들은 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
나의 세대까지는 과학을 공부하려면 미국유햑을 가야했다. 그러나, 이젠 한국 과학분야 학생들은 미국유학을 가지 않는다. 왜? 한국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과학연구를 할 수 있으니까. 이번에 고려대학교 물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인 내 대학동기의 연구실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나에게 실험실 장비와 최근 연구성과를 보여주며, 그 분야 (광학의 한 분야)에서 세계 최고라고 주장하였다. 그 주장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젠, 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위해 한국에서 굳이 해외유학을 나갈 필요가 없다. 그만큼, 한국의 과학수준이 발전하였다.
요즘, 한국이 선진국이 되었다는 말들을 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난,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서 우수성을 보였고, 서양음악(피아노)분야에서도 그렇고, 과학연구도 이미 그 수준에 도달했다. 나의 소견으로는, 사상사에서도 그렇다. 미래에, 한국에서 열리는 임윤찬콩쿠르에 세계 각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몰려올 것이듯이, 지구적 근대화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사상을 배우기 위해, 세계 인문학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게 될 것이다. 이건, 꿈이 아니다. 내 소견으론, 그렇게 될 것이다.
이 깨달음이 나의 이번 한국 방문의 소중한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