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2: 예술이 우리를 구원할까
15여년 전 쯤이었다. 어느 화창한 토요일 이른 아침에 일본의 한 소도시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소도시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열린 모임에 참가를 하고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으로 가려던 중이었다. 내가 앉아 있던 정류장 벤치에는 일본출신 친구가 같이 앉아있었다. 1990년 후반부터 인연이 닿아 공동연구도 여러번 하고, 또 나이도 비슷해서 절친이 된 친구였다. 그 친구도 미국에 살고 있어서, 같이 미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러 가는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내 머리에 떠오른 질문을 그에게 툭 내뱉었다. '예술은 왜 존재하지?'
그러니까, 사회에 존재하는 직업들을 생각해보자. 과학과 공학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기술을 발명하거나 기존의 기술을 사람들이 쓰도록 도와주고, 의학과 약학계통은 사람들의 병을 치료하는데 도와주고,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먹거리를 해결해주고, 유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먹거리를 비롯한 유용한 물건들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도록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을 연결해주고,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바쁜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을 대신해주고, 정치와 법계통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사회안에서의 이해관계를 조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모든 직업은 '필요'에 의해 생겨났다. 필요에 의해 '소비'할 수 있는 것들이고, 인간사회가 유지되고 돌아가는데 꼭 '유용'한 것들이다. 우리 사회에서 위에 언급한 직업들 중에 어느 하나를 빼면,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예술은?
문학, 영화, 음악 등의 예술의 유용함은? 만일 그런 예술이 없다고 해도, 우리들의 의식주, 즉 입고 먹고 자는데 아무 문제가 없지 않을까. 우리의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듯 보이는 이런 예술활동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유용성은 과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문득 들었던 것이다. 내가 그 질문을 한 때는 40대 중반이었다. 미국 대학에서 물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안정된 직업도 얻은 후였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유용성'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과학기술문명사회에 대한 오만한 과학자의 시각이랄까. 과학자와 공학자의 임무는 자연에 존재하는 물질들에 내재해 있는 '유용함'을 발견하고 그 유용성을 개발하는 것이고, 과학적 공학적 발견이란 어떠한 발견이라도 모두가 다 인류의 '발전'에 기여한다는 오만함말이다.
그런데, 인류에게 예술의 중요성을 철학적으로 설파한 이는 마틴 하이데거다. 그가 쓴 "The Question Concerning Rechnology"라는 에세이를 최근에서야 읽게 되고 내가 지난 10여년간 가르치던 학부융합세미나과목 <과학과 정치>의 문제의식과 같은 맥락이었음을 알았다. 그 글에서 하이데거는 기술의 본질과 위험성에 대해 논하고, 그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한 saving power의 예로 예술(Art)를 제시하였다. 이 책은 이과생인 내가 지난 10여년 동안 <과학과 정치>를 가르치며 얻은 깨달음이고, 또 하이데거가 왜 예술을 기술시대를 극복하는 saving power의 한 예로 제시하는지를 이해하게 된 여정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