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종교
미국 버지니아대학에서 지난 10여년간 내가 가르쳐왔던 과목 중에 하나는 <과학과 정치>라는 학부 세미나 과목이다. 10여년에 걸쳐 수업내용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으나, 항상 첫째 주의 토론 주제는 '갈릴레오재판'이다. 브레히트 희곡에 기반을 둔 영화 <갈릴레오>를 같이 감상하고 토론을 한다. 토론에 들어가기 전에, 난 항상 학생들 중에 기독교를 믿는 학생들이 누구인지를 물어보아왔다.
버지니아대학은 미국에서 아이비리그대학은 아니지만, 상위권에 드는 대학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대학을 졸업하는 학생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미국사회를 이끌어가거나 여론주도층에 속하게 될 계층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수업에서도 그 질문을 학생들에게 던졌다. 수강생들은 200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밀레니움 세대다. 손을 든 학생의 수는 수강생의 대략 20-25퍼센트에 해당했다. 기독교인이냐는 질문 후에, 창조자로서의 신의 존재를 믿느냐는 질문도 물었다. 그 질문에도 똑같은 학생들만이 손을 들었다. 두 질문에 대한 대답의 차이가 없었다는 사실은, 수강생들이 대부분 백인이고, 아직 다른 종교를 접해 본 학생들의 수가 매우 작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기독교인이지만 종교적 신념이 약하거나, 머리카락이 매우 길고 무신론자처럼 보이는 동양출신 남자교수에게 자신이 기독교인임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학생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런 학생의 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최대로 잡아도 내 과목의 수강생중에 기독교인인 학생비율은 1/3정도 밖에 되지 않을까한다. 이 비율은 미국 전체인구의 60퍼센트 가량이 기독교인이라는 Pew Research Center에서 2015년에 발표한 여론조사결과에 비하면 매우 작다.[1] 그러나 같은 여론조사에 의하면 나이가 젊은 층일수록 기독교인의 비율이 줄어든다. 그리고, 교육을 더 받으면 받을 수록, 그 사람은 무신론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 2007년과 2014년에 수행한 같은 여론조사결과를 비교하면 7년 동안에 기독교인 (Evangelical and Mainline Protestants, and Catholic)의 비율은 68.3퍼센트 (2007년)에서 60.9퍼센트 (2014년)로 떨어졌다.[2] 무려 7.4퍼센트가 감소한 것이다. 비종교인의 비율은 2007년에는 16.1퍼센트에서 2014년에는 22.8퍼센트로 증가했다.[2] 감소한 기독교인비율의 거의 모두가 비종교인(무신론자와 불가지론 혹은 회의론자)으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과학자이며 무신론자인 나의 입장에선, 21세기인 현재 미국전체 인구중에 기독교인이 아직 60퍼센트나 된다는 사실은 실망스럽지만, 그 비율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고, 또 젊은 세대에 와서는, 특히 고학력의 미래의 여론주도층에서는 그 비율이 작아진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갈릴레오가 세상을 떠난지 380년이 지났다. 창조자로서의 유일신을 신봉하는 종교의 도그마는 과학과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물론, 그 도그마에 몰입되지 않고, 그 종교의 좋은 가르침만을 따르며 사는 삶도 매우 의미있고 아름다울 수 있다. 그러나 비과학적 도그마의 존재는 비과학적 사고가 그 사회에 만연케하여 많은 폐단을 낳을 수가 있음을 지금의 한국사회가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굳이 비과학적 종교에 의지해서 살 필요가 있을까? 종교적 가르침이 필요하다면, 창조자로서의 유일신이 부재한 동양종교들도 있지 않은가.
[1] https://www.pewresearch.org/religion/religious-landscape-study/#religions
[2] America’s Changing Religious Landscape, https://www.pewresearch.org/religion/2015/05/12/americas-changing-religious-landscap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