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브 란다우 (Lev Landau, 1908-1968)란 소련 물리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물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어디선가 접하게 되는 이름이다. 물리학의 여러분야에 중요한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 공헌들 중에 하나의 공으로 노벨물리학상 또한 받았다.
란다우를 언급하는 이유는, 그가 쓴 책 'Mechanics'가 나로 하여금 물리학을 평생 공부하려는 마음을 먹게 했기 때문이다. 대학 3학년이 끝나고 4학년이 되기 전의 겨울방학때였다. 그전에 소홀히 했던 전공공부를 벼락치기하느라 도서관에서 거의 살기 시작하던 때다. 그때, 지금은 고인이 된 공부를 매우 잘하던 친구가 아주 얇은 전공책 하나를 나에게 추천해 주었다. 그 책이 바로 란다우와 리프쉬츠 (Liftshitz)가 쓴 'Mechanics'다. 고전역학 책이다. 대부분의 고전역학 책은 두꺼운데, 이 책은 매우 얇다. 그책을 읽고, 난 충격을 받았다. 이책을 읽기 전에는 물리학이란 그저 수학적 법칙을 자연현상에 적용하여 인과성을 정량적으로 따지는 학문으로만 여겼었다. 그런데, 이 란다우의 책은 물리학이 자연의 아름다운 대칭성을 연구하는 학문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어쩌면 복잡하게 보이는 자연의 현상들이 사실은 몇가지 대칭성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고, 물리학은 그 대칭성에 해당하는 물리량을 엄밀하게 정의하고, 어떻게 현상이 시간에 변해가는지를 그 물리량에 대한 간단한 수학적 법칙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그러니까, 물리학은 자연에 내재한 아름다운 대칭성을 드러내는(revealing) 학문이다.
그 책에 고전물리학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책의 서문에는 란다우의 인생에 대한 글이 있었다. 란다우는 말년에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를 당해 뇌를 다쳐서 죽기전 6여년 동안에는 연구를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60세라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다. 그 서문에 의하면, 란다우는 모든 물리학자들을 물리학에 대한 공헌에 반비례하여 로가리즘(logarithmic) 스케일로 분류하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스케일에 따르면, 뉴튼과 아윈쉬타인은 0.5, 양자역학을 만든 닐스 보어, 하이젠버그 등은 1.0, 그리고 자신 란다우는 겸허하게 2.5라는 점수를 주었다. 나이가 더 들어서야, 자신의 점수를 2로 상향조정하였다. 그는 젊었을 적, 덴마크 코펜하겐에 가서 닐스 보어에게 배운 적이 있다. 매우 영리했고, 오만하고 성격이 매우 까칠했던 란다우도, 이렇게 자신보다 더 뛰어나다고 생각한 물리학자들을 자신보다 훨씬 위에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을 보어의 제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사람간의 재능의 차이는 존재할까? 존재한다. 어떠한 재능이던지, 사람들을 그래프로 그리면, 대부분 가우시안분포(Gaussian distribution)를 이룬다. 사람들은 어떤 재능이냐에 따라 해당하는 가우시안분포에서 어떤 지점에 놓이느냐는 달라진다.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타고난 재능도 노력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한다고 가정하면, 어떤 분야에서 재능이 더 좋은 사람은 덜 좋은 사람보다는 그분야에서 진전이 빠를 것이다. 문제는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할 수 있는 물질적 정서적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등의 문제는 바로 이 부분에 있지 않을까. 재능의 차이는 평등이 획일이어서는 안되는 이유아닐까.
어느 분야에도 깨우친 정도에 따라 위계가 존재한다. 란다우가 닐스 보어라는 스승을 만난 것을 평생 소중하게 여겼듯이, 우리 인생에서 그러한 스승을 만난다면 큰 행운이다.
난 살아오며 좋은 스승 혹은 선생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려왔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때까지도 그랬고, 성인이 된 후에도 그랬다. 지금도, 인문학 분야에서도, 요가에서도 좋은 스승들을 곁에 두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이 스승들의 존재가, 그리고 비슷한 길을 가는 학형들의 존재가, 나의 삶에 지혜와 풍요로움을 가져다 줄지는 전적으로 나의 그들에 대한 경청의 노력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