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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런스의 <Women in Love> 2-2

제럴드와 기술시대, 그리고 하이데거

by 요기남호

제럴드가 어떠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 하나는 그가 말을 타고 철길을 달리는 기차와 경주하는 장면이다.


시간은 한낮이다. 제럴드가 백마를 타고 들판을 달린다. 어슐라와 구드런은 증기기관차를 구경하기 위해 철길 옆에 서서 기차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본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검은색의 증기기관차가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철길위로 달려온다. 그때 제럴드가 채찍으로 말을 때리며 더 빨리 달리기를 재촉한다. 그리고 기차와 경주를 벌여 기차보다 더 빨리 달린다. 두 자매가 서있는 건널목에 도착한 후, 백마는 기차가 무서워 뒤로 돌아가려한다. 제럴드는 말에게 기차를 향하도록 강요하는데, 말은 양발을 들어올리며 저항을 한다. 어슐라는 제럴드에게 무슨 짓이냐며 말에게 잔인한 짓을 그만두라고 항변한다. 구드런은 이상한 흥분에 휩싸여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어슐라의 어깨를 부여잡고 조용히 하라고 소리친다. 제럴드는 말의 배에서 상처가 나도록 계속 발로 찬다. 어슐라는 손으로 입을 막은채 흐느끼기 시작하고, 구드런은 말의 배에 난 선명한 핏자국과 말에게 가혹하게 채찍질을 가하는 제럴드를 바라본 후에야 표정이 굳는다. 기차가 다 지나가고 백마는 그제서야 앞으로 나아간다. 구드런은 제럴드의 뒤에 대고 'I should think you're proud!' 라고 고함을 친다. 제럴드는 길목에 잠시 서서 껄껄껄 박장대소를 하고는 말을 몰아 옆으로 길을 꺽어 나아간다.


이 장면에서 달리는 증기기관차는 질주하는 기술시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당시 최첨단 기술인 증기기관차에 무서워하는 말은 질주하는 기술시대에 대한 생명체의 두려움을 상징하지 않을까. 그러한 두려움을 차가운 이성과 강한 의지로 제어하려는 제럴드는 진보하는 기술시대를 정면으로 대처하고 리드하려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한 전형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제럴드에게는, 백마로 상징되는 동물과 석탄을 비롯한 자연, 그리고 사람들까지 모든 것이 기술시대를 특징짓는 효율성을 최대치로 쟁취하기 위한 도구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신념으로, 제럴드는 아버지의 광산회사를 기술시대에 맞추어 혁신하는 작업을 벌인 것이다. 아버지 톰은 광산을 자신의 기독교 신앙에 맞추어 자선의 한 방식으로 운영을 하였다. 제럴드의 경영방식은 아버지의 경영방식과는 성격이 전혀 달랐다. 그에게 광산은 "물질과의 싸움, 대지와 그것이 감싸고 있는 석탄과의 싸움"[1]이었다. "물질과의 이러한 싸움을 위해서는 완벽하게 조직된 완벽한 도구들 -- 그 작용에 있어 더없이 정교하고 조화로워서 단 한 사람의 정신을 대표하며 주어진 동작의 가차없는 반복을 통해 하나의 목적을 불가항력적 비인간적으로 달성할 그러한 매커니즘이 있어야했다."[1] 제럴드가 광산회사에 세우려 한 것은 바로 그러한 매커니즘이었고, "그 나름의 역사적 사명감과 일종의 종교적 황홀감마저" 가지고 있었다.[2] 그리고, 광부들 또한 처음에는 불평을 하고 반항을 하지만 결국엔 제럴드가 만든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고 야릇한 만족감마저 느끼며 자발적 복종을 하게 된다.[3]


백낙청은 제럴드는 "기술을 통한 지구정복 그 자체를 인생의 목표로 설정한 현대인"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평한다.[4] 기술시대라는 새로운 세계 속에서 물질과 인간은 모두 기계시스템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 제럴드의 시각과 제럴드가 의도한 새로운 질서에 순응하고 복종하는 광부들의 태도는 하이데거가 말한 기술의 본질과 통한다: "기술의 본질은 결코 인간적인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의 본질은 무엇보다도 기술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기술의 본질은 처음부터,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사유하게끔 하는 그 무엇에 자리하고 있다. <중략> 기술의 본질은 우리가 좀처럼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우리들의 현존재를 철저히 지배하고 있다."[5]


그러면, 완벽한 기계시스템을 완성한 후, 자신도 그 일부가 된 제럴드는 과연 진정한 행복을 얻게 될까..


기차 건널목에서 백마에 대한 제럴드의 잔혹한 행위에 대해 두 자매는 상이한 태도를 보이는데, 이것은 그들의 사랑이 다르게 전개될 것임을 암시하지 않을까.


* 참고문헌

[1]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20쪽에 실린 동명소설의 일부의 번역 중에서 따온 문구다.

[2]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21쪽.

[3]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24쪽.

[4]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23쪽.

[5]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13쪽에 인용된 마르틴 하이데거 <사유란 무엇인가> (권순홍 옮김)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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