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싶지 않니?
*표지사진: 왼쪽부터: Eleanor Bron (Hermione Roddice 역), Jennie Linden (Ursula Brangwen), Alan Bates (Rupert Birkin), Oliver Reed (Gerald Crich), Glenda Jackson (Gudrun Brangwen)
어슐라와 구드런이 사랑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를 슬쩍 드러내는 장면은 영화의 초입부에 두 자매가 크라이치 집안의 딸 로라의 결혼식을 구경하러 집을 나서며 나누는 대화다.
Gudrun (구드런, 이하 G): Ursula, you really not want to get married? (어슐라, 넌 정말 결혼을 안하고 싶어?)
Ursula (어슐라, 이하 U): I don't know. It depends how you mean. (잘 모르겠어. 너의 질문이 뭘 의미하는지에 따라 다르겠지.)
G: It usually means one thing. Wouldn't you be in a better position if you were married? (대체로 한가지를 의미하지. 네가 결혼하면 더 좋은 위치에 있게 되지 않을까?)
U: Might be. I am not sure, really. (그럴수도 있겠지. 잘 모르겠어, 정말로.)
G: You don't think one needs the experience of having been married? (결혼의 경험은 누구나 필요하다고 생각지 않아?)
U: Oh good grief. Do you think it need BE an experience? (맙소사. 넌 결혼이 경험이어야된다고 생각해?)
G: Bound to be. Possibly undesirable, but bound to be an experience of some sort. (될 수 밖에 없겠지. 아마 탐탁치는 않겠지만, 어떤 경험은 되겠지.)
U: Not really. More likely to be the end of experience. (아닐걸. 아마 경험의 끝이 되기 쉽겠지.)
이 대화에서, 구드런은 결혼이란 한번 해볼만한 새로운 경험으로 여기는데 반해, 어슐라는 결혼은 경험의 끝이라고 생각한다. 조금더 추측을 하자면, 구드런에겐 결혼은 살아가며 할 수 있는 여러 경험들 중에 한번쯤 해볼만한 경험이고, 결혼이후의 삶도 이혼까지 포함하는 새로운 경험들로 채워질거라는 생각이고, 어슐라에겐 결혼은 인생에 있어 최종적 경험이라는 것이다. 두 자매의 결혼에 대한 상이한 생각은, 물론 태어난 기질 자체가 다르기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두 자매의 과거의 삶 특히 연애경험을 살펴보면 이해가 더 가능하겠다.
두 자매의 아버지 톰은 탄광촌에서 수공예를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간다. 탄광촌의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르게 두 자매는 한동안 탄광촌을 떠나 대도시에서 생활하며 고등교육을 받았다. 어슐라는 고향에서 가까운 도시 노팅헴에서 대학을 다닌 후, 고향에 돌아와 초등학교 선생이 되었다. 어슐라의 과거 연애경험은 로런스가 브랑그웬가의 삼대를 드린 연작소설 중에 첫번째인 <무지개>에 묘사되어있다. <무지개>에 의하면, 어슐라는 한 군인장교와 연인관계를 가졌고, 그 장교의 끊임없는 결혼요청을 매번 거절하다가, 그이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 사실을 안후에 결혼을 하려 연락을 하나, 그 장교는 이미 다른 여자와 결혼한 상태였고, 그 와중에 뱃속의 아이를 사산하게 된 경험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을 다닐때, 그 학교의 여선생과 동성애관계의 경험도 있었다. <연애하는 여인들>에 의하면 구드런은 어슐라보다 더 아름다웠다. 구드런은 조각가가 되어 영국의 수도 런던에서 보헤미안의 생활을 보냈다. 런던에서 구드런이 어울렸던 사람들은 영국 각지 뿐아니라 유럽본토에서 온 예술가를 비롯한 보헤미안들이었는데, 그중에는 상류계층 출신도 많았다. 런던의 보헤미안들 사이에서의 관계는 재력이나 출신성분은 전혀 문제가 되지않았다. 구드런이 런던에서 예술가로서 영국의 전통계급사회에서 벗어난 자유분방한 삶을 경험하였다는 사실은 구드런이 결혼 그리고 나아가 남녀관계에 있어 전통관습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을 것임을 짐작케한다.
두 자매 모두 그당시에서는 보기드문 근대화된 신여성들이었다. 상류계층의 루펄트와 제럴드가 매력을 느낄만한 자질을 충분히 갖춘 여성들이었다. 두자매 모두 나이는 20대 중반. 그 당시에는 결혼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는 나이였다.
루펄트와 제럴드는 30대 초반이었는데, 그들이 삶 속에서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추구하는 남녀관계, 더 나아가 사랑의 형태와 의미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이 두 자매와는 어떤 관계를 맺게 되고, 그 관계로 인해 이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