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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로런스 <Women in Love> 5

배우 이정재의 완벽한(?) 사랑과 정우성

by 요기남호

* 표지사진: <태양은 없다 (김성수감독, 1999년)>에서의 이정재와 정우성.


제럴드의 얼어붙은 시신이 발견되어 호텔 방으로 옮겨졌다. 버킨과 어슐라는 그 소식을 구드런에게 받고 인스부르크에 돌아온다. 버킨은 제럴드가 누워있는 침대 곁에 앉아, 제럴드의 얼어붙은 뺨에 손을 댄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그때 어슐라가 방에 들어온다. 버킨이 말한다.

버킨 (이하 버): "I didn't want it to be like this. I didn't want it to be like this."

그리곤, 버킨은 일어난다. 어슐라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화난 목소리로 말한다.

버: "He should have loved me. I offered him."


제럴드의 시신은 영국의 크라이치 가족에게 돌아간다. 구드런은 드레스던으로 떠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버킨과 어슐라가 벽난로 앞 두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어슐라가 버킨에게 묻는다.

어슐라 (이하 어): "Did you need Gerald?"

버: "Yes.

어: "Aren't I enough for you?"

버: "No. You are enough for me, as far as a woman is concerned. You are all women to me. But I wanted a man friend, as eternal as you and I are eternal."

어: "I don't believe it. It's an obstinacy, a theory, a perversity. You can't have two kinds of love. Why should you!"

버: "It seems as if I can't. Yet I wanted it."

어: "You can't have it, because it's impossible."

버: "I don't believe that."

어슐라는 놀란 듯 시선을 들어 버킨을 바라본다. 그리고 저음의 첼로 음악이 흘러나오며, 영화는 끝난다.


버킨이 제럴드에게 제안했던 사랑은 어떤 사랑이었을까.


영화에서, 제럴드가 아버지의 장례식 날 밤에 구드런의 집에 가서 육체적 합일을 본 후, 그 다음 장면에서 제럴드와 버킨이 제럴드의 집에서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버킨은 이미 어슐라에게 청혼을 한 이후다. 제럴드가 버킨에게 버킨과 어슐라가 결혼하는 날, 자신도 구드런과 결혼을 할까라고 떠본다. 버킨은 자신이 제럴드라면 그러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은 기존 방식의 결혼생활, 두 남녀가 결혼한 후 가족만의 이익과 사생활을 위하는 결혼을 혐오한다고 말한다. 제럴드는 그에 동의하지만, 다른 대안이 있느냐고 묻는다. 버킨은 우리가 대안을 찾아야한다며, 제안을 한다.

버: "I do believe in the perpetual union between a man and a woman." "But a permanent relationship between a man and a woman isn't the last one. It certainly isn't.

We got to take down this love and marriage ideal from this perverseness. We want something broader. I believe in the additional perfect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man. Additional to marriage."

G: "I don't see how they can be the same."

B: "No, not the same, but equally important, equally creative, equally sacred, if you like."

G: "I know you believe something like that. But only I can't feel it, do you see?"


주목할만한 또 하나의 장면은, 버킨과 제럴드가 어슐라와 구드런과의 관계가 깊어지기 전에, 둘이서 제럴드의 집에서 발가벗고 레슬링 경기를 하는 장면이다. 레슬링 후, 버킨은 제럴드에게 옛날 독일 기사들이 피를 나누며 평생 의형제를 맺는 의식을 상기시키며 자신과 제럴드가 그런 영원하고 참된 동지애적 사랑을 나누자고 제안했었다. 제럴드는 버킨의 그 제안을 회피한다.


백낙청에 의하면, 로런스는 1차대전으로 '기술시대'의 파탄이 드러났다고 진단했으며 "파국 뒤의 새로운 시대 창조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1] 로런스의 생각을 대변하는 버킨이 어슐라와 제럴드와 이루고저 했던 관계는 "인간의 본능생활조차 기술적 인식과 작동의 대상으로 체계화되는 시대에는 이런 대상화로부터 벗어난 남녀관계 (그리고 동성간의 관계)가 시대의 기본성격이 요구하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정립하는 원대한 노력의 출발점"이었다.[2]


어슐라가 이해를 못하고, 제럴드가 이해는 하나 받아들이지 못했던 버킨의 제럴드와의 사랑에 대해 혹자들은 육체적인 남색관계로 보기도 하는데, 육체적이 아닌 참된 우정을 이루는 동성관계였다. 이러한 동성관계를 우리는, 흔하지는 않지만, 역사 속 뿐아니라 현재에도 볼 수가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예는 배우 이정재와 정우성의 관계가 아닐까한다. 잘 알다싶이, 이 두 배우는 1999년 영화 <태양은 없다>에 함께 출연하며 친구가 된 후로 지금까지 거의 25년 동안 '청담 부부'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절친사이다. 아티스트컴퍼니라는 회사도 공동으로 운영하며, 어느 인터뷰에서[3] 정우성이 농담을 했듯이 그들의 관계는 "사실혼을 넘어"설 정도로 깊고 모든면에서 충족된 (fulfilled) 관계다. 이 두사람의 관계가 바로 버킨이 제럴드와 이루고자 했던 관계가 아닐까.


백낙청은 평한다, "공적으로는 기술지배의 무비판적인 일꾼이요 사적으로는 해묵은 사랑의 이념에 얽매여 있는 그(제럴드)이기에, 참된 사랑을 맛보지 못할뿐더러 기술시대의 규격화된 관계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난 새로운 동지관계가 그에게는 전혀 실감을 지니지 못하는 것이다."[4] 그렇게 제럴드의 "더 본원적인 삶을 찾으려는" 시도는 실패로 끝난다.


참고문헌

[1]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08쪽. "(그리고 동성간의 관계)"는 필자가 첨부했다.

[2]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30-131쪽. "(그리고 동성간의 관계)"는 필자가 첨부했다.

[3] "이정재.정우성, 지독하게 얽힌 청담부부", 한국일보, 2022.8.19.

[4]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2장 "연애하는 여인들"과 기술시대, 1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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