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영화에서는, 이 두 쌍이 말 두마리가 끄는 마차를 타고 백설의 뾰족한 산의 중턱에 위치한 호텔에 도착하는 장면으로 인스부르크에서의 휴가가 시작된다. 마차가 호텔 앞에 도착하자마자, 구드런은 마차에서 내려 뾰족한 설산 쪽을 향해 뛰어간다. 주위는 온통 백색의 눈에 파묻혀 있다. 구드런은 검정색 모자와 검정색 롱코트를 입고 검정색 부츠를 신고 있다. 그녀의 의상에서 하얀색은 장갑과 목도리 그리고 코트의 소매끝과 다리 정강이까지 내려온 코트의 끝부분 뿐이다. 그녀의 검정색 의상은 온통 하얀색인 배경과 대비된다. 그 뽀족한 백설의 산을 바라보며 그녀는 두팔을 높이 들고 황홀함에 외친다.
구드런 (이하 구): "The minute I set foot on foreign soil, I am transported. I'm a new creature stepping into life!"
검은 코트를 입은 제럴드가 달려와 웃으며 구드런을 껴안고 말한다.
제럴드: "It's never quite the same in England. One is afraid to let go. One is afraid of what might happen if everybody else let go."
버킨과 어슐라도 달려와 기쁨에 서로 껴안는다. 어슐라는 하얀 모자와 하얀 롱코트를 입고 하얀 부츠를 신고 있다. 두 자매의 흑백의 의상 선정이 돋보인다. 어슐라의 의상은 자연과 어울리고, 구드런의 의상은 자연과 대조적이랄까.
두쌍은 주위에 널려있는 눈덩이로 눈싸움을 하며 폭소의 시간을 갖는다.
다음 장면은 호텔 안 홀에서 사람들이 음악에 맞춰 사람들이 쌍을 이뤄 춤을 추는 장면이다. 버킨과 어슐라, 그리고 제럴드와 구드런, 두 쌍도 즐겁게 춤을 춘다. 그런데, 홀에서 윗층으로 가는 층계에 두 사람이 서있다. 키가 큰 젊은이와 키가 작고 얼굴이 볼품없는 30대중반 쯤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들이다. 그 볼품없는 사내의 이름은 뢰르케(Loerke). 젊은이는 그의 애인이다. 뢰르케는 양성애자이자 조각가다. 구드런과 같은 화가다.
뢰르케는 구드런을 빤히 쳐다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음악 한 곳이 끝나자, 뢰르케의 남자애인이 구드런에게 다가가 춤을 청한다. 음악이 다시 연주되고, 둘은 춤을 추기 시작한다. 제럴드는 의자에 앉아있는 소박하게 생긴 젊은 여성에게 춤을 청하여 같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구드런은 춤을 추며, 뢰르케의 시선을 의식한다. 뢰르케는 그들에게 다가가 남자애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치고는 홀에서 사라진다. 남자애인은 춤을 멈추고 뢰르케를 따라간다. 춤 파트너를 잃은 구드런은 마침 제럴드가 춤 파트너인 여성을 들어올리고 껴안는 모습을 보고, 질투심에 이런 말을 제럴드에게 던지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간다.
구드런: "What a fine game you're playing. She is in love with you. Oh dear, isn't she in love with you?"
제럴드와 그 말을 대수롭지않게 여기고 춤을 이어간다. 구드런의 변덕스러움과 제럴드의 무감각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버킨과 어슐라는 둘이서 행복에 겨운 모습으로 간간히 키스를 하며 춤추기를 계속한다.
그렇게 두 예술가, 구드런과 뢰르케의 첫 조우가 이루어진다.
다음날, 제럴드와 구드런 그리고 버킨과 어슐라는 썰매를 타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구드런은 이렇게 외친다 "It was the most complete moment of my life!" 썰매타기에서 호텔로 돌아온 구드런을 홀 구석 테이블에서 뢰르케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어슐라가 부른다. 그렇게 셋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고, 뢰르케와 구드런은 서로가 조각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뢰르케는 산업의 위대함을 예찬하며, 옛날에 예술이 종교를 해석했듯이, 이제는 예술은 산업을 해석해야한다는 자신의 예술관을 피력하고, 두 자매에게 흥미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며 두 자매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 자신의 조각품 사진을 보여준다. 그 사진은 거대한 말위에 가냘픈 나체의 젊은 여자가 양쪽 유방을 드러낸채 앉아있다.[1]
그 사진을 보며 구드런은 감동에 차서 말한다.
구: "It's beautiful."
그리곤, 머리를 돌려 뢰르케를 다시 발견한 듯 바라본다.
똑같은 사진을 보며 어슐라는 감동이 아닌 비난의 말을 내밷는다.
어슐라 (이하 어): "Why did you make the horse so stiff?"
뢰르케는 예기치않은 어슐라의 비난에 "Stiff?"라고 반문하며 낄낄거리며 웃는다. 어슐라, 네가 예술을 어찌 알겠느냐라는 태도다. 어슐라는 굽히지 않고 "A horse is a very sensitive creature."라며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다. 뢰르케는 그 사진 속의 말은 예술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예술의 세계 밖의 어떠한 존재와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어슐라와 예술에 대한 긴 논쟁을 벌인다. 논쟁 중에 구드런은 뢰르케의 역성을 든다.[1] 그 사진 속의 여자는 뢰르케의 옛 애인이었고, 뢰르케가 예술을 위해 그 여자를 괴롭히다가 내팽개쳤음을 안 어슐라는 화가 잔뜩 나 "Love has no place in your world of art."라고 말하며 방을 박차고 나간다.
뢰르케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구드런을 바라본다.
뢰: "Love exits for convenience. I would give everything, everything, all you love, for a little companionship and intelligence."
구드런은 신선한 충격의 표정을 잠시 짓으며 시선을 천천히 밑으로 내린다.
어슐라는 밖으로 나와 버킨을 발견하고 온통 눈뿐인 그곳이 싫다며 그곳을 떠나자고 말한다.
떠나기 전에, 제럴드와 버킨 둘은 눈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눈다.
제럴드 (이하 제): "Do you know what it is to suffer when you are with a woman? It tears you like a silk. And each bit of stroke burns the heart."
버킨이 옆에서 걸으며 제럴드를 걱정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제럴드가 독백을 이어간다.
제: "Of course, I wouldn't NOT have had it! It's a complete experience. She's a wonderful woman. But--how I hate her somewhere! It's curious--"
걱정에 찬 버킨이 말한다.
버킨 (이하 버): "You have had your experience now. Why work on an old wound?”
제: "Because there is nothing else."
버킨은 제럴드에게 한가닥 위로와 희망이 될 말을 한다.
버: "I've loved you, as well as Gudrun. Don't forget."
제럴드는 버킨을 마주보고 그의 어깨에 팔을 얹으며 말한다.
제: "Have you? Or do you think you have?"
그리고 뒤돌아 걷는다. 버킨은 걱정에 가득한 눈으로 제럴드를 바라본다. 그렇게 어슐라와 버킨은 제럴드와의 포옹을 한 후, 두 백마가 끄는 마차를 타고 그곳을 떠난다. 제럴드와 구드런을 뒤에 남긴채로.
어슐라와 버킨이 떠난 후, 구드런과 제럴드의 관계는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구드런는 뢰르케와 예술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지내는 시간을 점점 더 보낸다. 버킨은 제럴드에게 뢰르케를 "하수도를 뒤지는" "쥐"와 같은 천한 존재로 평하였었다.[2] 그러한 뢰르케라는 존재에게 매력을 느끼는 구드런을 제럴드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모멸감마저 느끼게 된다.
백낙청은 '구드런이 제럴드를 버리고 뢰르케를 택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제럴드는 현존하는 인간세계의 극치에 해당했고, 그를 통해 온 세상을 정복한 이제 그녀는 "새로운 세계를 찾는 알렉산더왕"이 되었다.'[3]
이틀동안 뢰르케과 구드런은 예술과 인생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그들은 옛것들을 찬양했고, 과거의 완벽한 성취들로부터 감상적이며 어린애 같은 기쁨을 맛보았다.' '두사람은 몇시간씩이나 문학과 조각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했고, 플랙스만과 블레이크와 푸젤리에 대해, 그리고 포이어바흐(19세기의 독일 화가)와 뵈클린(스위스 화가)에 대해 애정을 갖고 이야기하며 즐겼다.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을 머릿속에서 다시 살려면 평생을 두고 해도 모자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주로 18세기와 19세기에 머무는 쪽을 택했다.'[4]
영화에서는 구드런과 뢰르케가 뢰르케의 방에서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틀어놓고 소연극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뢰르케는 차이콥스키의 비극적 결혼생활*에 빗대며, 자신들은 그러한 불행한 삶을 반복하는 대신에,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야한다며, 촛불을 들어 구드런에게 내민다. 배경음악인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은 절정으로 치달리며, 구드런과 그 얼굴 앞에 다가간 촛불이 클로즈업 된다. 구드런은 "Train is going into a tunnel."이라 말하며 촛불을 입으로 불어 끈다. 이렇게 두사람의 육체적 합일을 암시하며 그 장면이 끝난다.
제럴드는 자신의 방의 침대 위에 멍하니 앉아있다. 구드런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구드런은 자신의 물건들을 가방에 넣기 시작한다. 제럴드는 일어나 구드런에게 묻는다. 구드런에게 뢰르케의 어떤 점이 그렇게 매력적이냐고. 자신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구드런은 이해심이라고 말한다. 뢰르케는 여자의 심리를 이해한다며 제럴드를 멍청이라며, 제럴드와의 탄광촌에서의 결혼생활을 생각하면 토할것 같다고 말한다.
구: "You're so limited. You are deadend. You cannot love."
제: "And you?"
구: "I could never love YOU.”
제럴드의 심장에 비수를 꽂는 말을 한 후, 구드런은 황급히 방을 나가, 옆 방으로 가 문을 잠근다. 파경이다.
다음날 대낮, 구드런과 뢰르케는 썰매를 타며 논다. 뢰르케가 호주머니에서 술과 간식거리를 꺼내어 먹으며, 그 다음날 어디로 떠날지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뢰르케는 구드런에게 자신의 작업실이 있는 드레스던으로 오라고 한다. 그곳에 오면 구드런에게 할 일을 주겠다고 제안한다. 그때 전날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제럴드가 나타난다. 제럴드는 뢰르케의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하여 넘어뜨린다. 구드런이 제럴드를 막아서고, 제럴드는 구드런의 목을 조르다가 풀어주고는 말한다.
제: "I didn't want it anyway. I'm tired. I want to sleep."
그리고는, 눈위에 누워 숨을 헐떡이는 구드런을 뒤로하고, 정처없이 눈에 덮힌 산을 향해 걸어간다.
그렇게, 제럴드는 산속에서 얼어죽는다.
로런스가 버킨을 통해 말하고자했던 완벽한 사랑이란 무엇이었을까. 버킨이 제럴드에게 제안했던 사랑을 제럴드가 받아들였다면, 제럴드는 파국을 면할 수가 있었을까..
* 차이콥스키는 동성애자였으나 그 당시의 사회의 관습에 따라 그 사실을 숨기고 여성 안토니나 밀리우코바(Antonina Miliukova)와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바로 차이콥스키는 그 결혼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여기고 결혼생활을 온갖 핑계를 들며 회피하였고, 동성인 바이올리니스트와 뜨거운 사랑을 하기도 했었다. 그들의 결혼은 파경상태였으나 이혼은 하지 못했고, 안토니나는 다른 남자와의 관계에서 세 아이를 낳게 되는데, 혼외자식들의 존재를 숨기기위해 그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겼다. 뢰르케는 동성애자인 자신을 차이콥스키에 빗대고, 구드런을 안토니나에게 빗댄 것이다.
참고문헌
[1]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3장 "연애하는 여인들"의 전형성 재론, 163-166쪽.
[2]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3장 "연애하는 여인들"의 전형성 재론, 183쪽.
[3]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3장 "연애하는 여인들"의 전형성 재론, 184쪽.
[4] <서양의 개벽사상가 D.H. 로런스> 백낙청, 창비 (2020), 제3장 "연애하는 여인들"의 전형성 재론, 175-176쪽에 번역된 동명소설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