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개벽과 정신개벽
승리에 도취한 구인류 무리의 우두머리는 두발로 선채로 포효를 하며 동물의 허벅지 뼈로 보이는 무기를 공중에 던진다. 길죽한 뼈는 하얀 뭉게구름이 듬성듬성 있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허공에 회전하며 올라갔다가 내려온다. 갑자기 화면이 바뀌어 그 뼈무기와 형체가 비슷한 길죽한 우주 망원경이 칠흙의 밤하늘에서 내려온다. 그리고 오른쪽 하단에서 푸른 지구가 서서히 나타나며,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경쾌한 <푸른 도나우> (Johann Strauss II <Blue Danube>)의 왈츠곡이 흘러나온다.
우주 망원경은 지구 주위로 돌고 있다. 화면은 지구 주위를 돌며, 지구 주위를 공전하는 원형의 우주 정거장을 드러낸다. 그리고 우주선이 나타난다. 구인류로부터 4백만년이 흐른 지구 주위의 모습이다. 아프리카를 탈출한 인류는 진화와 발전을 거듭하여, 지구를 정복하고 우주를 정복하기 위해 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을 건설한 것이다. 두 조종사에 의해 운행하는 우주선은 우주 정거장을 향해 날아가고 있다. 우주선 안에는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잠을 자고 있다. 우주선 안에는 무중력 상태인 듯이, 붉은 펜 하나가 공중에서 부유하고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지구 대기 밖에서도 지구의 중력은 작용한다. 우주 정거장의 위치에서의 지구중력의 세기는 대략 지구 표면에서 우리가 느끼는 중력의 90퍼센트 정도다. 우주선 안의 무중력 상태는 우주선이 지구 주위를 빠른 속도로 돌면서 생기는 원심력이 지구의 중력을 상쇄하기 때문이다. 우주 정거장과 우주 망원경이 지구로 떨어지기 않기 위해 지구를 공전하는 이유다.
경쾌한 <푸른 도나우> (Johann Strauss II <Blue Danube>)의 왈츠곡은 끊임없이 흘러나오며, 수많은 별들이 수많은 점으로 희미하게 빛나고 있는 검은 우주의 허공을 배경으로 우주선은 우주정거장에 도착한다. 원형의 문이 서서히 열리고, 둥근 소파가 놓여진 방에 그 승객과 스튜어디스 한 사람이 안전벨트를 착용한 채로 앉아있는 그 승객과 스튜어디스 한명이 보인다. 문이 다 열리자, 스튜어디스는 안전벨트를 풀며 승객에게 도착을 알린다. "Here you are, Sir. Main level D". 승객은 일어서며 스튜어디스에게 작별인사를 한다, "Right. See you on the way back." 영화에서의 첫 대화다. 영화가 시작한지 무려 25분 42초가 지나서야 등장하는 첫 대화다.
그 남성이 힐튼 호텔 로비에 도착한다. 쿠브릭이 이 영화를 만든 해는 1968년이다. 영화 제목 <2001: The Space Odyssey> 가 말하듯, 쿠브릭이 그린 21세기의 인류사회의 모습은, 1960대 후반의 미국자본주의의 최첨단의 모습을 보여주던 비행기와 오성호텔의 모습과 비슷하리라고 예상한 듯하다.
그 남성은 미국 연방정부의 우주비행학 자문위원회 (National Council of Astronautics)의 의장인 헤이우드 플로이드(Heywood R. Floyd)박사다. 그 우주정거장은 미국과 러시아(영화가 만들어진 당시는 소련)가 참여하는 다국적 우주정거장이다. 플로이드 박사의 최종 목적지는 달이다. 호텔로비에서 러시아에서 온 안드레이 스미스로브 (Andrei Smyslov)박사를 비롯한 우주 비행사 일행을 만나 대화를 나눈다. 플로이드가 달에 위치한 다국적 우주 기지 클라비우스에 간다고 말하자, 스미스로브는 그에게 최근에 클라비우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상한 일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지난 10일 동안 그 기지에 전화를 하면 아무도 받지를 않고 자동응답기로부터 전화선이 고장이 났다는 자동응답이 나온다고 말한다. 플로이드는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답한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인 이레나 마르(Irena Marr)박사가 이틀전에는 러시아의 로켓버스 (Rocket bus)가 클라비우스에 비상착륙을 하려는데 거절을 당했다고 덧붙인다. 그것은 국제우주비행협약 (IAS Convention)의 명백한 위반이라고 스미스로브가 말하자, 플로이드는 물론이죠라고 말하며 자신은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듯 시치미를 뗀다. 러시아의 스미스로브는 플로이드에게 러시아 정보통에 의하면 클라비우스 기지에 정체를 모르는 심각한 유행병이 돌고 있다고 말하자, 플로이드는 자신은 그 질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스미스로브가 그 유행병이 러시아 기지에도 쉽게 퍼질 수가 있으니, 사실관계에 대한 정보를 자신들과도 공유해야하지 않느냐고 말하자, 플로이드는 자신은 동의는 하지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처지가 아니라는 말만 반복한다.
4백만년의 기나긴 시간동안 진화하고 과학적 지식과 기술적 진보를 이루어내며 인류는 동물뼈와 돌을 이용한 무기제작에서 시작하여 우주선 시대를 이루어내었다. 물질개벽이다. 그러나, 4백만년전에 구인류가 원시 무기를 발견한 후 한 첫 행위 중의 하나가 바로 다른 구인류 무리들과의 싸움이었듯이, 4백만년 후 물질개벽이 이루어진 후에도 인간들은 여전히 서로간의 의심이 가득한 경쟁을 하고 있다. 이 장면은 이 영화가 만들어질 당시의 미소 냉전체제를 반영하지만, 인간들의 경쟁심이 4백만년에 걸친 인류진화로 인해 열린 미래의 우주기술시대에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쿠브릭의 진단을 반영하고 있지 않을까. 물질개벽이 이루어진 인류사회에 아직 정신개벽이 뒤따라 오지 않은 불행한 현실말이다.
자, 플로이드박사의 극비 임무는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