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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우진 Aug 18. 2023

<오펜하이머> 2: 과학자들은 순진했었나?

*표지사진: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대량살상무기인 원자탄을 개발한 맨하탄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과학자들 대다수는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일한 이유는 나치독일이 원자탄을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독일 원자탄프로그램의 리더는 불확정성원리로 유명한 하이젠버그였다. 나치독일이 원자탄을 먼저 만든다면 그것은 유럽문명의 종말, 특히 유대인들의 전멸을 의미했다. 그래서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유대인계열의 과학자들에게는 자신들의 종족의 생존과 직결된 실존적 위협이었다. 그런데, 나치독일이 1945년 5월 7일 항복했다. 그들이 맨하탄프로젝트에 참여하게된 원래 목적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탄개발을 중단해야하는가, 아니면 지속해야하는가. 이 질문에 고뇌하던 과학자들이 여럿 있었고, 그들은 그 주제로 타운홀미팅을 열었다. 오펜하이머는 그 미팅에 참석하여 맨하탄프로젝트를 끝내어야한다고 역설을 하고 참가자들은 설득당한다.


원자탄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과학자들 사이에서는 원자탄이 개발된 후에는 어떻게 사용이 되어야하는지에 대한 토론을 한다.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도시에 원자탄이 투하되는 것은 반대하였다. 그 대신에 일본 장성들을 초대하여 태평양 바다 한가운데에서 폭발을 하여 원자탄의 위력을 일본 장성들에게 보여주자는 의견도 나왔었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과학자들은 원자탄이 개발된 후에 그 사용에 대해서도 자신들의 의견이 중요하게 반영되리라고 믿었다. 현실은 어떠했을까? 영화에서 트리니티가 성공적으로 끝난 후, 군인 두명이 문서들을 들고 지프차에 타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옆에 서서 오펜하이머가 원자탄이 어떻게 사용될지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반영해달라는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그때, 그 군인은 답한다. 지금부터는 자신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원자탄 개발은 과학자들이 했지만,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군부 자신들의 일이라는 말이다. 워싱턴과 군부는 원자탄개발 후에 원자탄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이미 벌써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포츠담회담 중인 7월 21일 트루먼과 처칠은 일본을 상대로 원자탄을 써야한다는데 동의하였다. 과학자의 의견 청취는 그저 형식에 불과했다.


히로시마에 원자탄이 투하가 되고, 3일 후 다시 나가사키에 투하가 된다. 자신들의 연구결과로 인한 수많은 민간인들의 죽음과 희생에 상당수의 과학자들은 뼈저린 후회에 휩싸였다. 영화에서 그 소식을 들은 한 과학자가 밖에서 구토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실제로 몇 과학자들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다한다. 다큐 <The Day After Trinity (1981)> 에서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동생인 프랭크 오펜하이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비극을 막을 기회가 몇번 있었다고. 원자탄이 민간인이 사는 도시에 투하되는 것을 막았어야 했고 (물론 불가능했지만), 트리니티 실험을 하지 않았어야했고, 마지막으로 나치가 망했을때 프로젝트를 중단했어야 했다고 고통에 찬 표정으로 말을 한다.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트리니티 전에, 에드워드 텔러**가 자신의 수소폭탄연구를 비판하는 과학자들에게 불평을 쏟아내고 더이상 같이 못하겠다며 로스 알라모스를 그러니까 맨하탄프로젝트를 떠나겠다며 막사를 박차고 나가는 장면이 있다. 그때 오펜하이머가 쫓아가 텔러에게 아무도 맨하탄프로젝트를 떠날 수 없다며 설득하여 텔러가 마음을 바꾸어 떠나지 않는 장면이다. 어느 과학자도 맨하탄프로젝트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원자탄이 개발되기 전에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자발적으로 로스알라모스를 떠난 과학자가 한 사람 있었다. 그이는 핵물리학자 조셉 로트블라트(Joseph Rotblat)였다. 그는 그후 영국으로 가서 원자력의 의학분야를 비롯한 평화적 이용 연구에 전념하였다. 그리고 전후에 대량살상무기 감축을 위한 미국과 소련을 비롯한 강대국들의 과학자, 정치가, 외교관들이 모여 그 방안에 대한 토론을 하는 연례회의를 주도적으로 열었는데, 그 회의가 바로 퍼그와쉬회의 (Pugwash conference)다.


이차대전 직후에 원자탄의 위험성을 절감한 세계적 지식인들이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1955년 7월 9일에 발표된 그 유명한 럿셀-아인쉬타인 선언 (Russell-Einstein manifesto)*이다. 그 선언문에 서명한 사람들은 모두 11명이었는데, 그중에 럿셀과 아윈쉬타인을 비롯한 10명은 모두 노벨상 수상자들이었고, 조셉 로트블라트가 서명을 하였다. 그 노벨상 수상자들 중에 유일한 동양인이 있었는데, 그이는 물리학계에서는 유명한 히데키 유카와였다.


* 럿셀-아인쉬타인선언: https://ahf.nuclearmuseum.org/ahf/key-documents/russell-einstein-manifesto/


** 에드워드 텔러는 헝가리유대인 출신 물리학자다. 반공사상이 가득했던 그는 원자탄보다 훨씬 더 강한 수소탄을 개발한 인물이다. 그때문에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오펜하이머를 비롯한 대다수의 과학자들과 반목을 하였다. 감독 스탠리 큐브릭이 1964년에 만든 영화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ing and Love the Bomb>에서 전쟁미치광이인 닥터 스트레인지러브(Dr. Strangelove)라는 인물은 세명의 실존인물에 기반을 두었다고 한다. 그중에 한사람이 에드워드 텔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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