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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기우진 Feb 17. 2024

손흥민과 이강인

하극상? 상명하복?

손흥민과 이강인의 불화로 메스컴이 시끌하다. 


한마디 해야겠다. 여론이 일방적으로 이강인의 잘못으로 탓을 하니까. 여론의 주된 이유는 후배인 이강인이 선배인 손흥민에게 대들었다는 게다. 


난, 손흥민 선수를 탓하고 싶다. 


첫번째 이유는, 두 선수 모두 어려서부터 외국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외국문화가 체질인 사람들이다. 한국문화가 체질인 사람들이 아니다. 외국문화와 한국문화의 차이 중에 하나는 바로 선후배 혹은 나이든 사람과 나이 어린 사람과의 관계다. 내가 사는 미국에선,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성빼고 그냥 이름을 부른다. '하이 흥민' '하이 강인'. 서로 동등하다. 나이에 상관없이. 내 제자들도 나를 부를땐 그냥 내 이름을 부른다. 


중요한 시합을 앞두고, 단합을 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단합하는 방식에 절대적으로 유일한 것은 없다.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다. 손흥민 선수가 주장한 듯한 식사하며 대화로 단합을 꾀하는 것도 좋지만, 식사 후 무거운 몸을 가벼운 탁구로 친선을 도모하며 단합을 꾀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중에 하나를 주장이라고 연장자라고 우기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특히 주장으로서는 피해야할 일이다. 그리고 외국에서 오래 산 손흥민 선수는 그보다는 더 좋은 방식을 체험하였을테니, 그 상황에서 더 부드럽게 대처했어야하지 않나. 멱살을 잡기 전에 말이다.


두번째 이유는, 이 일이 언론에 보도 된 후에, 두사람의 상이한 대처방식때문이다. 이강인선수는 즉시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했다. 그런데, 손흥민 선수는 조용하다. 사과가 없다. 이런 일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쌍방이 상대방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이다. 한쪽만 일방적으로 사과를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과를 표명하지 않는 손흥민선수의 태도는 아무리 양보를 해도 주장으로서는 적절하지 못하다. 주장은 리더다. 그런 상황을 부드럽게 정리하는 것은 리더의 책임이다. 그런데, 한마디 사과 표명없이, 후배 이강인이 일방적으로 매도를 당하는 걸 보고만 있다니.. 주장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태도다.


이 상황을 하극상이니 하며 후배인 이강인만을 매도하는 한국사회에서 검사들의 '상명하복'의 문화가 유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 않은가. 


난, 이강인 선수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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